겨울 이불

겨울 이불

글/그림 안녕달 | 창비
(2023/01/09)


두툼한 솜 이불, 학교 갈 준비를 다 마치면 할머니는 그 이불 아래 미리 넣어두었던 양말이랑 바지랑 셔츠를 하나씩 꺼내주시곤 했어요. 양말 신고 나면 셔츠를, 셔츠 입고 나면 바지를, 하나하나 차례차례… 뜨끈한 구들에 데워진 옷들이 할머니 품 같아서 참 좋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겨울 이불”에서 그 기억 냄새가 폴폴 배어 나옵니다. 따뜻하고 살가운 기억들, 뭉클하고 아련한 기억들이 그 시절을 소환하고 어느새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갑니다.

겨울 이불

“할머니, 할아버지, 나 왔어.”

다정하게 놓인 할머니 할아버지 털 신발 옆에 휙 벗어놓은 작은 신발, 신발을 벗기 무섭게 양말부터 벗어버린 꼬마는 맨발로 방바닥을 딛자마자 이렇게 외쳐요. “앗, 뜨거워!”. 발가락 오그린 모습에 웃음이 먼저 터져 나옵니다. 그 뜨거움이 저에게로 바로 전달되는 것 같아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주 돌아올 시간에 맞춰 군불을 잔뜩 때어두셨나 봐요. 첫 장면에서 뒷마당에 가득 쌓여있던 장작, 지붕 위로 하얗게 퍼지던 연기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방 식지 말라고 깔아놓은 두툼한 솜 이불. 커다란 꽃무늬에 눈길이 갑니다. 할머니=꽃무늬, 이건 공식이죠? 😄 단정한 이불 홑청 무늬는 눈꽃 같아요. 입었던 겉옷을 하나하나 훌러덩훌러덩 벗어젖힌 아이는 이불 밑으로 쑤욱 들어갔어요.

두툼하고 포근한 할머니 방 겨울 이불은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아늑하고 따뜻한 통로입니다. 그렇게 이불 밑을 기어가 반대편으로 나오면…

겨울 이불

따끈따끈 찜질방!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아이에게 ‘왔어?’하고 맞아주는 찜질방 곰 아저씨. 옹기종기 모여앉아 수다를 떠는 동물 친구들, 대 중 소 사이즈 별로 개어 쌓아둔 수건이며 식혜용 파란 물통이며 걸어놓은 국자같이 소소한 물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카운터 앞에 붙은 재미있는 메뉴들(방바닥 귤, 아궁이 군밤, 불구덩이 군고구마, 겨울 냉커피, 얼음 할머니 식혜, 곰엉덩이 달걀)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웃게 되구요.

따끈함에 취해 여기저기 뒹굴뒹굴하며 구들장 찜질을 즐기고 있는 동물 친구들을 피해 아이는 조심조심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갑니다. 양머리 수건을 머리에 두른 할머니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면서 손주를 반겨주셨어요.

  그래, 우리 강아지 왔니?

철부지 어린 강아지가 되어 폴짝폴짝 뛰고 뒹굴고 싶어지는 풍경에 사르르 녹아듭니다. 분명 웃고 있는데 마음은 뭉클해집니다. ‘강아지’라 불리던 그때가 참 좋았지요.

곰아저씨에게서 가져온 구운 달걀에 가슴까지 뻥 뚫리는 얼음 할머니 식혜까지 먹고나면 사르르 졸음이 몰려와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눕습니다. 아이는 사락사락 쓰다듬어 주시는 할머니 손길에 그만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아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일까요? 돌아보면 그 시절이 모두 꿈결 같습니다.

늦은 퇴근을 한 아빠가 아이를 데리러 왔어요. 아들을 위한 소박한 밥상이 차려집니다. 식지 말라고 이불 아래 넣어둔 커다란 밥그릇이 꺼내집니다. 손주를 바라보던 마냥 사랑스러운 눈길과 달리 아들을 바라보는 눈길은 그저 안쓰러움입니다.

눈 내리는 겨울밤이 깊어갑니다.

“겨울 이불”은 환상의 세계에서 다시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재미난 구조로 만들어졌어요. 겨울 이불 저편 ‘찜질방’이라는 환상 세계 속 또 다른 환상 세계인 ‘달걀 나라’, ‘얼음 나라’를 보다 보면 환상이란 아름다운 지난 기억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차곡차곡 쌓아놓는 아름다운 추억들, 그것이 나를 이루고 나의 세계를 이루어 가는 것이겠지요.

그림책을 읽고 다시 한 장 한 장 넘기며 환상의 세계에 있던 작은 소품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세세하게 살펴보세요. 떠벌떠벌 시끄러 개구리가 내는 센스 퀴즈도 맞혀보면서 겨울 이불이 펼쳐놓은 아름다운 세상에 합류해 보세요.

소박한 환상에 기대어, 사랑과 추억에 기대어 오늘도 따뜻한 하루를 보냅니다.


※ 함께 읽어보세요: 오리네 찜질방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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