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로꼬

끄로꼬

(원제: Croco)
글/그림 안드레스 로페스 | 옮김 김서정 | 산하
(2023/05/10)


“끄로꼬”라는 제목이 좀 어려웠는데 원제 “Croco”를 보고는 아하! 하고 이해하면서 웃었던 그림책입니다. 초록으로 가득한 밀림 숲 빨간 악어가 바로 끄로꼬예요. 이 그림책의 주인공이죠.

다른 악어처럼 헤엄치고 걷고 먹는 악어 끄로꼬, 평소처럼 네 발로 엉금엉금 걸어서 길을 가고 있었는데, 그만!

끄로꼬

깊은 구덩이 속에 빠져버렸어요. 발을 헛디딘 것도 아니고 길을 잘못 본 것도 아닌데, 그 길에 깊은 구덩이가 있었고 때마침 놓여있던 통나무가 우지끈 부러지는 바람에 끄로꼬가 구덩이에 빠져 버린 거예요.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고 끄로꼬는 악어가 할 수 있는 동작을 50가지나 해 봤지만… 구덩이가 너무 깊어 도무지 헤어 나올 수가 없었어요.

가지를 사방으로 뻗은 나무들은 구덩이에 빠지는 끄로꼬를 보면서 비명을 지르는 것같아요. 밀림은 햇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짙은 초록색이고 구덩이는 끄로꼬의 절망스러운 마음처럼 짙은 고동색입니다. 구덩이의 깊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위로 펼치는 구조로 판형을 세로로 길게 만들었어요. 누가 봐도 끄로꼬가 쉽사리 저 깊고 깊은 구덩이를 빠져나올 수 없어 보이는 상황으로 느껴지도록 말이죠.

끄로꼬

“거기서 나오는 거 어엄청 쉬워.”

친구들이 찾아와 끄로꼬가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말해주었어요. 뱀은 나무에 몸을 돌돌돌돌 감고 뱅뱅뱅뱅 돌면서 올라오라고, 새는 날개를 마구마구 파닥여 보라고, 원숭이는 좌우로 힘차게 뛰어서 올라오라고. 끄로꼬는 침착하게 친구들의 말대로 해보았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남에게 닥친 일은 쉬운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할 수 있지만 막상 나에게 닥치면 절대 쉽지 않은 일들, 각자 경험도 다르고 가진 능력도 상황도 다 다르기 때문이겠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지만 끄로꼬가 구덩이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친구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엄청 쉬운 일은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친구들이 함께 힘을 모아 끄로꼬를 꺼내 주기로 결심했지만 그것 역시 역부족입니다. 끄로꼬는 이 구덩이를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물론 끄로꼬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구덩이에서 빠져나온답니다. 힌트는 표지에 있어요. 끝까지 끄로꼬 곁을 지켜주면서 응원하는 친구들은 절망의 순간에도 빛처럼 환한 웃음을 안겨줍니다.

삶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결국 나에게서 나온다는 짧고 강렬한 우화 그림책 “끄로꼬”, 삶은 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책을 가져다주지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순간에도 나를 찾아주는 친구들이 있다면, 내 가슴에 작은 희망을 품고 있다면 우리는 언제고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오늘도 삶의 한 고개를 넘어갑니다. 그렇게 또 하나를 배우고 자라납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5 1 vote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1 Comment
오래된 댓글부터
최근 댓글부터 좋아요 순으로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박선미
박선미
2023/07/04 22:50

삶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결국 나에게서 온다는 구절이 말해주듯 철학적인 그림책이네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해결할 수 없던 일들이 아주 작은 실마리로 풀리기도 하는 것처럼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도 같습니다. 어려움이 있나요? 그럼 자신을 한 번 들여다보세요.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세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빨간 악어 만나러 도서관으로 가야겠습니다.^^

1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