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앞에 설래!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가장 덩치가 큰 털북숭이 레옹, 두 번째로 큰 나, 그리고 가장 작은 친구 토끼 레미. 털북숭이 레옹은 늘 앞장서기를 좋아했습니다. 작은 두 친구를 위해 항상 맨 앞에 서서 걸었죠. 자신들의 눈 앞에 펼쳐지는 멋진 광경들을 친구들에게 설명해 주고, 위험으로부터 친구들을 보호해주는 걸 좋아했죠. 그리고, 나와 토끼 레미는 레옹 뒤에서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었습니다. 나는 재미난 이야기를 지어내서 레미에게 들려주곤 했어요.

하지만 털북숭이 레옹의 덩치가 어찌나 큰지 그 뒤를 따라 걷는 나와 토끼 레미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난 레옹에게 가려진 멋진 광경들을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나도 친구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했죠.

“내가 앞에 설래!”

그 날 이후 나는 늘 맨 앞에 서서 걸었습니다. 앞장서서 가는 것은 새로웠습니다. 처음으로 나는 자동차, 구름, 큰 나무들 그리고 풍선을 맨 먼저 보았습니다. 빨간 불이 켜진 신호등 앞에서는 제일 먼저 멈춰서 뒤에 있는 친구들을 따라 멈추게 했어요. 난 어른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른이 된 듯한 기분에 젖어 까맣게 잊고 있던 게 있었습니다. 레옹 뒤에서 언제나 꼭 잡고 다니던 토끼 레미의 손을 놓아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나 나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던 친구 레미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내가 앞에 서서 걷는 동안 털북숭이 레옹과 토끼 레미는 서로 손을 잡지 않았고,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어요. 나처럼 손을 꼭 잡아주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가 없어지자 레미는 뒤에서 걷는 것이 지루해졌습니다. 그래서 레미 역시 맨 앞에 서고 싶어졌고, 가장 작은 친구 레미는 맨 앞에 서서 걷게 되었죠. 레미 역시 앞장 서서 걷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며 토끼 레미에게 물을 튀겼습니다. 무릎까지 젖어 버린 토끼 레미는 아주 어린 꼬맹이가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토끼 레미의 손을 꼭 잡아 주었고 근사한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 주었습니다. 예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물에 젖은 채 우울해졌던 나의 작은 친구 레미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레미가 노래를 부르는 건 처음이었어요.

이제 나와 토끼 레미는 예전처럼 서로 손을 잡고 앞장서 걸었습니다. 레미는 즐겁게 노래를 하고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때 털북숭이 레옹이 “조심해! 트럭이야!” 하고 외쳤습니다. 레옹은 나와 레미를 보호하기 위해 한 걸음 앞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토끼 레미의 다른 손을 붙잡았어요.

이제 셋은 모두 함께 나란히 걸었습니다. 털북숭이 레옹은 위험할 때 알려 주었고, 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줬고, 가운데에 선 레미는 즐겁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 셋은 서로의 손을 나란히 붙잡고 있었어요.
이렇게 친구들의 손을 붙잡고 나란히 걷는 건 정말 좋았어요!

맨 앞에 서고 싶은 마음,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고 싶은 마음… 우리는 누구나 다 본능적으로 이런 마음을 가슴 속에 품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누구나 맨 앞에 서기 위해,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기 위해 열심히 살아갑니다. 다만 맨 앞에 서고 싶은 마음,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고 싶은 마음 그 곁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소중한 이웃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두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에 따라 차이가 생기는 것 아닐까요?

우리 아이들이 나란히 걷는 즐거움을 이해하고 그 행복을 잊지 않고 자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사랑하는 가족, 소중한 친구와 이웃들과 함께 나란히 걷는 행복한 삶을 살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내가 앞에 설래!
책표지 : Daum 책
내가 앞에 설래!

(원제 : Moi Devant)
나딘 브랭 코즈므 | 그림 올리비에 탈레크 | 옮김 박정연 | 아름다운사람들

짧은 이야기 속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장하는 법,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친구를 배려하는 법, 서로가 원하는 것을 절충하며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법을 고스란히 담아낸 나딘 브랭 코즈므, 처음 만난 작가지만 앞으로 그의 또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해집니다.

“무릎딱지”, “누굴까? 왜일까?” 등으로 이미 친근한 올리비에 탈레크는 새 그림책 “내가 앞에 설래!”에서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나딘 브랭 코즈므의 멋진 이야기를 따스한 색감의 그림 속에 풍부한 감성과 함께 담아내 우리 아이들이 푹 빠져들만한 그림책을 만들어냈습니다.

친구들과 나란히 걷는 행복을 가르쳐 주는 그림책 “내가 앞에 설래!”, 아이들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입니다.


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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