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가 되는 법

진정한 친구가 되는 법

글/그림 박현민 | 창비
(2024/01/31)


출간 즉시 화제가 되는 박현민 작가의 신작 『진정한 친구가 되는 법』. 표지 그림만으로도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전작들을 통해 ‘박현민’이라는 작가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겠지요.

‘빛과 어둠 3부작’이라 불리는 세 권의 그림책들, 『엄청난 눈』, 『얘들아 놀자!』, 『빛을 찾아서』가 배경 색깔을 교묘하게 활용해 주인공의 움직임을 보일 듯 말 듯 유쾌하게 보여주었다면 삼부작 이후 출간된 『도시 비행』은 고정된 장소가 계절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를 멋지게 보여준 그림책입니다. 주인공인 작은 민들레의 시점으로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듯 그린 독특한 연출 덕분에 독자는 자연스럽게 민들레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친구가 되는 법』은 인간과 예티가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자연과 인간의 공존 방법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박현민 작가 특유의 다채로운 표현에 쏘옥 빠져 정신없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 담긴 따끔한 일침 한 방에 그만 가슴이 뜨끔해지는 그런 그림책이에요.

커다란 배낭 하나 짊어지고 눈 덮인 산길을 걷는 사람을 따라갑니다. 깊고 깊은 산길을 걸어 그가 향한 곳은 ‘예티연구소’라고 쓰여있는 작은 오두막. 이 사람은 예티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한 유진 박사입니다.

유진의 임무는 예티를 친구로 만드는 것입니다.

진정한 친구가 되는 법

예티를 친구로 만들려면? 먼저 예티를 만나야겠죠. 유진 박사는 쌀국수 좋아하는 예티를 위해 특별한 비법으로 쌀국수를 만들었어요. 설산 한가운데로 예티를 유혹할 쌀국수를 나르는 장면이 압권이에요. 높고 높은 산꼭대기를 오르락내리락 사뿐사뿐 가볍게 폴짝폴짝 뛰는 듯 날아다니는 유진의 모습을 보면 친구를 만나러 가던 어린 시절 가볍다 못해 날아갈 것 같던 그 발걸음이 떠오릅니다.

시리도록 차가워 보이는 하얀 눈 위에 놓인 김이 폴폴 나는 따끈한 쌀국수는 누구라도 홀릴 것 같아요. 쌀국수 좋아하는 예티라면 절대 절대 참을 수 없을 비주얼이죠. 엄청난 수고와 아슬아슬한 위기가 있긴 했지만 이 특별한 쌀국수 덕분에 유진은 예티를 사로잡을 수 있었어요.

진정한 친구가 되는 법

무시무시한 엄마 예티를 따돌리고 예티를 꽁꽁 묶어 연구소로 데려온 유진은 예티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어요. 예티와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 물론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예티를 철창 안에 가두어 놓았지요.

진정한 친구를 만드는 법이 아이러니합니다. 친구가 되겠다는 허울 좋은 명목 아래 실상은 나를 위해 예티를 바꾸는 작업을 하는 중이에요. 상대의 마음은 알 바 없고 내가 사는 곳으로 끌고 와 내 방식으로 상대를 바꾸려는 작업, 그것도 철창이라는 넘을 수 없는 벽까지 만들어 놓고 말이죠. 이럴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그렇게 한 걸음 다가섰나 싶다가도 두 걸음 물러나는 일이 반복되던 어느 날 예티가 앓아누웠어요. 걱정스러운 마음에 유진은 철창문을 열고 예티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같은 공간에서 눈이 마주친 둘은 서로를 꼭 안아줍니다. 믿음이 생겨난 둘은 이렇게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친구가 되었어요.

그 후로 함께 오래오래 행복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둘 사이 일어난 작은 사건 때문에 협회가 예티진압대를 투입해 예티를 도시의 실험실로 끌고 갑니다. 공격성을 없애는 헬멧을 쓴 예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어요. 이런 예티의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유진이 직접 행동하기로 마음먹는데…

전반부에서 예티를 찾아 설산을 뛰어다니며 동분서주하던 유진은 이제 예티를 구하기 위해 삭막한 도시의 건물 사이를 넘나들며 동분서주합니다. 이전이 예티를 끌고 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면 이번엔 내 친구 예티를 구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그 안에는 친구를 향한 진실한 마음이 담겨있어요.

예티와 진정한 친구가 된 유진은 이제 알아요. 친구가 편안한 곳, 친구가 원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눈 덮인 설산을 유진과 예티가 오릅니다. 예전에 예티를 만나기 위해 유진이 넘었던 것처럼. 그런데 이제는 혼자가 아닌 둘이에요. 이번엔 예티가 유진을 안고 그 큰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엄마 예티와 재회하는 장면에서 멈칫하게 됩니다. 문명의 발전 속에 속수무책 허물어져 내리는 대자연의 눈물이 바로 예티의 눈물입니다. 엄마 예티의 실체를 보면 여러분도 이 그림책에서 예티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입버릇처럼 친구라 부르는 자연을, 너 없인 못 살 거라 생각하는 자연을 우리는 얼마큼 진실하게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는 걸까요? 사랑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긴장과 웃음, 씁쓸함, 재미와 즐거움, 쿵 하는 울림까지 선사하는 『진정한 친구가 되는 법』. 간결한 글과 역동적인 이미지, 미묘하게 반짝거리는 색깔들로 이야기 속에 또 이야기를 만들어 가며 즐거움과 감동을 안겨주는 그림책입니다. 표지부터 면지까지 구석구석 숨어있는 의미들을 찾으며 재미있게 감상해 보세요. 그리고 나면… 오늘 점심 메뉴는 쌀국수! 쌀국수에 고수가 빠져서는 절대 절대 안 되죠. 자칫 예티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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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신
안영신
2024/02/24 07:30

박현민 작가님 그림책은 늘 기대됩니다. 특히 은 영문버전의 표지가 더 멋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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