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비행

도시 비행

글/그림 박현민 | 창비
(2023/03/13)


“도시 비행”은 빛과 어둠 3부작(“엄청난 눈”, “얘들아 놀자!”, “빛을 찾아서”)을 마무리한  박현민 작가의 신작입니다. 앞선 빛과 어둠의 3부작이 배경을 한 가지 색으로 고정시키고 주인공의 활동성을 강조해 재미와 웃음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이야기에서는 배경을 현란하게 바꾸어가며 고정된 장소에 매여있는 주인공의 감정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어요.

너무 흔해 거기 존재하는지, 거기 피어났는지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민들레, 봄날의 민들레 꽃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 있나요? 팡팡 터져 나오는 불꽃놀이처럼 보이는 표지 그림은 봄날 가장 흔하게 만나는 민들레예요. 노랗고 파랗고 빨간 화려한 꽃잎은 작고 하얀 홀씨가 품었던 꿈과 희망입니다.

도시 비행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 한복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면? 상상으로 나를 아주 작게 작게 줄여갑니다. 민들레 씨앗만큼 작게. 그리고 그림책 속으로 들어가 작가가 펼쳐놓은 도시 한복판의 작은 공간, 보도블록 틈 속으로 쏘옥 들어가 봅니다. 이 그림책의 화자인 작은 민들레가 되어보는 거예요.

나는……
보도블록 틈새에 핀 민들레.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높고 아득합니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내 위를 지나쳐 갑니다. 따르릉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자전거가 지나가고. 멍멍 소리를 낸 무언가가 킁킁 냄새를 맡으며 나를 내려다보더니 갈색 커다란 똥 덩어리를 퉁! 내려놓고 지나갑니다. (강아지 똥이네요.^^) 사람도 구름도 계절도… 오직 이곳 이 자리에 붙박힌 건 나와 아득한 높이의 건물들뿐.

도시 비행

‘어, 그림이?’ 하고 처음 이 그림책을 볼 때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지도 몰라요. 어쩌면 우린 한 번도 이런 시선으로 세상을 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림책 속 시선은 키 작은 민들레의 관점에서 무언가를 계속 올려다보고 있어요. 이게 뭐지? 누가 지나가는 거지? 한 장 한 장 민들레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소란한 날들, 고요한 날들, 두려운 날들… 그렇게 도시의 시간이 지나고 민들레의 계절이 흘러갑니다. 가까이에서 민들레를 빤히 바라보던 애벌레가 번데기가 된 어느 조용한 봄날, 세상이 온통 노란빛인가 싶더니 노란 나비 한 마리가 나폴나폴 가볍게 날아갑니다. 비행기가 고요히 날아가던 그 하늘 위를, 민들레가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 하늘 위를.

나비가 지나쳐간 그곳에 누군가 다가왔어요. 밤마다 민들레를 지켜주던 노란 가로등 불빛처럼, 봄날 민들레를 빤히 바라보던 강아지의 노란 털처럼, 노란 눈의 애벌레처럼, 노란 나비처럼 똑같은 노란 옷을 입은 아이. 그 아이의 손이 민들레를 향해 다가옵니다. 움찔, 괜스레 내 몸이 움찔거려지는 건 너무나 실감 나게 그린 그림 때문이겠죠.

도시 비행

그리고 줄곧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시점이 이동합니다. 아이 눈높이에 나란히 마주한 민들레, 하얗게 변한 민들레를 손에 쥔 아이의 따스한 입바람에 작은 홀씨들이 허공 위로 산산 흩어지며 가볍게 날아오릅니다. 저 아래 도시 풍경이 아득하게 펼쳐집니다. 내 마음도 홀씨를 따라 가볍게 날아오릅니다. 난다는 건, 높이 날아오른다는 건 이런 기분인가 봐요.

“도시 비행”은 인쇄의 기본 색인 청록색, 자홍색, 노란색, 검은색 네 가지 색상을 활용해 만들었다고 해요. 이제까지 출간된 박현민 작가의 그림책 중 색상을 가장 많이 사용한, 가장 화려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민들레의 꿈이 이루어지기 전, 가장 긴장되는 순간의 배경색은 청록색, 자홍색, 노란색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검은색입니다. 검은색은 기다리고 견뎌낸 민들레의 인고의 시간과 꿈과 희망의 손길을 건넨 아이의 마음이 합쳐진 인내와 사랑, 꿈의 색상입니다.

이 땅 위에 피어난 모든 생명을 응원하는 그림책 “도시 비행”, 길을 걷다 만난 민들레를 보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봐 주세요. 하얀 민들레 홀씨를 만난다면 다정한 응원가를 불러주세요. 따뜻한 온기에 기대어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게. 우리의 사랑과 응원으로 삶이, 세상이 피어납니다. 오늘 여기 피어있는 당신을 열렬히 응원합니다!


  • 애벌레의 얼굴을 가까이서 본 적 있나요? 그림책에서 애벌레 얼굴과 마주해 보세요.
  • 노란색으로 뒤덮인 페이지에서 나비의 눈과 더듬이를 찾아보세요.
  • 최소한으로 아주 간결하게 쓴 글에도 배경색을 입혀 각각의 글이 상징하는 의미를 덧입혔으니 그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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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이지영
2023/04/13 14:43

이책을보면서 한동안 가슴이 벅차 민들레로 살았습니다.민들레를 오래도록 보고, 마음에 품어 글도 써봤었네요~^^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면 누군가를 사랑하게된다는 박현민작가님의 말처럼 되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멋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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