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발, 왼발 - 그리운 할아버지

꼬마 보비의 이름은 보브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보비가 처음으로 한 말은 ‘보브’였어요. 보통은 엄마, 아빠 하는데 말이죠. ^^

“할아버지, 나한테 어떻게 걸음마를 가르쳤는지 얘기해 줘요.”

“난 네 작은 손을 이렇게 잡고, 말했단다.
‘오른발, 왼발. 따라해 보거라’라고 말이야.”

이렇게 늘 친구처럼 보비와 함께 하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뇌졸증으로 쓰러지셨어요. 다행히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면서 조금씩 좋아지시긴 했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보브 할아버지는 아무런 의식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도 알아 보지 못하고, 말을 걸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모두들 생각했지만 보비만큼은 할아버지가 자기를 알아 볼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할아버지에게 건네는 말들을 모두 알아 듣고 계신다는걸 잘 알았죠.

보비와 보브 할아버지 둘만의 싸인인 코끼리 블록 덕분이죠. 보비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 블록 쌓기 놀이를 할 때면 이상하게도 보브 할아버지는 코끼리 블록만 보면 재채기를 했었거든요.

“보비야, 나한테 어떻게 걷는 법을 가르쳤는지 얘기해 다오.”

“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이렇게 짚고요, 난 말했어요.
‘오른발, 왼발. 따라해 보세요.’ 라고요.”

보브 할아버지가 늘 보비 곁에서 함께 해주었듯이 보비 역시 할아버지 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정성껏  돌봐 드립니다. 그 덕분에 보브 할아버지는 점점 더 건강이 좋아지셔서 이젠 조금씩 걸을 수도 있게 되었어요. 할아버지가 보비의 첫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듯이, 손자 보비의 어깨를 짚고서 오른발, 왼발… 한발 한발 따라 걸으면서 말이죠.

문득 존 버닝햄의 “우리 할아버지“에서 할아버지가 늘 앉아 계시던 빈 소파를 쓸쓸히 바라보던 손녀의 모습이 오버랩 됩니다. 꼬마 보비도 언젠가는 코끼리 블록을 쓸쓸히 바라보는 날이 오겠죠.

할아버지… 아이들에게 아빠랑은 또 다른 느낌의 기댈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할아버지에게도 손자는 아들과는 또 다른 느낌의 즐거움이고 위안이겠죠. (뭐… 할아버지 입장에서 아빠가 된 아들이 와서 재롱 떨어봐야 귀엽기는 커녕 당혹스럽기만 하겠죠… ^^)


오른발, 왼발
책표지 : 비룡소
오른발, 왼발(원제 : Now One Foot, Now The Other)

글/그림 토미 드 파올라, 옮김 정해왕, 비룡소

토미 드 파올라
@Tomie.com

토미 드 파올라는 이 책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편안한 그림 속에 깊은 사랑을 군더더기 없이 담아낸 점이 마음에 들어 찾아 보니 존 버닝햄 만큼이나 오래도록 작품활동 해 온 할아버지셨네요 ^^한동안은 토미 할아버지의 책들 찾아 다니게 생겼습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의 그림책들 찾아서 읽는 재미, 그림책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1934년생이면 올해로 팔순인데 사진 속의 토미 할아버지는 아주 쌩쌩하시네요 ^^ 미국 코네티컷주에 있는 뉴런던이라는 항구도시에서 200년 된 헛간을 수리해서 살고 있다고 해요. 브론테란 이름의 에어데일 테리어와 함께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