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연장 가방

그렇게 ‘윤 목수’에게도 가족이 생겼다.
두 사람은 판잣집에 작은 셋방을 구했고,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 같은 세간도 샀다.
마침 ‘윤 목수, 일 야무지게 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작업 수첩에는 공사 일정이 몇 달 치씩 쌓였다.
목수로서 일하려면 필요한 연장이 한둘이 아니다.
아버지는 이즈음 연장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반짝반짝 광이 나는 자전거, 잘 손질된 도구들이 가지런히 담겨진 연장 가방. 새엄마 밑에서 천덕꾸러기로 자라고,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어야 했던 아버지. 묵묵하고 성실한 덕에 대목의 눈에 들어 목수의 길로 들어섰고 손이 야무진 탓에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던 아버지.

외롭게 자란 아버지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 낳아 가족을 이루게 되면서 느꼈을 가장의 책임감은 낯설지만 무거웠을 겁니다. 야무진 윤목수 만큼이나 똑소리 나게 살림하는 아내를 위해, 자상하지 못한 아버지지만 그래도 아비라고 힘든 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살갑게 반기는 아이들 위해 아버지는 그렇게 매일매일의 삶을 자신의 소중한 연장들로 벼리고 또 벼리며 살아오셨겠죠.

아버지에게 연장은 가족을 지탱하는 도구였습니다. 대패질 한 번에 아내 얼굴에 웃음 꽃 피어나고, 망치질 한 번에 자식들 키가 훌쩍 자라납니다. 아버지의 연장들은 삶의 흔적이 새겨진 도구들이고, 아버지의 연장 가방은 그렇게 살아온 삶의 궤적이 담긴 아버지의 인생입니다.

부산 집에 가끔 들르면 창고의 연장들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 연장 많이 비었는데 다 어디 갔어요?”
“필요한 사람한테 주는 게 맞지 않겠나. 일하는 삼촌들 줬다.”
아버지의 연장들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삶을 채우러 떠났다.

‘문짝 하나 고치기가 와 이리 힘드노. 팔에 힘이 안 들어가네. 인자 나도 나이 들었는 갑다.’ 그렇게 굳세던 아버지가 어느날 하소연 하듯 내뱉으신 한 마디… 파킨슨병이었습니다. 아버지 몸은 점점 더 뻣뻣해졌고, 걸음도 말하는 것도 점점 더 느려졌습니다.

아버지는 연장 가방에서 아끼던 연장들을 하나 둘 꺼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이제 남은 건 낡은 연장 가방뿐입니다. “아버지… 이 가방은 뭐 하러 남겨 뒀어요?” 자식의 물음을 들으신 건지 못 들으신 건지 아버지는 그저 눈을 감고 소파에 몸을 기댑니다.

이사하느라 물건 정리할 때 연장 가방만큼은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던 아버지. 아버지는 왜 연장 가방만큼은 남겨두고 싶어하셨던 걸까요? TV를 켜둔 채 소파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계신 아버지는 지금 무슨 생각에 잠기신 걸까요?


아버지의 연장 가방

아버지의 연장 가방

글/그림 문수 | 키위북스
(2021/11/05)

“아버지의 연장 가방”은 창고 구석에서 발견한 아버지의 낡은 연장 가방을 보며 느꼈던 작가의 감정들을 그림으로 담아낸 그림책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와 목수였던 아버지는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손놀림으로 무언가를 창조해낸다는 점에서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소파에 누운 채 눈을 감고 계신 아버지는 별 말씀 없으셨지만 작가는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아버지가 연장 가방을 차마 떠나 보내지 못하는 이유를. 자신의 화구함을 볼 때마다 작가는 아버지의 연장 가방을 떠올릴 겁니다. 어린 나이에 일터로 내몰렸던 어린 아버지의 꿈과 희망, 가족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아버지의 삶이 담긴 그 연장 가방을…

아내는 친정에 갈 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꼬옥 안아드리곤 합니다. 만나서는 반가운 포옹이고, 헤어질 때는 ‘엄마 아빠 다시 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하는 기도겠죠. 처음엔 어색함에 뿌리치던 아버지도 이젠 익숙해지셨는지 가만히 안긴 채 나이든 딸을 배웅합니다. 현관에 서서 지켜보던 그 모습과 그림책 속 한 구절이 자꾸만 오버랩됩니다.

나무는 그렇게 많이 깎고 또 깎았는데,
아버지 어릴 적 외로움도
마음에서 한 겹 한 겹 다 깎아 냈을지 궁금했다.

누군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것, 마음에 쌓인 외로움과 상처들을 한 겹 한 겹 깎아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 어릴 적 외로움은 마음에서 다 깎여졌을지 궁금해하는 문수 작가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만 있지 말고 살갑게 다가가서 꼬옥 안아드리라고.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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