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보다 태양

구름보다 태양

(원제 : Something Good)
마시 캠벨 | 그림 코리나 루켄 | 옮김 김세실 | 위즈덤하우스
(2022/02/16)


아이들이 교장실 문 앞에 길게 줄 서있습니다. ‘교장실’이란 점과 아이들 표정을 보니 좋은 일로 불려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교장실에 불려온 건 누군가 여자 화장실 벽에 쓴 ‘나쁜 말’ 때문이었어요.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아는 게 있는지 물었지만 다들 똑같이 모른다고 답할 뿐이었지요.

교장 선생님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의 각양각색의 표정을 분석을 해봅니다. 지그시 눈 감은 아이, 천장을 바라보는 아이, 눈치 보는 아이, 눈이 동그래진 아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의심이 싹트는 순간입니다.

화장실을 쓰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오히려 그 나쁜 말이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아이들은 슬쩍 화장실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구름보다 태양

그 나쁜 말을 보게됩니다. 작가는 나쁜 말을 비추는 대신 아이들의 표정으로 그 말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다음 날부터 화장실 문은 굳게 잠겼고 그 때문에 여자 아이들은 이 층 화장실을 써야했어요. 굳게 잠긴 화장실 문 안에서 새어나오는 엉킨 선들이 이 층 화장실 계단을 오르는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떨쳐내려 해도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그것.

나쁜 말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었어요.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간 나쁜 말을 모두가 알게 되었고 모두의 마음을 괴롭히게 되었답니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쁜 말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어요.
어떤 아이들은 걱정하거나 불안해했고
어떤 아이들은 슬퍼하거나 화를 냈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아이는 없어요.

구름보다 태양

나쁜’ 말’이 아이들의 ‘마음’을 완전히 잠식하기 전에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을 불러 모아 모두가 특별한 존재임을 이야기해 주었어요. 담임 선생님은 무릎을 꿇고 아이들에게 학교를 상징하는 배지를 나눠주셨어요. 걱정과 불안, 그리고 불신에 휩싸여 있던 아이들 표정이 한층 밝아졌습니다. 선생님이 달아준 똑같은 배지를 통해 비로소 동질감을 회복한 것이지요.

모두를 짓누르던 어둡고 탁한 공기가 걷히고 한층 밝고 가벼운 분위기로 전환됩니다. 물론 여전히 의기소침한 아이들도 보입니다. 선생님은 둥그렇게 모여 앉은 아이들에게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그림 프로젝트에 대해  말해주었어요.

구름보다 태양

아이들이 함께 할 그림 프로젝트는 나쁜 말이 쓰여있던 여자 화장실 벽을 모두 함께 칠하는 것이었습니다.

잠그고 덮고 가린다고 상처가 사라질 수는 없는 일, 어쩌면 심하게 곪다 마침내는 문드러져 버릴지도 모를 상처를 선생님은 아이들이 스스로 지우도록 합니다. 상처가 없어지지는 않지만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나쁜 말이 쓰여있던 벽이 아이들의 손길에 물들고 예쁜 그림으로 채워집니다. ‘나쁜 말’이 써져 있던 벽은 그렇게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그림으로 채워졌어요. 밝고 강렬한 색채와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일까요? 고사리 손으로 그려낸 아이들의 그림에서 빛으로 가득한 샤갈의 그림 ‘생 폴 드 방스의 정원‘이 떠오릅니다. 환하게 밝아지는 아이들처럼 내 마음도 환하게 밝아집니다.

이 이야기는 작가 마시 캠벨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고 합니다. 색채의 대비와 전환으로 아이들의 감정과 변화를 담아낸 코리나 루이켄의 그림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상처 입은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어떤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 마음을 밝은 빛깔로 가득 채우라고, 그것이 세상을 밝히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라고 말해주는 그림책 “구름보다 태양”.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낼 수 있는 것도 우리, 그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질 수 있는 것도 우리. 빛으로 가득해지는 벽을 보면서 마음에 위로를 받습니다.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지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은 내 안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어요. 빛은 어둠을 압도합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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