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달린다

아파트 계단에 두 아이가 앉아 있는 장면으로 그림책은 시작합니다. “오늘 밤 우리는 밖에 나가서 달렸어요. 지금은 한숨 돌리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두 아이. 어디를 그렇게 달렸을까요? 아이슬란드를 지나 그릇란드(?), 카르데몸 마을을 지나 삐삐의 뒤죽박죽 별장, 죽은 바다 사해를 지나 레고랜드, 허물어진 공장을 지나 무민 골짜기를 거쳐 달에서 해까지 온 우주를 누비다 방금 돌아온 거래요.

아이들이 달린 곳은 아이슬란드나 사해처럼 익숙한 지명도 있지만 ‘그릇란드’처럼 아이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곳도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 속의 장소들과 우주처럼 오로지 상상으로만 달릴 수 있는 곳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실컷 달리고 나니 조금 목이 말라서 한숨 돌리는 중이지만 다리는 아직 가볍고 발바닥도 멀쩡하다며 아이들은 또 밖으로 달려 나갑니다.

우리는 다시 달려 나갔어요.
바깥은 어느새 쌀쌀했어요.
우리는 지구를 돌고 또 돌았어요.
그냥 막 달리고 싶었어요.
지구를 세 바퀴나 더 돌았어요.

지구를 돌고 또 돌았대요. 그냥 막 달리고 싶어서요.

달리는 것은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기에 달릴 수 있습니다. 달림으로써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합니다. 달리고 또 달려 내 가슴 속에 요동치는 꿈과 희망이 나와 함께 살아 있다고 외치는 겁니다. 내 두 눈 두 팔 두 다리가 멀쩡하게 살아 있다고, 뜨거운 나의 심장이 힘차게 뛰고 있다고, 세상이 나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돌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꿈꾸는 그 곳으로 달려갈 거라고…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그놈의 설마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순간 저는 왜 이 그림책이 떠올랐을까요? 울 수도 없고 위로 받을 길 조차 없는 이 상황에서 달리고 또 달리는 아이들, 실컷 달리고 나서 친구와 사이좋게 앉아 있는 두 아이의 맑고 깊은 눈동자가 문득 생각나서 아침 내내 보고 또 봤습니다.

5년 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마음껏 달리고 또 달릴 수 있는 세상을 안겨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달린다

우리는 달린다

(원제 : Vi Springer!)
요아르 티베리 | 그림 사라 룬드베리 | 옮김 신동규 | 위고
(2021/12/25)

단 한 번도 우리의 믿음을 저버린 적 없는 사라 룬드베리의 최근작 “우리는 달린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오가며 신나게 달리고 또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을 읽다보면 어릴 적 불렀던 동요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두웅그~니~까 자꾸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제목이 “앞으로” 였던가요? 이어지는 가사 중에는 온 세상 어린이가 하하하 웃으면 그 웃음소리 달나라까지 들리겠네 뭐 이런 내용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제법 그림책 내용과 맞아 떨어져서 혼자 웃었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누군가 나를 지치게 할 때, 가슴이 답답할 때, 씩씩한 두 아이의 힘찬 발걸음 따라가보세요. 조금은 위로가 될 겁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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