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나입니다

나는 그냥 나입니다

그림 정인하 | 글 윤아해 | 노란돼지
(2023/10/31)


낯익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축구 선수의 뒷모습, 그리고 그 등판에 적힌 『나는 그냥 나입니다』라는 제목. 축구와 관련된 이야기일까? 선수와 감독, 또는 선수들끼리 갈등이 있었던 걸까? 유니폼 탓에 생각이 축구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그림책을 펼칩니다.

나는 그냥 나입니다

여의사가 대단해!

아니요, 나는 그냥 의사입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소중한 생명을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사입니다.

‘여의사가 대단해!’라는 말은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남자도 아닌 여자가 의사를 하다니…’라는 불신과 편견에 기초한 비하와 비아냥의 뜻이 더 큽니다. 남자건 여자건 똑같은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나는 그냥 나입니다

이런, 여자 중장비기사야?

아니요, 나는 그냥 중장비 기사입니다.
굴착기로 땅을 파고 불도저로 땅을 고르며,
일을 잘 해냈을 때 가슴 뿌듯한 중장비기사입니다.

‘이런, 여자 중장비기사야?’라는 말에는 아예 대놓고 불만이 드러납니다. 기껏 불렀더니 하필이면 여자가 오다니… 이건 남자 기사보다 일을 잘 못할거라는 편견이 가득 담긴 말입니다.

여자 축구 선수, 여배우, 여경찰, 여사장, 여군, 여자 대통령… 여자만 다르게 부르는 세상을 향해 사회 구석구석에서 열심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성들이 외칩니다.

나는 내 일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니라고, 남자들도 다르게 부른다고… 직업 앞에 ‘남자’를 붙이는 건 어떤 직업일까요?

나는 그냥 나입니다

직업이 남자 주부래.

아니요. 나는 그냥 주부입니다.
가족 구성원이 편안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가정을 돌보고 관리하는
주부입니다.

아, 주부! 그러게요.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룬 것일뿐 여자가 꼭 주부를 맡아야 한다는 법은 없죠. 남자도 얼마든지 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주부뿐만이 아닙니다. 남자 무용수, 남자 유치원 선생님, 남자 승무원… 그림책엔 나오지 않지만 저는 간호사가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남자 간호사.

나는 그냥 나입니다

여자? 남자? 편견과 차별에 사로잡힌 세상을 향해 사회 구석구석에서 열심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성들, 그리고 남성들이 함께 외칩니다.

나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내 일을 사랑하는 그냥 나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이웃에게 ‘여자’ 또는 ‘남자’라는 꼬리표를 붙여가며 차별을 일삼는 사회를 향해 여자 일, 남자 일 따로 없다고 당당하게 맞서는 그림책 『나는 그냥 나입니다』.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꼬리표만큼은 떼어 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차별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여자 남자라는 꼬리표는 떼어 주고 싶었어요. 이 책을 읽는 모든 어린이들이 눈치 보거나 주눅들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살아가기를 응원합니다.

– 윤아해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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