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와 버릇 없는 아기

코끼리와 버릇 없는 아기

(원제 : The Elephant and the Bad Baby)
엘프리다 비퐁 | 그림 레이먼드 브릭스 | 옮김 우순교 | 보림
(1998/03/25)

※  1969년 초판 출간


“눈사람 아저씨”(1978)와 ‘산타 할아버지 시리즈’로 이미 친숙한 레이먼드 브릭스는 1966년에 “Mother Goose Treasury”로, 1973년에 “산타 할아버지”로 두 차례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받았습니다. 오늘 소개할 “코끼리와 버릇 없는 아이”는 1969년에 출간된 그림책입니다.

아기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원제에서는 ‘Bad Baby’라는 표현까지 썼을까요? 우선 이야기부터 들어볼까요?

코끼리와 버릇 없는 아기

코끼리가 버릇 없는 아기에게 말했죠.
“태워 줄까요?”

버릇 없는 아기가 대답했죠.
“응.”

코끼리와 아기의 대화만으로도 지금부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짐작이 되죠? 저는 벌써부터 웃음이 나기 시작합니다. 점 하나만 찍었을 뿐인데 눈높이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존재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묘한 어색함까지도 잘 살려낸 코끼리와 아기의 눈동자. 역시 레이먼드 브릭스~

코끼리와 버릇 없는 아기

코끼리는 아기를 태우고 쿵쾅쿵쾅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를 만났구요.

코끼리가 물었죠.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버릇 없는 아기가 대답했죠.
“응.”

그 다음엔 정육점에서 고기 파이, 그 다음은 빵집에서 빵, 햄버거 가게에서 감자튀김, 과자 가게에서 초콜릿 과자, 사탕 가게에서 막대 사탕, 과일 가게에서 사과… 코끼리는 가게마다 들러서 그곳에서 제일 맛있는 걸 먹겠냐고 물어봅니다. 꼬박꼬박 존댓말로요. 물론 그때마다 아기는 ‘응’이라고 대답하구요. 😆

코끼리와 버릇 없는 아기

과일 가게를 끝으로 코끼리는 달리기를 멈춥니다. 그리고 아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넌 한 번도 ‘네’라고 하지 않았지!”
“넌 한 번도 ‘네’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고는 길 한복판에 쿵 주저앉아버리는 바람에 아기는 떼구루루 콩 굴러 떨어지고 말았죠.

코끼리와 버릇 없는 아기

여지껏 코끼리와 아기를 쫓아서 달려왔던 가게 주인들도(맨 앞에서부터 아이스크림 가게 아저씨, 정육점 아저씨, 빵집 아저씨, 햄버거 가게 아저씨, 과자 가게 아저씨, 사탕 가게 아주머니, 과일 장수 아저씨) 아기에게 “뭐야? 한 번도 ‘네’라고 하지 않았다고?”라고 큰 소리로 말합니다.

코끼리와 가게 주인들에게 포위된 채 꾸지람을 들은 아기 뒷모습 좀 보세요. 아기는 잔뜩 풀이 죽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엄마한테 데려다 주세요, ?”

드디어 아기 입에서 존댓말이 나왔네요~ 😅

코끼리와 버릇 없는 아기

‘응’밖에 모르던 아기 입에서 ‘네’라는 예쁜 말이 나왔으니 더 이상 뭐라 하면 안 되죠~. 코끼리는 아기를 다시 태우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가게 주인들도 모두 그 뒤를 따라갔구요. 집에 도착하자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는 엄마. 엄마가 “모두들 간식 드시러 오셨어요?”하고 묻자 모두 소리 모아 대답합니다.

“네~에!”

그리고 다 같이 따끈한 차와 맛있는 팬케이크를 먹었답니다.

이미 ‘네’도 잘 알고 있는 우리 아이들

그림책 속 아기는 코끼리와 가게 주인들에게 혼이 좀 나고서야 ‘네’를 배웠지만 이 그림책을 본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혼날 일 없이 기분 좋게 ‘네’를 배울 수 있었을 겁니다.

엄마 아빠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아이들은 ‘응’뿐만 아니라 ‘네’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림책에서 그 누구도 아기에게 존댓말을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결국엔 아기가 ‘네’라는 말을 한 것처럼 말이죠. 글자야 공부처럼 배워야 하겠지만 말은 엄마 아빠 품에서 자연스레 익히게 되는 것이니까요. 엄마 아빠가 존칭이나 경어가 필요할 때 적절하게 구사했다면 아이는 이미 어떤 때 어떤 말을 써야 하는지를 무의식적으로 익힐 수 있었을 테니까요.

엄마 아빠가 이 책을 읽어주다 코끼리나 가게 주인들의 대사를 읽고 나면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아기의 ‘응’을 버릇 없는(?) 버전으로 외쳐 줄 겁니다. 깔깔깔 웃으면서 말이죠. 물론 기죽은 채 하는 ‘네’도, 마지막에 다 같이 기분 좋게 외치는 ‘네’도 신나게 소리칠 테구요.

그림책 속 아기처럼 ‘응’을 고집하는 아이가 있다면 ‘네’라고 해야 한다고 다그치지만 말고 “코끼리와 버릇 없는 아기”를 재미나게 읽어주세요!

바담풍? 아이는 어른의 거울

아직 이 그림책을 읽지 않은 분은 한 가지 궁금할 겁니다. 가게 주인들은 왜 코끼리와 아기를 따라온 건지 말입니다. 가게 주인들이 줄줄이 따라온 이유는 코끼리가 먹을 것들을 단 한 번도 값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기에게 ‘네’를 가르쳐 주는데 너무 집중했던 탓이었을까요?

심지어 제 몫은 다 먹기까지 했습니다. 코끼리가 갑자기 멈춰서는 바람에 아기가 콩 떨어지는 장면을 보면 아기가 떨어뜨린 음식들은 모두 종류별로 하나뿐입니다. 코끼리가 집어줄 때는 분명 두 개씩 집었거든요. 물론 가게 주인들은 리듬감을 살리기 위한, 엔딩에서 모두 다 같이 큰 소리로 ‘네~에’하고 외치기 위한 조연들이죠.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라는 작가들의 위트 있는 조언을 위한 설정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엄마 아빠가 ‘바담풍’이라고 해서는 아이가 절대로 ‘바람풍’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입니다. 아이의 언행에 문제가 있다면 엄마 아빠에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먼저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를 혼내거나 훈계하기 전에 말이죠.

숨은 이야기들을 찾아보세요

원래 이야기 말고도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얼마든지 끄집어낼 수 있는 게 그림책의 매력이죠. 굳이 일러스트레이터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아기자기한 그림들 속에서 여러분들만의 이야기를 찾아보세요. 예를 들자면 이런…

  • 코끼리와 아기가 찾아간 가게들엔 늘 꼬마 손님이 등장하는데 그렇지 않은 가게가 두 곳 있습니다. 어느 가게에 꼬마 손님이 없었을까요? 그 두 가게엔 왜 꼬마 손님이 없었던 걸까요?
  • 팬케이크 파티 장면에서 테이블 매너가 가장 좋지 않은 건 누굴까요? 이건 나라나 문화적 차이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다를 수 있겠죠? 다양한 모습으로 테이블 앞에 앉은 주인공들을 보면서 아이와 함께 이런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팬케이크 파티 후 아기는 잠들고 코끼리와 가게 주인들은 다시 신나게 달려나가는 장면으로 그림책은 끝이 납니다. 오늘의 주제가 존댓말과 예절이라면 코끼리와 가게 주인들은 뭔가 빼먹은 게 있습니다. 집을 떠나기 전에 엄마에게 ‘잘 먹었습니다!’는 인사를 안 했어요. 아기에게 ‘잘 자!’라는 인사도 안 했구요. 어쩌면 이 책은 버릇 없는 아기가 아니라 버릇 없는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 아닐까요?

리듬감 있는 글과 아기자기한 그림 덕분에 읽는 맛 보는 맛 모두 느낄 수 있는 “코끼리와 버릇 없는 아기”. 아직 ‘응’이 익숙한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네’를 가르쳐주는 그림책, 아이들에게 훈계는 간단명료할수록 좋다고 엄마 아빠에게 조언하는 그림책, 따뜻한 차와 팬케이크는 다 같이 먹어야 맛있다고 말하는 그림책입니다.


내 오랜 그림책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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