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꿈

아빠아~!
나도 빨리 아빠처럼
큰 사람이 되면 좋겠어.

왜 쑥쑥 자라고 싶냐고?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이다음에 업어 주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아빠아~!
아빠아~!

아무 죄 없는 시민들이 죽어갔습니다. 같은 동족끼리 총을 겨누었던 전쟁이 끝난지 채 3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피에 굶주린 정치 군인들이 또 한 번 무고한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날 한 아빠는 집에서 기다리는 아들에게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다섯 살 어린 아들은 이 세상에서 제일 좋고 제일 자랑스러운 아빠 대신 영정 사진을 가슴에 품어야만 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 후 권정생 선생님은 신문에 실린 그 아이의 사진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편지를 씁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와서 미안하다고, 이 땅의 모든 거짓을 다 쓸어내고 다시는 피 흘리는 일 없이 살아가자고…

다시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 고정순 작가가 그 편지를 읽습니다. 죄스런 마음에 쓰긴 했지만 차마 부치지 못했던 그 편지를… 그리고 아빠처럼 큰 사람이 되고 싶었던, 무럭무럭 자라서 아빠를 업어 주고 싶었던 그 아이의 그리움을 그려냈습니다. 광주의 다섯 살 아이 조천호에게, 같은 아픔 같은 그리움 가슴에 담은 채 살아가는 광주 시민들에게, 그 아픔 함께 나누는 선한 이웃들에게 띄우는 마음의 편지 “봄꿈”입니다.


봄꿈

봄꿈

글/그림 고정순, 편지 권정생 | 길벗어린이
(2022/05/18)

“봄꿈”은 광주의 조천호 군에게 쓴 권정생 선생님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모티브로 잔혹한 역사에 상처 입은 이들을 위로하고, 아픈 그리움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가는 이들을 어루만져 주는 그림책이자 그날의 진실을 고발하는 그림책입니다.

봄꿈, 광주의 조천호 군에게...

경상도 아이 보리문둥이가
… 광주의 조천호 군에게

천호야
늦게까지 늦게까지 남아서 피어나던
넌달래는
그 때
1980년 5월에도 피었을텐데
넌달래꽃 한 가장이 꺾어
너를 달래지 못한 바보 같은 동무

천호야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그곳 광주의 슬픈 눈물을
감쪽같이 그렇게 모르고 있었다

벌써 8년이 지난 지금에야
우리는 너의 다섯살 때 사진을 신문에서 봤다
아버지의 영정을 보듬고 앉은 너의 착한 눈을

그러나 천호야
지금 이렇게 늦었지만
넌달래꽃 한 다발 꺾어
너의 가슴에 안겨 주면서 약속할께
우리 함께 따뜻하게 참을 나누며
우리들의 슬픈 어머니를 위로하며
저 백두산 꼭대기까지
남북의 아이들 모두가 하나 되어
이 땅의 거짓을 쓸어내고

다시는 피 흘리는 일 없이 살아갈 것을

권정생

※ 위에서는 생략된 편지의 앞 부분에 ‘경상도에서는 5월에 늦게 피는 철쭉꽃을 넌달래꽃이라 부른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고정순 작가는 광주의 조천호 군을 직접 만나 그림책 작업을 허락 받았습니다. 더 이상 ‘조천호 군’이 아니라 두 아들의 아빠가 된 40대 가장 조천호 씨는 “아이들에게 나를 대신해 그날의 이야기를 해 주는 책을 만들어 주세요.”라는 당부를 남겼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림책 뒤쪽에는 권정생 선생님이 쓴 편지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손글씨여서 처음엔 권정생 선생님의 친필인가 하고 찾아보니 글씨체가 달랐습니다. 아마도 그림책으로 만들기로 마음 먹고 고정순 작가가 한 줄 한 줄 마음에 새기고자 필사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5·18민주화운동 다룬 그림책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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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칠나무
황칠나무
2022/05/19 16:29

요즘 부쩍 전쟁이라는 단어가 싫어졌어요. 어디에 쓰여도 슬프고 무섭기만 하네요.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일 매일이 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온빛지기
Admin
2022/05/23 22:00
답글 to  황칠나무

상처가 다 아물어도 그 고통의 기억까지 지워지진 않을 겁니다. 그래서 더 그들에게 봄꿈 같은 위로가 필요한 거죠.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가 함께하고 있음을 그들이 알 수 있도록 우리 마음 속 촛불을 늘 밝혀두는 것…
황칠나무님도 함께 하실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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