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보들 실뭉치

보들보들 실뭉치

글/그림 김효정 | 보리
(2022/03/21)


아이들과 그림책 수업을 할 때는 책을 읽기 전 한참 동안 표지를 감상하곤 해요. 제목도 읽어보고 앞뒤 표지를 활짝 펼쳐서도 보고 손으로 만져도 보고… 어떤 느낌인지, 뭐가 보이는지,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요리조리 뜯어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죠. 표지를 보면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 나누는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해요. 그림책은 아이들과 함께일 때 가장 반짝반짝 빛을 발합니다.

초록 기운 가득한 “보들보들 실뭉치”를 보면서 아이들의 예쁜 눈망울을 떠올립니다. 엉뚱하고 싱그럽고 사랑스러운 그 마음을 조용히 느껴봅니다.

보들보들 실뭉치

도로롱 도로롱 코를 골며 잠을 자던 도롱이가 깨어나 꼼지락꼼지락 기지개를 켜다 그만…… 집이 부서졌어요. 조오기 앙증맞은 두 다리가 집 밖으로 쏘옥~ 나온 거 보셨나요? (잠 많이 자서 키가 쑤욱 커졌나 봐요. ^^)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도롱이는 얼른 다시 집을 짓기로 마음먹고 우선 땅으로 내려와 풀잎을 뜯어 먹었어요. 그리고 어떤 집을 지을까 생각하며 산책을 했지요. 산책길에 도롱이는 풀숲에 떨어진 노오란 털실 뭉치를 발견했어요.

우아, 어쩜 이렇게 보들보들 보드랍지?
그래. 이번에는 이걸로 집을 짓는 거야.

보들보들 실뭉치

보들보들 보드라운 집을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뜨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뜨다 보니 자꾸만 욕심이 앞섭니다. 싱싱한 잎사귀를 잔뜩 넣을 수 있게 조금 크게, 잠자기 전에 이리저리 뒤척일 수 있게 조금 더 크게… 그렇게 크게 더 크게 조금 더 크게… 실뭉치는 작아지고 작아지고 도롱이의 집은 커지고 더 커지고…

그런데 막상 커다래진 집에 들어가 보니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집을 매단 참나무 가지가 축 처지더니 집이 흐물흐물 내려앉아 버렸거든요. 나에게 딱 맞는 집의 포근함, 안락함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죠.

힝,
이제 어떻게 하지?

이럴 때 내가 도롱이였다면? 커다래진 집을 매달 수 있는 좀 더 튼실한 나뭇가지를 찾아  떠난다. 친구들도 초대해 함께 지낸다. 다 버리고 새로운 재료를 구해 다시 집을 짓는다?

도롱이는 새 집에서 실을 살살 풀어내 다시 집을 지었어요. 꼭 맞게 집을 지었더니 이번에는 금방 완성이 되었지요. 보들보들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지는 몸에 꼭 맞는 집. 흐아암! 도롱이 하품 소리에 나도 절로 하품이 납니다. 도롱이는 얼마나 피곤했을까요? 오늘 두 번이나 집을 지었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피곤할 때 들어가 쉴 수 있는 보들보들 안락한 새 집이 생겼으니.

원래 자리에 다시 갖다 놓은  노란 털실,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어 또 다른 “보들보들 실뭉치”이야기가 펼쳐지겠지요. 그 누군가는 누구였을까 그림책으로 살펴보세요. 노란 실뭉치를 발견하고 빙그레 웃는 그 누군가를 보면서 다시 웃음이 나왔어요. 그 누군가에게도 실뭉치가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저에겐 웃음 포인트가 되었거든요.

“보들보들 실뭉치”는 오늘 무엇 때문에 상처받았거나 왠지 모르게 피곤한 하루였다거나 그런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그림책입니다. 초록초록한 풍경과 도롱이의 욕심 없는 마음이 성나고 지친 마음을 사르르 어루만져 줄 거예요. 도로롱 도로롱, 꼼지락 꼼지락, 바스락 바스락, 파릇파릇, 보들보들, 꿈틀꿈틀, 아삭아삭, 흐아암! 꽁꽁, 흐물흐물, 힝, 살살, 쏙…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예쁜 의성어, 의태어를 만나는 즐거움도 함께 누려보시구요.

도롱이, 짚을 엮어 만든 비옷을 뜻하는 단어로 알고 있었는데 곤충 중에 ‘도롱이벌레’라 불리는 곤충이 있다고 하네요. 김효정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도롱이벌레’는 ‘주머니나방’ 애벌레의 또 다른 이름으로 주변에 있는 재료들로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다 ‘아!’했던 건 흔히 보았던 기억 때문이었어요. 나뭇가지에 나뭇잎이나 작은 나뭇가지들이 얽혀 붙어 있는 것들이 도롱이벌레의 집이었다니… 그러고 보니 도롱이벌레 집의 형태가 짚으로 만든 도롱이를 입은 모습과 상당히 유사해 보입니다.

‘힝, 이제 어떻게 하지?’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우선 배불리 먹는다. 그리고  잠시 산책을 나선다. 내려놓으니 보입니다. 투명하게 보입니다. 이렇게 오늘도 그림책으로 또 하나를 배웁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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쟌이맘
쟌이맘
2022/05/19 13:25

주인공도, 벌레이름마저도 넘 긔여운거 아닌가요~~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막 신청했어요! 이따 2시 북클럽에서 곧 뵈용

가온빛지기
Admin
2022/05/23 22:02
답글 to  쟌이맘

쟌이맘님, 답글이 너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 쟌이맘님의 환한 웃음에 기분이 좋아지는 1인입니다. 아마 함께하는 다른 분들도 같은 마음일 겁니다. 목요일에 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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