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바의 여름 마당에서

그리고 또 여름이 오면,
쑥쑥 자라나겠지.

맘껏 자라나겠지.

저에겐 여름에만 쓰는 하늘색 벙거지 모자가 있어요. 오래전 엄마가 사주셨어요. 여름이 오면 벙거지 모자를 제일 먼저 꺼내 걸어 놓아요. 저의 여름은 하늘색 모자와 함께 시작됩니다. 그림책 속 수수바는 해님처럼 빨간 모자를 쓰고 있어요. 초록빛 마당에 선 수수바의 빨간 모자가 눈에 쏙 들어옵니다. 여름 요정입니다.

초록으로 가득한 마당에서 여름의 자유를 맘껏 누리고 있는 수수바를 보면서 지난여름을 돌아봅니다. 모자를 쓰고 종종거리며 걷던 산책길을, 거리를, 사람들을 떠올려봅니다. 짙은 초록, 파란 초록, 사이사이 연초록, 온갖 색깔로 강렬했던 여름을 기억해 봅니다.

여름은 참 좋았습니다. 풀도 나무도 꽃도 하늘도 태양도 무더위도 소나기도 우산도 아이스커피도 좋았습니다. 엄마가 사준 벙거지 모자는 올해도 똑같이 좋았습니다. 여름을 기다리며 가을을 살고 겨울을 살고 그리고 봄을 살겠습니다. 그리고 또 여름이 오면 쑥쑥 자라날, 맘껏 자라날 초록을 기억합니다.


수수바의 여름 마당에서

수수바의 여름 마당에서

글/그림 조미자 | 핑거
(2022/08/16)

한여름 수수바의 마당에서 풀들이 쑥쑥 자라납니다. 점점 강렬해지는 땡볕, 거침없이 쏟아지는 소낙비 속에서 초록은 깊고 짙고 울창해집니다.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잠시만 한눈팔아도 어느새 풀들이 쑥쑥, 쭉쭉~ 마음껏 자라납니다. 여름이 깊어집니다.

풀들은,
쑥쑥 자랄 수 있는 여름이 좋겠지.
높이높이 커질 수 있는 여름이 좋겠지.

들썩이고 꿈틀이고 사사삭 몰아치고 후두두 떨어지고 그사이 바지런히 자라난  초록이 점령한 마당, 마당을 찾아온 여름은 다채로운 색깔로 빛납니다. 여름 안에서 아이들은 또 얼마나 자랐을까요? 여름 풀 만큼은 아니어도 분명 내 마음도 조금 자랐을 거예요. 분명.^^

나의 여름과 우리의 계절이 한 권의 그림책 속에 그대로 녹아있는 “수수바의 여름 마당”, 가을 초입에 읽는 여름그림책 느낌이 색다릅니다. 슥슥슥 시원하게 그린 조미자 작가의 수채화는 그대로 힐링입니다. 지난여름 나의 마당에선 무엇이 살다 갔을까요? 무엇을 꽃피웠을까요?


※ 함께 읽어 보세요: 나의 오두막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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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미
박선미
2022/09/16 17:10

가을 초입에 읽는 여름책~ 읽고 싶어졌어요. 여름을 느끼기. 여름을 들여다보기. 여름을 사랑하기.

가온빛지기
Admin
2022/09/20 21:12
답글 to  박선미

지나간 것은 모두 좋은 기억인가 봐요.
여름을 그리워하며 나의 여름 마당을 다시 기억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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