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의 트럼펫

벤의 트럼펫

(원제 : Ben’s Trumpet)
글/그림 레이첼 이사도라 | 옮김 이다희 | 비룡소
(발행 : 2006/11/15)

※ 1979년 보스턴 글로브 혼북상 명예상 수상작
※ 1980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재즈 음악이 들리는 것만 같은 그림책 “벤의 트럼펫”은 트럼펫 연주자가 꿈인 한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트럼펫으로 연주하는 재즈 들으면서 읽어보실 분은 트럼펫 이모지를 클릭하세요. 🎺

흑백 그림으로 멋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벤의 트럼펫” 초판은 1979년에 나왔습니다. 42년이나 지났으니 당시에 이 그림책을 읽었던 주인공 벤 또래의 아이들은 지금 모두 50대가 되어 있겠군요. 그들 중에는 주인공 벤처럼 재즈 연주자의 꿈을 키우고 이뤄낸 사람도 있을테고, 40여 년 전 읽었던 이 그림책을 여전히 간직한 채 LP판 들을 때마다 이따금씩 꺼내보는 사람도 있을테죠. 캬~ 우리네 인생이야말로 재즈 아닐까요? 이럴 때 찐득한 러스티 네일이나 묵직한 글렌피딕 한 모금 넘겨줘야 하는 건데…(음… 허세 그만 떨라구요? 네…😅)

벤의 트럼펫

저녁이면 벤은 비상계단에 앉아 집 건너편의 지그재그 재즈 클럽의 연주자들과 함께 멋진 음악을 연주합니다. 빈 주먹뿐이긴 하지만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하나가 되어 흠뻑 빠져듭니다.

피아니스트와 색소폰 연주자,
트롬본 연주자 그리고 드러머,
벤은 그중에서도 트럼펫 연주자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해요.

벤은 재즈 연주자들보다 더 멋진 건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트럼펫 연주자는 벤에게 우상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살짝 열린 클럽 문 사이로 연주자들이 연습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 둘 순서대로 연습을 마치고 벤이 그토록 기다리던 트럼펫 연주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벤은 그의 음악에 맞춰 몸을 들썩이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벤의 트럼펫

벤은 틈만 나면 주먹 트럼펫 연주에 여념이 없습니다. 엄마와 할머니, 동생에게 연주를 해주기도 하고, 아빠와 아빠 친구들을 위해서 연주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 계단에 앉아 트럼펫 연주에 심취해 있을 때 지나가던 누군가가 툭 던진 한 마디.

“멋진 트럼펫이구나.”

벤의 트럼펫

캬~ 뒷모습에서 스웨그가 넘쳐나는 트럼펫 연주자. ‘고수를 알아보는 건 고수’란 말처럼 벤의 우상은 벤의 실력을 알아봐주었습니다. 그리고 칭찬까지!!! 벤은 활짝 웃으며 트럼펫 연주자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바라봤어요.

벤의 트럼펫에 대한 열정은 점점 더 뜨거워집니다. 매일같이 클럽 주변을 기웃거리며 연주자들과 한 팀인양 트럼펫 연주를 쉬지 않습니다. 어느 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네 아이들 중 한 무리가 벤을 놀립니다. 트럼펫도 없이 연주는 무슨 연주냐며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고 말이죠. 트럼펫 연주자의 칭찬 한 마디에 잔뜩 힘이 들어갔던 벤의 고개가 푹 떨궈지고 맙니다.

기가 죽은 벤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힘 없이 집으로 돌아갔어요. 집 앞 계단에 앉아 지그재그 클럽의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죠. 더 이상 트럼펫 연주는 하지 못한 채… 그때,

“네 트럼펫은 어디 갔니?”
“트럼펫 같은 거 없어요.”
트럼펫 연주자는 벤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어요.
“클럽으로 오너라.”

벤의 트럼펫

“자, 너에게 주는 멋진 선물이란다.”

지금 이 순간부터 벤은 더 이상 주먹 트럼펫 연주자가 아니라 진짜 트럼펫 연주자입니다. 지금까지는 멋진 트럼펫 연주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일 뿐이었다면 이 순간 벤의 가슴을 가득 채운 것은 벤의 진짜 꿈 진짜 희망입니다.

트럼펫 연주자가 가르쳐주는대로 진짜 트럼펫을 부는 벤, 두 사람의 영화같은 장면 오른 쪽 페이지는 검정색만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마치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오기 직전의 화면처럼 말이죠. 검정은 텅 비어 있으면서도 가득 차 있는 색입니다. 아직 벤의 미래는 정해지지도 채워지지도 않았습니다. 꿈과 희망으로 일어선 벤은 지금부터 자신의 미래를 조금씩 조금씩 채워나갈 겁니다.

사족 하나 달고 마무리 합니다.

마지막 장면을 놓고 연주자가 벤에게 트럼펫을 선물했다고 보는 분들도 계신데 제 생각엔 트럼펫을 만져보고 불어보게 해 주었을 뿐 트럼펫을 준 건 아닐 겁니다. 불어본 분 계시면 잘 아시겠지만 저게 그냥 삑 소리라도 한 번 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빈 주먹 뿐이었던 자신의 두 손으로 직접 트럼펫 실물을 만져본 것만으로도, 자신의 입을 자신의 우상이 연주하던 트럼펫의 마우스피스에 갖다 대본 것만으로도 벤은 충분히 행복했을 겁니다.

연주자에게 악기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습니다. 그런 트럼펫을 벤에게 내어줄 수 있으려면 적어도 벤이 한 단계 더 올라섰음을 자신의 우상에게 증명해야만 하지 않을까요? 연주자로서의 성장한 모습을 발견한다면 트럼펫 연주자도 자신의 분신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벤이 자신의 경지로 들어서는 문의 열쇠가 바로 그 트럼펫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꿈과 희망은 결코 허상이 아니라고, 거기에 열정이 더해지면 누구나 자신의 꿈과 희망을 현실로 살아갈 수 있게 될 거라고 말하는 그림책 “벤의 트럼펫”이었습니다.


내 오랜 그림책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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