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무엇일까? 산다는 건 무얼까?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일까?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에 깊이 빠질 때가 있지요. 어쩌면 산다는 것 자체가 삶에 대한 질문에 답을 구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우린 이 질문에 시원스레 답할 수 있을까요?

‘그림책으로 전하는 삶의 진실’이라는 주제로 세 권의 그림책을 골라보았습니다. 인생에 대한 짧고도 깊은 철학서 “살아간다는 건 말이야”, 꽃처럼 와서 꽃처럼 살다 꽃처럼 가는 우리 삶을 담은 아름다운 그림책 “꽃“, 희로애락 가득한 보통의 인생 속에 담긴 진실을 그린 그림책 “자코미누스”. 세 권의 그림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삶과 인생을 생각해 보는 시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살아간다는 건 말이야

살아간다는 건 말이야

(원제 : À Propos De La Vie)
글/그림 크리스티안 보르스틀랍 | 옮김 권희정 | 길벗스쿨
(2021/11/29)

삶은 또 다른 삶을 만드는 것, 보고 알고 숨 쉬는 것,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 이 순간 지금 여기에서 살아남는 것. 온화하고 부드럽게 때론 무겁고 심각하게 또 유머러스하게 그린 다양한 삶의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그림책 속 모든 페이지가 삶에 대한 질문이며 답입니다. 깊고 넓고 간결한 한 권의 인생 철학서입니다.

살아간다는 건 말이야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는 세상. 모든 것이 변할 수 있지만 단 하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혼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에요.

살아간다는 건 말이야

삶은 함께하는 거야.
모든 삶은 이어져 있거든.
주위를 한번 살펴봐.
얼마나 많은 삶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지!

페이지마다 제각각 존재했던 삶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하나가 생겨나 삶을 만들고 둘이 모여 삶을 가꾸어갑니다. 셋이 모여 함께 살아갑니다. 서로 기대어 둥글둥글 함께 살아가는 모습, 그것이 삶의 진실이며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삶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삶이 궁금한 호기심 많은 아이와 삶의 퍼즐 조각을 찾느라 오늘도 바쁜 어른이 함께 보면 좋은 그림책 “살아간다는 건 말이야”,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조언이자 멋진 응원입니다.


꽃

글/그림 이명애 | 문학동네
(2021/11/30)

지난 가을 국악 동요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간된 “모두 다 꽃이야” 읽어 보셨나요? ‘당신은 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라며 가까운 이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그림책입니다. 이명애 작가의 “꽃”“모두 다 꽃이야” 출간 한 달 후 출간된 그림책입니다. “모두 다 꽃이야”가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두가 꽃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임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었다면 “꽃”은 꽃처럼 태어나 꽃처럼 살다가는 우리의 인생을 아련하면서도 아름답게 담아낸 그림책입니다.

꽃

연지 곤지 찍고 조용히 기다리던 한 사람, 또르르르 굴러가는 동그라미를 따라가던 그 사람은 길 끝에 놓여있는 단아한 꽃가마를 타고 세상에 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을 알 수 없는 얇은 선으로 그린 인물은 꽃 같기도 하고 빛 같기도 한 색깔 조각에 이끌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꽃

샛노란 유채꽃밭, 싱그러운 연초록 풀밭, 연분홍 벚꽃나무들… 장소를 지나칠 때마다 그를 따르는 동그라미도 늘어납니다.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색색깔 동그라미를 따라 달리고 구르고 쫓고 부딪치면서 즐기다 보면 어느새 처음 자리에 다다라 있어요.

소리도 온기도 향기도
아무것도 없는 동그라미는
처음이구나.

방울방울 아름다운 동그라미들, 그 길 끝에 놓여있는 단정한 꽃상여,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하얀 동그라미들이 서서히 자리를 지워갑니다. 마침내 하얀 여백만 남았습니다.

꽃 같고 빛 같은 삶 속에서 우린 오늘 무얼 보면서 울고 웃었을까요? 꽃가마 타고 와서 꽃상여 타고 돌아가는 짧은 소풍 같은 인생을 담은 그림책 “꽃”. 이르게 피어나도 늦게 피어나도 꽃은 꽃, 예쁜 꽃 보려고 예쁜 꽃을 찍으려고 애쓰는 마음처럼 예쁜 것 예뻐하고 사랑하고 고마워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림책이 전하는 여운을 그대로 느껴봅니다.


자코미누스

자코미누스

달과 철학을 사랑한 토끼
(원제 : Les Riches Heures de Jacominus Gainsborough)
글/그림 레베카 도트르메르 | 옮김 이경혜 | 다섯수레
(2022/1/5)

아름다운 그림에 압도되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또 한 번 압도되는 그림책 “자코미누스”입니다. 자코미누스를 찾으려고 페이지 한 장 한 장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읽고, 자코미누스의 가족과 친구를 찾아보려고 다시 한 장 한 장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읽고, 마침내 내가 자코미누스가 되어버리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는 놀라운 힘을 가진 그림책입니다.

자코미누스

자코미누스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아기가 부여받은 이름은 ‘자코미누스 스탕 말로 루이스 갱스보루’, 할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 아무런 불행이나 고통이 없을 것 같은 그 작고 사랑스러운 자코미누스에게 다가온 첫 번째 그림자는 작은 추락 사고였어요. 상상 속 달나라 여행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지요. 그날 이후 자코미누스는 목발을 짚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자코미누스는 자신만을 위한 장소를 가진 행복을 아는 소년으로 자라 났어요.

어린아이였던 자코미누스가 자라 소년이 되고 또 어른이 되고 사랑에 빠지고 그렇게 부모가 되고 아이들의 아빠가 되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우리 삶이 그대로 담겨있어요. 기쁨, 슬픔, 사랑, 고통, 분노, 행복, 만남과 이별, 탄생과 죽음 속에서 살아가는 자코미누스의 모습이 그대로 우리 삶의 모습입니다.

나는 세상의 주인공은 아니었지. 내 삶은 소박했어.
평범한 삶이었지만 용감하고 만족스러운 일생이었지.
자기 일을 잘 해낸 작고 좋은 삶이었어.
나의 소박한 삶이여, 나는 너를 많이 사랑했단다.

누구나 보통의 삶을 살다 갑니다. 사랑하는 자코미누스의 할머니가 그랬듯이, 자코미누스의 부모가 그랬듯이, 자코미누스가 그랬듯이.

한 사람의 평범한 삶을 지켜보며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림책 “자코미누스”, 아몬드 나무 아래 평안하게 잠든 자코미누스의 모습이 마음을 울립니다. 그 곁에 단정히 놓인 목발 하나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누구나 인생에 목발 하나쯤은 짚고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것이 계기가 되었든.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내 인생 크고 작은 사건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가족 소풍은 몇 번 있었을까? 작고 힘든 일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한번 세어 볼까?

가족 소풍 293번
+ 작고 힘든 일 1번
+ 카드 모임 987번 (209번 지고, 307번 이기고, 471번 비김)
+ 불규칙동사 121개
+ 좋아하는 노래 3곡
+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만남 1번
+ 슬픈 이별 3~4번
+ 무력한 느낌 한 덩어리
+ 잊을 수 없는 꿈 78,364개
+ 깨달음 1,394개
+ 선입견 948,487개
+ 답을 얻은 질문 73개
+ 애타게 기다렸던 사람 3~4명
+ 아주 충실한 친구들 14명
+ 3명의 적
+ 아주 많은 사소한 불안들
+ 몇 개의 커다란 슬픔
+ 19번의 탄생, 25번의 장례식
+ 근심 3,124,094,780
+ 완벽한 수집품 하나 : 윌리스 맥 그리거의 <밤의 검은 기사>

=

자코미누스 갱스보루의 풍요로운 시간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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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니
가이니
2022/03/04 21:32

<꽃-이명애>나의 유년시절 온 세상을 신비롭고 환상으로 살게 해주었던 꽃가마 속에서 내린 새색시, 보일랄 말락 연지곤지 얼굴에 수줍게 파르르 떨리던 족두리의 영롱한 보석들. 그 보석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토록 강렬하게 살아있는 옛날의 추억을 한 보따리 선물받은 느낌입니다. 늘 훌륭한 책을 만나게 해주심에 심연에서 감사드립니다.

가온빛지기
Admin
2022/03/08 08:04
답글 to  가이니

“꽃”, 아련한 느낌 드는 그림책이죠.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가이니님!

길나가일
길나가일
2022/03/25 11:49

이 책을 사서 머리맡에 두고 아껴가며 읽고 보고 만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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