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강아지
책표지 : Daum 책
검은 강아지

글/그림 박정섭 | 웅진주니어
(발행 : 2018.03.12)


하늘에는 하얀 눈송이가 건물 꼭대기를 덮을 만큼 펑펑 쏟아지고 있는데 거리에는 흐드러진 벚꽃잎이 눈발처럼 흩날리는 아주 묘한 밤입니다. 그 거리를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검은 강아지와 함께 밤 산책을 나선 모양입니다.

“짝꿍”, “감기 걸린 물고기”, “놀자” 등 재미있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가득한 그림책들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박정섭 작가의 신작 “검은 강아지”는 도심 한복판 버려진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어느 유기견 이야기를 강아지의 시점으로 그린 가슴 먹먹한 이야기입니다.

검은 강아지

“착하지?
여기서 기다려.
곧 데리러 올게…….”

길가 강아지풀이 봄바람에 살랑살랑 살랑이던 날, 강아지는 그렇게 길에서 살게 되었어요. 곧 데리러 온다는 주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면서 착한 강아지답게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렀죠. ‘곧 데리러 온다’는 것은 언제를 말하는 것이었을까요?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찾아오고 가을이 다 지나가고 흰 눈 내리는 겨울이 되도록 곧 데리러 오겠다던 주인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검은 강아지

줄곧 길에서 지내던 하얀 강아지의 털이 검게 변하도록 말이죠. 하얀 강아지는 그렇게 검은 강아지가 되었어요.

여기까지가 이 그림책의 프롤로그입니다.

검은 강아지

언제나 똑같은 장소에서 주인을 기다리던 검은 강아지는 누군가 무책임하게 버리고 간 낡은 물건들을 보게 됩니다. 한때는 이 물건들도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이었겠죠. 검은 강아지가 한때 그랬던 것처럼요. 자신의 처지를 똑 닮았기 때문일까요? 검은 강아지는 자신처럼 길가에 버려진 낡고 헌 물건들에 자꾸만 눈길이 갑니다. 그때 저편 누군가가 강아지의 눈에 들어왔어요.

검은 강아지

그건 강아지였어요. 검은 강아지의 옛 모습처럼 생긴 하얀 강아지를 보고 잔뜩 긴장해 처음엔 날선 모습으로 서로를 대합니다. 하지만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하는 동안 둘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고 곧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어요. 주인님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말에 가차 없이 가엾은 친구라고 말한 하얀 강아지도 검은 강아지와 별다를 바 없는 신세인 모양입니다. 둘은 그렇게 거리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함께 지냅니다. 추울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분이 좋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하얀 강아지가 곁에 있으니 검은 강아지는 전보다 덜 외롭고 덜 심심했어요. 혹시나 검은 강아지의 주인이 찾아와 혼자 남게 될까 걱정하는 하얀 강아지를 검은 강아지는 이렇게 위로해주기도 합니다.

응, 걱정 마!
너도 데려가 달라고 말할게.
뭐든
들어주실 거야.

그런데 이쯤 되니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검은 강아지 곁에서 늘 함께 하는 하얀 강아지는 어디서 왔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요?

검은 강아지

눈발이 쏟아지는 차가운 거리에서 두 친구는 서로를 의지해 이제나저제나 자신을 데리러 올 주인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다 묵묵히 잠든 검은 강아지 곁에서 하얀 강아지가 속삭입니다. 내 옆에 네가 같이 있어줘서 참 고마웠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가 슬픔으로 떨리는 것 같아 보여 마음이 더욱 먹먹해집니다. 그 말을 남기고 하얀 강아지 역시 검은 강아지 곁에서 눈을 감았어요. 회색빛 무심한 도심 한 켠에서 쏟아지는 눈을 그대로 맞으며 버림받은 두 강아지는 그렇게 영원히 잠이 듭니다. 주인이 던져준 뼈다귀를 먹지도 못하고 그대로 간직한 채로…

어느 순간 검은 강아지 앞에 나타난 하얀 강아지의 정체는 버려진 거울에 비친 검은 강아지 자신이었어요. 하얀 강아지가 데칼코마니처럼 검은 강아지 곁에 머물지만 절대 그림책 가운데 경계선을 넘지 않았던 것이 바로 그런 이유죠. 자신처럼 버려진 물건들 곁을 맴돌던 검은 강아지는 낡은 거울 속에서 만난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면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입니다.

검은 강아지

주인을 기다린다는 검은 강아지를 비웃기도 하고 외로운 검은 강아지를 위로하기도 하고 또 의지하기도 했던 하얀 강아지는 결국 거울에 비친 검은 강아지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무심하게 내리는 눈송이에 덮이고 또 덮여 본래의 하얀 강아지처럼 된 검은 강아지. 잠든 강아지 뒤로 ‘검은 강아지’를 찾는다는 광고판을 붙인 버스가 지나가고 있어요. 누군가는 잃어버린 강아지를 이토록 애타게 찾는데…… 또 누군가는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길에 버리는 안타까운 세상입니다. 낡은 물건처럼 거리에 버려져 영원히 잠든 검은 강아지를 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가족처럼 사랑했던 반려동물을 잃고 슬픔을 경험해 본 분들이라면 그림책을 보면서 많이 울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검은 강아지”는 너무 쉽게 생명을 사고파는 세상에 한 생명을 책임지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책입니다. 곧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 속에 살다간 검은 강아지의 슬픈 눈망울을 떠올린다면 꼭 기억하세요. 생명과 생명이 만나는 일에는 아주 커다란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명을 물건처럼 사고팔고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생각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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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4 Replies to “검은 강아지

  1. 이 그림책 너무나 울컥하네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이런 이야기가 쓰고 싶었는데 너무 슬플까 봐 너무 어두워서 아무도 봐주지 않을까 봐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나온 걸 보니 감사하네요.

  2. 지난 번 4.3 관련 그림책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피드백 늦게 드렸어요^^; 제주 관련 그림책으로 대신 봤습니다. …. (이 글은 보시고 지우시면 돼요 따로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여기에 글 남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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