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이 좋아
책표지 : Daum 책
우리 마을이 좋아

글/그림 김병하 | 한울림어린이
(발행 : 2018/03/29)


표지 그림이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집 마당에서 찍은 기념사진 같습니다. 안 찍겠다며 손사래를 치시다가도 어느새 ‘할머니, 김치~’라고 외치는 소리에 소녀처럼 수줍게 웃으시던 할머니가 생각나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산과 들에 자라는 온갖 열매며 나물들, 그 사이사이 고개를 빼꼼 내미는 순하디 순한 동물들의 눈빛이 할머니와 꼭 닮아있어요. 앞 산 뒷산, 앞 동네 뒷 동네 오랜 세월 할머니와 친구처럼 함께 지내왔기 때문이겠죠.

우리 마을이 좋아

장독대 올라앉은 검은 고양이가 날아가는 새들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고 화분에 심어놓은 수국이 커다란 꽃송이 무게를 못 이겨 그만 축 늘어져 버린 어느 봄날, 마당에서 나물을 다듬고 있던 할머니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아온 딸에게, 며느리에게, 손주에게 다정하게 이야기를 건네시는 것처럼.

나는
내가 태어나 자란
우리 마을이 좋아.

우리 마을이 좋아

철도 들기 전부터 밥하고 나물 뜯고 모시 삼고 빨래하면서 일을 시작했던 할머니의 삶이 그림책 속에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꽃 피고 지고 계절이 오가는 동안 흑백 그림 속 일곱 살 어린아이는 소녀로 아가씨로 자라났고 스무 살 되던 해 아래뜸 총각이랑 결혼합니다.

농사 지으며 자식들 키우며 고생한 이야기는 며칠 밤을 새워도 다 못할 이야기입니다. 석 달 열흘을 이야기해도 다 못할 거라며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스무 권은 훌쩍 넘길 거라던 생전 우리 할머니 말씀이 생각나 배시시 웃음이 납니다.

사람들로 기르는 동물들로 바글바글했던 시골에 자꾸만 빈집이 늘어 갑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오랜 그 집을 떠날 수 없어요. 사람은 떠나고 없어도 새소리, 바람 소리, 비올 때 낙숫물 소리 여전한 고향 마을은 아직도 재미나고 우스운 일이 참 많은 곳이거든요.

우리 마을이 좋아

뱁새 둥지에서 자라는 뻐꾸기 새끼가 얄미워 기둥에 묶었다 고양이가 날름 채가는 것을 보고 미안하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는 할머니, 많은 일을 다 해 주고도 원망 한번 하지 않는다는 순하디 순한 소, 툭하면 남의 밭에 가려고 해서 좀 귀찮은 말썽쟁이 염소, 시끄러워도 왠지 키워야 사는 것 같다는 닭, 마냥 이쁜 토끼며 귀여운 돼지랑 강아지……. 가족들처럼 할머니의 마음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동물들과의 추억 역시 할머니가 평생을 살아온 마을을 떠날 수 없는 이유일 거예요.

펜 선을 그대로 살려 그린 그림이 아득한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 모읍니다. 들에 자라는 열매,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에게도 일일이 마음을 내준  할머니의 소박한 다정함이 그림책 속에 아련하게 펼쳐집니다.

우리 마을이 좋아

봄 내내 여름 내내 땀 흘려 심고 일군 밭에서 자란 무, 콩, 옥수수, 감자, 고구마는 밭을 찾아오는 모두의 몫입니다.

고라니가 먹고, 너구리가 먹고
오소리가 먹고, 멧돼지가 먹고, 다 먹어.
그래도 워찍혀, 심어야지.
지들이 먹든지, 내가 먹든지

‘그래도 워찍혀, 심어야지’ ^^ ‘암만 그래도 짐승보다는 사람이 더 많이 먹는다’던 우리 할머니 말씀이 생각나네요. 어른들의 말씀 속에는 자연에서 배운 소중한 가르침이 가슴 따뜻하게 들어있어요.

우리 마을이 좋아

사투리로 들려주는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할머니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고향 마을의 계절이 흘러가고 할머니의 시간도 지나갑니다.

서러운 일도 재미난 일도 참 많아.
그래도 나는 우리 마을이 좋아.
여기서 마무리를 해야지.
땅으로 바람으로 돌아가는 거지.
얼마나 좋아.

나고 자란 이곳에서 마무리하고 땅으로 바람으로 돌아가겠다는 할머니 말씀. 사람도 짐승도 모두 자연의 일부라 생각하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구구절절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그 속에 삶을 바라보는 진솔한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겠죠. 시원해서 모이고 심심하니까 모이고, 별일 없었는지 궁금하니까 모인다는 커다란 나무는 알고 있을 거예요. 마을 사람 하나 하나 저마다 품고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평생을 고향마을에서 자연과 친구처럼 지내며 살아온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소박함과 진솔함이 뚝뚝 묻어나옵니다. “우리 마을이 좋아”는 부여에 있는 송정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림책 작가들이 새로이 구성해서 만든 ‘송정마을 그림책’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김병하 작가의 전작 “고라니 텃밭”, “강아지와 염소 새끼”에서 보여준 동물과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의 연장선처럼 편안하게 느껴는 그림책입니다.

송정마을 그림책 시리즈
1. 안녕, 야학당
2. 우리 마을이 좋아
3. 한 입만!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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