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걸까? 나쁜 걸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원제 : C’est Bien! C’est Affreux!)
조안 M. 렉서 | 그림 알리키 브란덴베르크 | 옮김 김경연 | 풀빛
(발행 : 2018/08/27)


싱긋 웃고 있는 호랑이와 뭔가 걱정스러운 표정인 소년, 둘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궁금한 마음에 그림책 표지를 양쪽으로 활짝 펼쳐 보니 화면 왼편으로 성난 코뿔소가 보입니다. 성난 코뿔소를 바라보는 웃는 호랑이, 그 옆에 울상이 된 소년. 이들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인 것일까요? 이 상황은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소년이 바위에 앉아 있는데 호랑이가 나타났어요. 소년이 호랑이를 보고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자 호랑이가 물었어요.

“어흥, 뭐하냐? 도망치지 않고. 도망쳐야 쫓아가 잡아먹지.” 호랑이가 말했어.
하지만 소년은 꼼짝도 하지 않았어.
“그냥 날 잡아먹어. 난 이제 도망갈 힘도 없어.” 소년이 말했어.

입맛을 다시며 다가오는 호랑이를 보고도 태연한 소년, 도망치라는 호랑이의 말에 도망갈 힘도 없으니 그냥 잡아먹으라는 소년의 말에 그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호랑이 역시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나 봐요.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연히 만난 소년이 호랑이에게 자신이 왜 도망갈 힘도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리고 소년을 잡아먹으러 왔던 호랑이는 소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버리게 됩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듣는 우리처럼 말이에요.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코뿔소랑 부딪히는 바람에 성이 난 코뿔소가 날뛰는 걸 보고 도망쳤다는 소년의 말에 호랑이는 빙긋 웃으면서 잘했다고 말합니다. 이야기가 끝나고나면 바로 잡아먹을 소년의 무사함에 잘된 일이라며 칭찬해주는 호랑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네요. ^^

하지만 사건은 쉽사리 끝나지 않습니다. 코뿔소는 도망치는 소년을 계속해서 쫓아왔거든요. 그 말을 들은 호랑이는 ‘저런 쯧쯧’하고 혀를 차며 소년을 동정했어요. 소년을 쫓는 성난 코뿔소, 어떻게든 이 위기 상황을 벗어나려는 소년, 쫓고 쫓기는 소년과 코뿔소의 이야기가 소년과 호랑이 사이에서 펼쳐집니다. 마치 소극장 무대 위에 올려진 연극 한 편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소년이 처했던 상황에 따라 놀랐다 기뻤다 화가 났다 즐거웠다의 감정을 반복하며 호랑이는 소년의 이야기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듭니다. 소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기쁨과 슬픔이 반복되는 우리 인생사 같기도 해요. 아무리 피해 보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코뿔소, 잠시 피했다 싶어 기뻐하지만 이내 소년을 찾아 다시 달려드는 코뿔소를 보고 있자면 어쩌면 우리 인생도 성난 코뿔소를 피해 이리저리 달아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흠, 너무 비관적인가요?)

소년은 코뿔소보다 훨씬 위험한 호랑이 앞에서 호랑이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코뿔소를 잠시 따돌린 소년이 너무 지쳐 바위에 앉아있을 때 때마침 지나치던 호랑이와 이렇게 마주친 것이었죠. 이제 이야기는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 종일 코뿔소에게 시달리다 호랑이를 만난 소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호랑이를 만난 것은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이야기가 끝났을 무렵 기다렸다는 듯이 되돌아온 코뿔소, 그 모습을 본 소년의 얼굴에 기쁨이 퍼져갑니다. 성난 코뿔소를 피해 달아나는 호랑이는 잔뜩 겁을 먹었어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퍼져가는 분노와 기쁨과 놀람! 도망치던 호랑이가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으악! 도와줘. 이건 나빠.”
“천만에. 이건 좋은 거야. 아주 아주 좋은 거야.” 소년이 말했어.
푹 쉬어서 기운이 난 소년은 힘껏 집을 향해 달렸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소년이 힘차게 집으로 도망 치는 사이 좀전까지 쫓기던 소년을 대신해 호랑이가 코뿔소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가혹한 운명의 주인공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오른편 하얀 여백 속에 ‘끝’이라고 쓴 글자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코뿔소와 호랑이의 이야기로 혹은 호랑이와 소년의 이야기로 계속해서 이어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들지 않나요? 천일동안 계속 되었다는 세헤라자데의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말입니다.

결론만 보면 소년에겐 분명 좋은 일로 변했지만 호랑이에게는 나쁜 일이 생긴 셈이니 제목이 이야기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힘겨운 운명의 순간을 재치있게 역전시켜 버린 소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남겨줍니다.

첫 번째 교훈은 바로 뭐든 마음 먹기에 달렸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슬픈 일만 생기는 것 같아도 어느 순간 즐거움에 활짝 웃을 수 있는게 바로 우리 인생 아닐까요? 선택은 나의 몫입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것인지, 주어진 운명에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는 말입니다.

두 번째 교훈은 나에게 좋은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유쾌하지 못한 일일 수도 있으니 늘 겸손하고 주변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점. 호랑이에게서 탈출한 소년과 달리 호랑이는 위험에 처하고 말았잖아요.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뻔한 위기에서 탈출했으니 누구에게나 해피엔딩일 수 있지만, 소년과 호랑이가 아니라 소년과 친구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겠죠.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들의 희생은 아무렇지도 않은 삶을 살 것인지, 나의 행복을 조금 뒤로 미루더라도 우리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 것인지 이 것 역시 선택은 나의 몫입니다.

그나저나 그림체나 색감, 이야기 구성 등 어떤 면을 봐도 5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그림책 “좋은 걸까? 나쁜 걸까?”, 1963년 미국에서 첫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고전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는 명작입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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