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

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

글/그림 권정민 | 문학과지성사
(발행 : 2020/03/24)


클래식한 느낌의 표지 디자인, 작고 얇은 판형으로 깔끔하게 제본된 그림책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 그림책일까요, 사전일까요? 장총 한 자루는 어깨에 메고 권총은 허리에 차고 슬며시 미소 짓고 있는 건장한 모습의 토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조끼 주머니에 넣어둔 회중시계를 꺼내며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하는 토끼와는 어딘가 거리가 있어 보여요. 하지만 그림책을 펼치는 순간 알게 됩니다. 그곳에 정말 정말 이상한 나라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

산책

여유를 즐기며 천천히 걷는 일.
일행이 앞서 나갈 경우
줄을 잡아당겨 거리를 조절한다.

‘여유를 즐기며 천천히 걷는 일’ 산책의 의미는 그렇습니다. 사전에서 찾아보아도 ‘산책’은’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 천천히 걷는 일, 혹은 느긋한 기분으로 한가로이 거닐음’으로 나와있거든요. 그런데 덧붙여진 설명과 함께 오른쪽에 묘사된 기묘한 장면 때문인지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몹시 불편해집니다. 산책을 하는 개는 여유로워 보이는데 목줄에 매여 끌려가는 사람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지지 않아요. 이 장면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사람과 개가 뒤바뀌어 있었다면 분명 평범하다 느꼈을 장면인데 말이에요.

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

사냥

옛날에는 고기를 얻기 위한 생계 활동이었으나
지금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놀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토끼는 덩치가 작은 앨리스에게는 무례하게 굴었지만 앨리스의 덩치가 커지자 유순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앨리스에 등장하는 토끼의 이중적 태도는 일반적인 소시민을 의미하는 캐릭터로 해석되곤 하죠. 커다란 사냥꾼 토끼 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들을 보니 순간 상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앨리스의 토끼가 떠오릅니다. 토끼는 지금 단순히 재미를 위한 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에요.

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

오른쪽 그림을 가리고 왼쪽 페이지의 설명 먼저 읽어 보세요. ‘훈련 기본 동작을 익히고 되풀이하여 연습하는 것. 당근과 채찍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는 글만 읽어보아서는 어디가 이상한지 잘 느낄 수 없어요. 하지만 오른쪽 그림과 함께 살펴보면 마음이 몹시 불편해집니다.

관찰하기 위해 잠자리채로 작은 인간을 채집하는 거대 매미, 동물원 철창 너머 인간을 구경하는 호랑이 가족. 돌고래가 인간을 훈련 시키는 저 장면은 어떤가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죠. 정말 칭찬만으로 덩실덩실 춤이 춰질까요?

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

권정민 작가가 그림책에 풀어놓은 세계는 그저 이상하고 기묘한 말도 안 되는 세계일까요? 죽은 고래 뱃속을 가득 채운 플라스틱 쓰레기, 콧속 깊숙이 빨대가 꽂힌 채 발견된 거북이, 처참하게 살육된 돌고래들, 재미를 위해 자행되는 트로피 헌팅, 호기심에 들였다가 버려지는 수많은 동물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매일매일 끝도 없이 불편한 진실을 생산하고 있어요. 우리가 사는 이곳이야말로 이상한 나라, 하지만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정말 이상한 나라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

성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을 패러디한 그림으로 마무리한 마지막 페이지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나를 돌아보는 반성의 도구로서의 거울, 성찰할 수 있기에 우리는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어제보다 못한 내일을 만들어 내는 것도 우리지만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우리입니다.

전작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등을 통해 권정민 작가는 사람과 동물 그리고 식물 간의 관계를 색다른 시선에서 보여준 바 있어요. 이 그림책 역시 날카로운 통찰력을 기본으로 독특한 구성과 연출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모두 우리가 나눈 기준일 뿐, 우리는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동물 시점에서 인간의 천태만상을 고발하는 그림책 “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 조금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우리 함께 고민해 보아요. 모든 생명이 함께 어울려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세상의 적절한 온기를…


※ 함께 읽어 보세요 : 이빨 사냥꾼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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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규
최대규
2020/05/19 13:54

통찰, 희화, 너무도 이상하지만 전혀 이상하지 않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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