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자 신데렐라

해방자 신데렐라

(원제 : Cinderella Liberator)
리베카 솔닛 | 그림 아서 래컴 | 옮김 홍한별 | 반비
(발행 : 2021/05/31)


“해방자 신데렐라”“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등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 리베카 솔닛이 어린이를 위해 쓴 첫 번째 책입니다. 신인 작가도 아닌데 굳이 ‘첫 번째’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을 위한 책을 만들어줬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 때문입니다.

맨스플레인*이란 말을 유행시킨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작가답게 “해방자 신데렐라” 역시 전통과 문화라는 허울로 가려진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꿈과 희망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여성에 대한 속박뿐만 아니라 피부색, 문화, 종교, 사회 계층 또는 계급, 출신 지역 또는 국가 등을 이유로 갖게 되는 편견과 그로 인해 존재하는 모든 차별에 맞서 누구나 마음껏 꿈꾸고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책의 구성

이 책은 모두 55쪽입니다. 본문 39쪽, 작가의 말 8쪽, 옮긴이의 말과 추천의 말 8쪽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종손녀 엘라를 위해 쓴 이야기인 만큼 아이들 혼자 읽기에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물론 아이들이야 엄마 아빠가 읽어주는 게 훨씬 좋겠지만 말이죠.

이렇게 말하면 또 아이들 읽는 책인가보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출판사는 이 책을 그림책이 아닌 ‘교양 인문학’으로 분류했습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나 자신보다는 유행이나 타인의 기준을 좇으며 살아가는 어른들,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지 그 답을 찾고 싶은 어른들이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합니다.

  1. 신더(The Cinders)
  2. 드레스와 말(Dresses and Horses)
  3. 도마뱀(Lizards)
  4. 친구(Friends)
  5. 진실과 케이크(Truths and Cakes)

“해방자 신데렐라”는 위와 같이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첫 두 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신데렐라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 다음 장들에서 펼칠 새로운 이야기들을 위한 단초들이 심어져 있으니 이 두 장 역시 새로운 이야기라 해도 전혀 무리는 없습니다.

1장에서는 ‘Cinderella’라는 이름에서 ‘Ella’라는 진짜 이름을 분리해냅니다. 여지껏 ‘신데렐라 = 재투성이’라고만 알았던 그 이름이 사실은 ‘엘라’라는 진짜 이름 앞에 ‘장작이 거의 다 타서 꺼져 가는 깜부기불’이란 뜻의 ‘Cinder’를 붙인 것이었음을 작가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갑니다.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세상을 바꾸려면 모든 것을 정확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작가답지 않나요?

2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대로 대모 요정의 도움을 받아 무도회에 참석해서 왕자와 춤을 추고 난 후 벗겨진 유리 구두 한 짝을 남겨둔 채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3장에서는 신데렐라만이 해방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대모 요정의 마법으로 말이 된 생쥐 여섯 마리, 말구종이 된 도마뱀 여섯 마리, 마부로 변신한 커다란 회색 쥐들은 과연 무도회를 마친 후 어떤 삶을 선택했을지 각자 한 번 상상해 보세요.

4장은 왕자가 유리 구두 주인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기존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죠. 왕자는 과연 어떤 삶을 꿈꾸는지, 그 꿈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결혼이요? 당연히 안 합니다. 해방자 신데렐라가 왕자와의 결혼을 꿈꾸었을 리 없잖아요. 둘은 언제든 마음 깊은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됩니다.

5장은 케이크 가게를 열고 깜부기불 엘라, 신더 엘라가 아닌 ‘엘라’로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 “해방자 신데렐라”인 이유도 이 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

“해방자 신데렐라”의 그림은 새로 그린 것이 아닌 아서 래컴의 그림들(Cinderella / C.S. Evans, Arthur Rackham, 1919) 중에서 가져다 쓴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아서 래컴은 일러스트레이션의 황금 시대**를 이끌었던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 명입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어?

새어머니는 자기 친딸인 펄리타와 팔로마는 뭐든 아주 많이 누리기를 바랐어. 하지만 신데렐라에게나, 펄리타나 팔로마에게 어떤 것을 원하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새로 쓴 신데렐라에서도 새어머니는 변함 없이 탐욕을 대변합니다. 집안일은 의붓딸에게 모두 떠맡기고 친딸들만 잘되기를 바라는 새어머니. 하지만 정작 자신의 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궁금해한 적도 없고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 덕분에 그 딸들 역시 자신들의 꿈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가입니다. 아직 물어본 적 없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물어보세요. ‘어떤 삶을 살고 싶어?’라고. 여러분만의 꿈을 찾고 여러분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아가길 응원하겠습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나

언니들이 무도회에 간 후 홀로 남은 신데렐라. 하지만 대모 요정의 도움으로 그녀 역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멋진 마차를 타고 무도회에 참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호박으로 마차를 만들고 생쥐들 마차를 끌 힘센 말들로 변신시키는 과정에서 리베카 솔닛은 보다 적극적인 신데렐라를 만들어냅니다.

마차와 말들을 만들어낸 후 마차를 몰 사람이 필요하다는 대모 요정의 말에 “큰 쥐덫을 가져올게요.”라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내놓는 신데렐라. 이것만이 아닙니다. “마차가 정말 멋있어요. 하지만 누더기 옷을 입고 살 수는 없어요.”라던가, “아, 그런데 아직 맨발이에요.”라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서 당당하게 요구하는 신데렐라가 바로 리베카 솔닛의 신데렐라입니다.

나를 해방시키는 것이 이 시대의 마법

기존의 이야기에서 말과 마부 등으로 변신했던 동물들은 그저 소품에 불과했습니다. 무도회가 끝나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가 신데렐라가 필요하면 언제든 소환해내는 대상일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방자 신데렐라”에서는 그들 역시 해방의 대상이자 각자의 삶의 주체입니다.

대모 요정은 그들 하나하나에게 원하는 것을 묻습니다. 말로 변신했던 생쥐 여섯 마리 중 다섯 마리는 지금이 훨씬 좋다고 말해 그대로 남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집에 두고 온 아기들을 돌봐야 한다며 다시 생쥐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기들을 만나러 집으로 돌아가죠. 커다란 회색 쥐였던 마부는 지금 모습으로 모험을 더 즐기고 싶어했고, 말구종 역할을 맡았던 도마뱀 여섯 마리는 도마뱀으로서의 삶이 훨씬 자유롭고 행복하다며 다시 도마뱀이 되어 숲으로 돌아갔어요.

신데렐라 역시 드레스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며 낡은 누더기 옷차림으로 돌아가길 원했어요. 집안일 하기에도, 여기저기 마음껏 뛰어다니기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케이크를 만들 때에도 그게 훨씬 더 편했으니까요.

대모 요정은 모두가 자유롭고 가장 자기다운 모습이 될 수 있게 돕는 것이 진짜 마법이라고 했어.

리베카 솔닛은 ‘자유롭고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되찾는 것이 진짜 마법이고 그게 바로 진정한 해방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르거나 이 사회가 강제하는 관습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나 스스로 생각하고 정한 기준에 따라 사는 것, 가장 나답게 사는 것이야말로 나의 꿈과 희망을 이루어주는 마법의 주문이라고 말입니다.

나에서 너와 나, 우리 모두로

무도회가 끝나고 유리 구두 한 짝을 들고 찾아온 왕자를 만나 친구가 되기로 한 후 신데렐라는 새어머니로부터 독립합니다. 작은 케이크 가게를 열고 마을 사람들과 같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죠. 그럴 때면 그녀는 사람들에게 묻곤 했습니다. 꿈이 뭐냐고, 뭐든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다면 뭐가 되고 싶냐고, 자유롭다는 건 어떤 것일 것 같냐고… 그리고 사람들의 대답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도우며 살아갑니다.

신데렐라는 대모 요정은 아니지만 마법 능력이 없어도 해방자가 될 수 있었어. 해방자란 다른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도록 돕는 사람이야.

대모 요정의 도움으로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얻어낸 신데렐라가 꿈꾸던 삶은 바로 해방자였습니다. 대모 요정 같은 마법의 능력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걸 기꺼이 돕는 해방자. 다른 사람들의 꿈을 찾아주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길을 터주는 삶, 그 길을 가도록 힘을 보태주고 응원해주는 삶, 해방자 신데렐라의 새로운 삶입니다.

이제 더 이상 신데렐라라는 이름은 쓰지 않고 원래 이름 ‘엘라’로 해방자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를 통해 작가는 이 시대의 약자와 소수자, 편견과 차별에 고통받는 모든 이들로 독자들의 관심을 돌립니다. 나 자신을 해방시켰다면 이제 이웃을 돌아보라고, 진정한 연대만이 이 세상을 완전히 해방시킬 수 있다고.

어떤가요? 새로운 신데렐라 이야기 궁금해졌나요? 사실 우리 어릴 적엔 이 마저도 부족해서 빠짐 없이 다 읽었지만 어른이 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 보니 신데렐라, 백설공주, 라푼젤 류의 이야기들은 딸아이에게 읽어주기 싫은 동화들이었습니다. 여자에게 선택권이 전혀 없이 남자가 구해줘야만 하고 그 남자와 결혼해야 행복해지는 남성 중심의 서사로 가득한 이야기들로부터 내 딸을 보호하고 싶었죠. 이제 청년이 된 딸아이가 소개해줬던 작가 리베카 솔닛이 새로 쓴 신데렐라 이야기 “해방자 신데렐라” 덕분에 저도 드디어 해방입니다.

끝으로 작가의 말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글 인용하며 맺겠습니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하려면, 혹사와 모멸적 노동의 해결책이 왕자비가 되어 다른 사람의 노동에 기대어 일을 안 하고 사는 것일 수는 없고, 대신 존엄을 지킬 수 있으며 스스로 하고 싶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케이크 가게는 신데렐라가 독립할 수 있도록 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도울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했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맨스플레인
Mansplain은 ‘man’과 ‘explain’의 합성어입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덜떨어졌다는 편견에서 나오는 남성들의 행동을 꼬집는 말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잘 아는 여성과 그것에 대한 지식이 여성보다 더 부족한 남성이 만났을 때 그 남성이 이 주제에 대해 여성에게 설명하는 걸 맨스플레인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이 바로 오늘 소개한 작가 리베카 솔닛입니다.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나 이야기 나누던 리베카 솔닛은 자기가 사진작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에 관한 책을 썼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 남자는 최근에 마이브리지에 대한 중요한 책이 나왔다면서 리베카 솔닛에게 그 책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 함께 있던 친구가 그 책의 저자가 바로 당신 앞에 있는 리베카 솔닛이라고 몇 번이나 말하고 나서야 남자가 입을 다물었던 일이 있었다고 해요. 사실 이 남자는 그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신문기사에 난 서평을 읽은 게 다였다는군요. 제대로 읽지도 않고 리뷰 몇 줄 읽은 채 그 책의 저자 앞에서 아는 척 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대화의 상대방이 여성이기 때문이었겠죠. 리베카 솔닛은 바로 이 사실을 신문 칼럼을 통해 세상에 알리면서 ‘맨스플레인’이란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 일러스트레이션의 황금 시대

신문과 잡지 등의 활성화로 다양한 고전주의풍의 그림들이 생산되었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를 일러스트레이션의 황금 시대라고 합니다. 이 시대를 이끌었던 일러스트레이터들로는 에드몽 뒤락, 아서 래컴, 이반 빌리빈, 케이 닐센 등이 있습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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