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쁘다고?

내가 예쁘다고?

황인찬 | 그림 이명애 | 봄볕
(2022/06/01)


예쁘다는 말 마지막으로 들어본게 언제인지 기억하시나요?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은 종종(?) 들어본 것 같은데 ‘예쁘다’는 말은 어릴 때 빼고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우리 딸 참 ‘예쁘다’, 부모님이 해주셨던 말,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 말, 참 예쁜 말 ‘예쁘다’.

아이가 예쁘다는 말을 들은 건 수업 중 짝꿍으로부터였어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지요.

내가 예쁘다고?

“되게 예쁘다.”

수업을 듣다 말고
김경희가 나를 보며 말했어.

‘되게 예쁘다’는 말에 아이의 동그래진 눈망울, 힘 빡 들어간 콧구멍에 웃음이 빵 터집니다. 그냥 ‘예쁘다’도 아닌 ‘되게 예쁘다’니, 짝꿍의 속삭임에 아이 마음이 활짝 열렸어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활짝~

한 줄 서기를 할 때도 급식을 먹을 때도 노는 시간에도 아이 마음을 가득 채운 말, 짝꿍이 속삭인 말, 예쁘다는 말. 아이는 그 말을 자꾸만 되뇌어 보았어요. ‘내가 예쁘다고?’

내가 예쁘다고?

거울 속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봅니다. 나름 만족스럽습니다. 생각해 보니 할머니도 아이를 볼 때마다 ‘잘생긴 내 새끼’라고 말씀하신 걸 보면 예쁘다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흡족한 마음에 눈망울이 촉촉해진 아이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소소한 말 한마디에 온 마음이 촉촉해졌던,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의 내 표정 또한 분명 저랬겠지요.

아이는 예쁘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어 봅니다. 예쁜 게 뭘까? 예쁘다는 게 무슨 뜻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좋은 말인 건 분명합니다. 예쁘게 행동하고 싶어집니다. 예쁜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쁜 마음으로 지내고 싶어집니다.

내가 예쁘다고?

다음 날 아이는 ‘되게 예쁘다’고 말한 것의 실체를 알게 되었어요. 그날 김경희가 ‘되게 예쁘다’고 속삭인 건 창밖 가득 환하게 피어난 분홍색 벚꽃이었어요. 아름답게 피어난 벚꽃이 잘 보여 자기 자리가 엄청 좋다고 친구에게 말하는 김경희의 환한 얼굴.

그 장면을 보면서 배시시 웃다 다시 표지로 돌아가 봅니다. 처음 표지를 볼 땐 두 아이가 마주 보고 있다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경희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어요. 그 황홀한 시선이 속삭입니다, 되게 예쁘다, (벚꽃) 되게 예쁘다… ^^

자신의 오해가 부끄러워 밖으로 달려나간 아이는 잠시 멈추어 서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흐드러진 벚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작고 귀여운 분홍색 꽃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합니다. 알쏭달쏭하기만 했던 예쁜 게 무엇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바람에 날리던 벚꽃 한 송이, 아이 머리 위에 사뿐 내려앉았습니다. 예쁨이 내려옵니다. 예쁨이 마음을 물들입니다. 세상이 의미로 가득해집니다.

예쁜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내가 예쁘다고?”를 보면서 예쁘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예쁜 건 무엇일까요? 그건 이리저리 재고 따질 새 없이 저절로 가슴 한복판에서 피어오르는 것, 나도 모르게 입으로 터져 나오는 탄성!  비로소 봄날 활짝 핀 꽃 속에서 나이 든 어른들이 왜 그리 사진을 찍는지, 꽃놀이 가고 싶어 하는지 그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예쁨을 피워내는 삶이고 싶습니다.


※ 함께 읽어보세요: 미움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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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쌤
동화쌤
2022/09/08 19:01

“너 참 이쁘다” 잠시라도 스스로가 이쁘다고 이리저리 보는 주인공의 모습에 웃음을 짓어봅니다. 잡시라도 저도 듣고 싶네요..언제 들어봤는지…

박선미
박선미
2022/09/09 00:06

예쁘다는 말에 대한 오해. 생김새나 모양의 고움을 떠올렸다면 소개해주신 책 내용을 읽으며 예쁜 건 ‘보고 있으면 기분좋은’이라고 연상해봤어요.
오해에서 시작한 기분좋은 말이지만 예쁘다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가리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던 순간에도 행복감은 여전하리라 느껴봅니다. 흐뭇함. 웃음이 끊이지 않는. 나를 기쁘게 하는… 책 소개 감사합니다.

이지영
이지영
2022/10/13 23:44

도서관에서 빌려 아이와 함께 웃으며 읽었습니다. 아무생각도 안해봤던 말을 듣고 의미를 생각하는 아이…아이는 축구할때도, 급식을 먹을때도 온통 이쁘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저희 아이는 축구할때의 그림에 웃음이 빵 터졌어요) 자신한테 한말이아니란걸알고 부끄러워 나갔을때 진정한 마음으로 감탄하듯이 튀어나온 예쁜게 이런거라는걸 체득한 아이…어떤 말이 의미로 다가오고 그말의 의미를 직접 체득한 아이는 분명 내면의 모습이 성장하였겠지요..그리고 그런것들이 성숙이 아닐까..그런생각이들었어요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가면 뭔가 느껴지는것들이 다르잖아요~그러한 아이의 성장의 모습으로 저는 읽혀져서 멋지게 느껴지는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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