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가고

갑작스레 몰려온 폭풍이 언제 끝날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집에 머물러야만 할지도 모릅니다. 집에 머무는 일 그 자체는 전혀 낯설 것 없지만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식구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것이 마냥 편한 일만은 아닙니다.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평소보다 더 자주 마주치게 되며 소소한 부분까지 간섭하게 되고, 어색한 시선이 자꾸만 겹치며 가족은 점점 더 서로가 불편해집니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들이 결국은 드러나서 낯을 찌푸리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들이 잦아집니다.

결국 가족은 불편함을 피해 뿔뿔이 흩어집니다. 서로에게 짜증을 낼 필요가 없으니 차라리 혼자 있는 게 편하다는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죠.

그날 밤 폭풍이 정점에 치달을 때쯤 무시무시한 벼락이 내리치고 전기가 나갑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 각자의 방에 고립된 가족들은 순간순간 번뜩이는 번개에 놀라고 내리치는 천둥소리에 겁을 먹습니다. 어둠을 흔드는 빛과 소리 그 두려움의 순간들 사이로 조용히 촛불을 켜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빠 방입니다. 약속이나 한듯 하나 둘 아빠 방으로 모여드는 가족들.

커다란 침대에 나란히 누운 가족들. 불과 몇 시간 전 서로 얼굴 붉히며 ‘나한테 왜 그래?’라고 말로 또는 표정으로 말하고는 홱 돌아섰었지만… 지금은 서로에게 미안한 표정과 다정한 눈빛으로 말합니다. ‘미안해’라고.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해~ 하고 울리는 마음의 소리가 몸짓에, 얼굴 표정에, 그리고 눈빛에 담겨 있으니까요.

폭풍이 지나갔어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햇살이 아름다웠어요.
우리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어요.
해야 할 일이 많았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함께하면 되니까요.

폭풍이 지나간 후 가족을 맞이하는 맑은 햇살. 마당은 치워야 할 것들로 가득하고, 집 구석구석 손봐야 할 곳들 투성이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함께 할 가족이 있으니까요.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곤 합니다. 물론 그 깨달음의 대상이 친구일 수도 있겠구요. 내 앞을 가로막는 인생의 난관 따위에 겁먹지 않을 수 있는 건 폭풍이 몰아치는 밤 아무 조건 없이 내 곁에 함께 해 줄 가족과 친구가 있다는 믿음 덕분입니다. 그 믿음은 힘든 일 겪는 가족과 친구에게 기꺼이 내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용기에서 오는 것이구요.


폭풍이 지나가고

폭풍이 지나가고

(원제: The Longest Storm)
글/그림 댄 야카리노 | 옮김 김경연 | 다봄
(2022/08/26)

아빠와 아이가 매주 금요일 아침 함께 치르는 둘만의 행복한 전통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금요일엔 언제나”의 댄 야카리노가 이번에는 전세계가 고초를 겪었던 팬데믹 상황을 소재로 한 그림책 “폭풍이 지나가고”를 선보였습니다.

소재는 팬데믹이지만 우리가 살면서 겪는 어려움이 어디 그뿐일까요? 댄 야카리노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와 슬기롭게 그 시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상황 전개에 따라 변해가는 가족들의 표정은 힘든 일을 겪는 순간 나의 표정이고, 마침내 어려움에서 벗어나 기뻐할 때 우리들의 표정입니다.

참고로 집안에만 갇혀 지내며 가족끼리 서로 갈등을 겪거나 화해하는 장면들 가만히 들여다보면 웃음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반려견도 갈등과 화해의 대상으로 등장하거든요. 조그만 녀석이 자기도 가족의 일원이랍시고 끼어드는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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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쌤
동화쌤
2022/09/08 18:58

엊그제 태풍이 온 날 세찬 바람과 비에 잠을 설쳤지요. 태풍이 지난간 흔적에는 슬픔이 더 많이 남아있어 맘 아픈 태풍이지요. 하지만, 다시 일어나야 하니 함께 일어나는 과정속에서 또다른 이야기가 나올것 같아요.

이 선주
Editor
2022/09/13 08:01
답글 to  동화쌤

비바람에 들썩이는 창문을 보며 참 많은 이들을 떠올렸던 시간이었어요.
가을 태풍이 아직 몇 차례 더 남았을 텐데 별일 없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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