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소녀

버섯 소녀

글/그림 김선진 | 오후의소묘
(2022/06/21)


폭우가 쏟아진 다음 날
산책길에서 어제는 보지 못했던
동그랗고 하얀 버섯을 만났습니다.
반나절의 햇볕은 뜨거웠고
돌아오는 길에 그 버섯은
사라지고 없었어요.

순간의 요정처럼

그림책 마지막 페이지의 에필로그가 가슴을 아릿하게 만듭니다. ‘순간의 요정처럼’이라는 말이 한참 동안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순간의 요정처럼 잠시 머물다 간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리운 그 이름을 가만히 불러봅니다.

버섯 소녀

버섯 소녀

이끼 숲에 사는 버섯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고목나무 곁에서 태어난 작은 버섯 소녀, 새들이 들려주는 노래, 아득한 꽃향기는 세상이 소녀에게 가르쳐 주는 지극한 사랑입니다. 고목이 내어주는 나뭇잎, 곤충의 날개를 덮고 포근한 단잠을 자고 나면 어느새 작별을 고할 시간이에요.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 날 소녀는 먼 길을 떠나며 숲의 친구들에게 짧은 인사를 했어요.

폭우가 오기 전에
먼저 가서 기다릴게

파란 흔적들을 흩날리며 소녀는 길을 떠납니다. 커다란 나무들에 둘러싸인 소녀의 모습은 더없이 고독하고 쓸쓸해 보입니다. 아름다운 꽃길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언젠가는 그 꽃길도 끝나고 말겠지요. 꿈결처럼 몽환적으로 그린 그림은 금방이라도 쏟아지는 빗물에 흔적 없이 사라질 것만 같습니다. 보이는 모든 것이 그래서 더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 만난 비, 쏟아지는 빗속으로 소녀가 사르르 사라집니다. 스며들듯 녹아들듯, 흩어지고 물들이고 흘러 흘러…

녹아드는 듯 한 생명이 사라져 가는 연속된 세 장면에 눈길이 머뭅니다. 사라지는 것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사라지는 순간 그 존재의 의미까지 완전히 지워지고 없어지는 걸까요? 가벼우면서도 한없이 무겁고 환상적이면서 장엄한 느낌. 내리는 비는 어느새 흐르는 눈물이 됩니다. 그리움이 됩니다.

그렇게 한 생명이 사라진 숲. 쏟아진 비는 또 다른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습니다. 맑게 갠 숲에 말간 얼굴을 내어놓는 버섯 소녀. 사라지고 이어지고 또 사라지면서 이어지고.

소녀는 아직 거기에 있어.

찰나의 삶의 모습을 몽환적이면서 환상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책 “버섯 소녀”,  ‘먼저 가서 기다릴게’ 훗날 이토록 담담하게 이별을 고할 수 있을까요? 이 가을 그림책 한 권으로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순환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 함께 읽어보세요: 사라지는 것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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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책
서 책
2022/10/01 18:03

올 여름과 가을에 버섯들에 대해 알아 보고 있습니다.
알아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 더 맞겠네요. 잘 알지 못했던 버섯에 대해
알게 되면서 생활 터전 주변에 그렇게 많은 버섯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된 것 같아요.
‘버섯 소녀’ 그림책도 사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온빛지기
Admin
2022/10/05 10:29
답글 to  서 책

서 책 님, 반갑습니다!
버섯들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는 말씀에 가온빛지기들이 한참 웃었습니다.지난 해 봄에 표고버섯을 직접 재배해서 먹어보겠다고 야심차게 칠갑산 자락까지 가서 종균 심어둔 통나무를 무려 4개나 사다 애지중지 보살폈었거든요. 결과는 쉽지 않을 거라던 판매자 분의 말대로였구요. ^^
그림책 “버섯 소녀”를 놓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해서 더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
그림책과 함께 즐거운 버섯 생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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