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

(원제: The True Story Of The 3 Little Pigs)
존 셰스카 | 그림 레인 스미스 | 옮김 황의방 | 보림
(1996/09/30)

※ 원작 1989년 초판 출간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가 책으로 처음 출간된 건 1893년 조셉 제이콥스라는 민속학자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조셉 제이콥스는 민가에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를 수집해 영국 민담 모음집을 출간했는데 그 책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기 돼지 삼 형제, 잭과 콩나무, 달리는 생강 과자 같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준비한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는 본래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패러디 그림책입니다. 아기 돼지 삼 형제가 아닌 늑대의 관점에서 그날의 사건을 재구성했습니다.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

늑대 알렉산더 울프는 고약한 늑대 이야기가 생겨난 건 모든 것이 자신들이 즐겨 먹는 음식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말합니다.

치즈버거를 먹는다고 해서 너희를 커다랗고 고약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게 말이 되니?

치즈 버거 비유, 아주 그럴듯하죠?  치즈 버거 비유 덕분에 그날의 사건이 ‘재채기’와 ‘설탕 한 컵’에서 시작되었다는 늑대의 말을 일단 한 번 들어보고 싶어집니다.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

할머니 생일 케이크를 만들던 늑대는 설탕이 떨어져 이웃 돼지네 집을 찾아갔어요. 마침 감기에 걸렸던 늑대는 심한 재채기를 하고 말았지요. 지푸라기로 만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아기 돼지의 집은 재채기 한 방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무너져 내린 지푸라기 집 흔적 속에 아기 돼지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늑대는 본성대로 죽은 아기 돼지를 먹어버렸습니다.

두 번째 아기 돼지의 집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반복됩니다. 원하는 설탕은 얻지 못하고 배만 볼록해진 늑대는 세 번째 아기 돼지의 집을 찾아갔어요. 벽돌 집에 사는 아기 돼지는 늑대에게 설탕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꺼져 버려, 너희 할머니 다리나 부러져라!’라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이 말에 늑대는 이성을 잃고 말았어요.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

흥분한 늑대가 돼지의 집을 부수려는 순간 경찰이 달려왔고 이 일은 대대적으로 신문에 보도됩니다. ‘감기에 걸린 늑대가 설탕 한 컵을 구하러 아기 돼지의 집을 찾았다’는 사실이 독자의 흥미를 끌지 못할 거라 판단한 신문 기자들은 ‘코를 벌름거리며 숨을 들이마신 다음 입김을 세게 불어 집을 부숴버렸다’는 이야기만으로 늑대에게 커다랗고 고약한 늑대라는 프레임을 씌웠어요. 늑대는 자신이 들려준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라며 자신은 누명을 썼다고  말합니다.

설탕을 얻으러 갔다가 감기 때문에 재채기를 했고 그래서 돼지의 집이 무너졌고 그것 때문에 집 안에 있던 돼지가 죽었고 그래서 먹어 치웠다는 늑대의 말은 뭔가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어린아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 자극적으로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의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한 조직이나 집단을 옹호하기 위한 언론의 눈물겨운 노력도 보입니다. 그림책을 살펴보면 늑대를 잡으러 온 경찰도 기자도 또 피해자도 모두 돼지였어요. 늑대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지 못하고 원초적 자극과 흥미만을 쫓는 대중들의 책임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항상 열린 사고와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라는 질문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책은 상당히 돋보입니다.

너희는 나한테 설탕 한 컵쯤은 꾸어 줄 수 있겠지?

할아버지가 된 늑대가 감옥 창살 사이로 던지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네요.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하는 늑대의 변명 코드가 바로 이 설탕 한 컵과 재채기였지요. 늑대가 설탕 한 컵 빌리러 온다면 흔쾌히 문을 열어 줄 수 있을까? 늑대 질문이 내게로 돌아옵니다.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는 존 셰스카의 첫 작품입니다. 실험적이면서 독특한 레인 스미스의 그림이 작품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꾸준히 협업한 작품을 출간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내 오랜 그림책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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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John
2022/09/30 09:37

아주 의미있는 책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이 순수하게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순수한”이라는 말이 그렇기는 하지만요)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어서 어른을 위한 책으로서의 기능도 충실하게 하게 되는군요.

가온빛지기
Admin
2022/10/05 10:24
답글 to  John

John 님, 말씀처럼 그림책 속에 담긴 아이들의 순수함이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곤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도 그림책 보는 재미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나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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