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춘당

옥춘당

글/그림 고정순 | 길벗어린이
(2023/04/20)


어떤 사랑은 색깔로 향기로 맛으로 모양으로 마음에 머무릅니다. 그 사랑 때문에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그 사랑이 우리에게 세상을 살아갈 힘을 내어주기도 하지요.

옥춘당, 국민학교 다닐 때 짝꿍에게 처음 한 조각 얻어먹어봤어요. 몇 조각으로 나눈 사탕을 함께 나눠 먹었던 기억이, 달달한 맛에 머릿속까지 황홀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이 사탕을 제사상에 올리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처음 그 사탕 맛을 본 꼬맹이, 두 눈이 똥그래졌겠죠. ^^

고정순 작가의 “옥춘당”은 달콤한 사랑입니다. 애절한 슬픔이고 눈물 줄줄 흐르게 만드는 그리움입니다.

옥춘당

오줌은 두 칸 똥은 세 칸,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면 할머니가 늘 하던 잔소리였어요. 할아버지는 ‘그럼 닦을 때 뚫린다고.’라는 우스갯소리로 응수하시곤 했죠.

고자동 씨와 김순임 씨는 전쟁고아였다.

고자동 씨와 김순임 씨는 화자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입니다. 3부로 나누어 전개되는 이 그림책은 손녀의 시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부는 어린 나의 눈에 비친 할머니 할아버지의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 이야기를 그려냈고 2부에서는 두 사람의 아픈 이별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3부는 <금산 요양원 13번 침대>란 소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홀로 남겨진 할머니의 시간을 애절하게 그려냈습니다.

옥춘당

손주를 위해 음정이 맞지 않는 만화영화 주제곡을 온몸으로 불러주고 여름이면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주던 따뜻하고 부지런한 할아버지, 외출을 할 때면 아내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세심하게 살펴주는 세상 없이 다정한 남편이었어요. 낯을 많이 가리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그런 다정한 할아버지가 제삿날마다 입에 넣어 주던 사탕이 있었으니 그 사탕이 바로…

옥춘당

옥춘당.

‘순임아,  눈 감아 봐.’ 아내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할아버지, 알고도 모르는 척 눈 감고 남편이 넣어주는 사탕을 가만히 입에 무는 할머니. 그 달달한 모습에 내가 그만 녹아버릴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입에 넣어준 건 그저 사탕이 아닌 사랑. 마음을 꽉꽉 채워 넣은 동그란 사랑이었지요.

김순임 씨가 천천히 녹여 먹던 사탕.
제사상에서 가장 예뻤던 사탕.
입안 가득 향기가 퍼지는 사탕.
옥춘당.

영원할 것 같았던 시간이 흘러가고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할머니는 커다란 상실감에 빠집니다. 남아있던 말마저 모두 빠져나가버린 것 같은 텅 빈 모습이었어요. 조용한 치매를 앓던 할머니가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 요양원에서 자주 그린 그림은 동그라미였어요. 뭘 그린 거냐고 묻는 말에도 할머니는 말없이 동그라미만을 보여주실 뿐이었지요.

그리움은, 사랑은, 기다림은 동그라미. 할아버지가 입에 넣어주시던 달콤한 옥춘당 닮은 동그라미.

순박하고 순둥한 삶을 살다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작고 둥글둥글한 모습입니다. 소박한 달콤한 맛의 사탕 옥춘당을 닮은 모습이에요. 하얀 여백 위에 단순한 색상으로 그린 그림들은 우리들 각자의 가슴속에 남은 빛바랜 오랜 추억들을 소환합니다. 사라진 것들, 잊고 있는 것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시간들, 남겨진 것들, 기억해야 할 것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때가 되면 순리에 따라 피고 지는 마당의 순한 꽃처럼 머물다 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 사랑 이야기 “옥춘당”, 고정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 만든 그림책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기억될까요? 여기 이곳에서 지금 우린 무슨 이야기를 쓰고 그리고 있을까요? 그리운 이들을 마음에 그려보고 불러보는 5월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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