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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마을의 제빵사

바닷가 마을의 제빵사

(원제: The Baker by the Sea)
글/그림 폴라 화이트 | 옮김 정화진 | 국민서관
(2023/02/20)


오늘 소개할 “바닷가 마을의 제빵사”는 작가 폴라 화이트의 첫 그림책입니다. 2019년 템플러 일러스트 최우수상을 수상할 당시 심사위원들로부터 ‘거의 사라진 냄새, 맛, 소리를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는데요. 어업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바닷가 마을의 정취와 그곳 사람들의 삶의 풍미를 잘 살려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바닷가 마을의 제빵사

뭉게뭉게 피어난 하얀 구름 아래  빵을 가득 실은 자전거를 탄 한 소년이 서 있습니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소년의 자전거는 언덕 밑 바닷가 마을로 향합니다. 소년을 따라 마을에 들어서면 생선 가게, 연기로 생선을 익히는 공장, 대장간, 바구니 가게, 정육점, 아늑한 카페와 없는 것이 없는 작은 가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늘어선 가게들 틈 사이로 작은 빵집이 보입니다. 바로 소년의 아빠가 일하는 곳입니다.

바닷가 마을의 제빵사

어부들이 안심하고 바다에 나갈 수 있도록 돛과 배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사람들, 어부들이 마음껏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그물과 밧줄을 만드는 사람들, 통 기술자가 만든 통에 물고기를 넣고 소금에 절이는 스코틀랜드에서 온 일꾼들, 이들의 일하는 손길들이 멈추면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 파도와 싸우며 물고기를 잡습니다. 바다로부터 온 일들을 하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자란 소년은 매일 밤 잠들기 전 바다에서 추위와 비를 견디며 용감하게 일하는 어부들을 생각하곤 합니다. 자신도 마을 사람들을 위해 거센 파도와 폭풍우를 이겨 내고 싱싱한 물고기를 잡는 어부가 될 거라 다짐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아빠는 어부가 아니고 제빵사입니다. 배가 돌아오기 전에 안전하고 따뜻한 실내에서 부지런히 빵을 굽지요. 식빵과 작은 번, 비스킷을 구워 모퉁이 카페에 보내고 굳센 스코틀랜드 일꾼들과 용감한 어부들이 먹을 수 있게 합니다. 소년은 아빠의 일을 돕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아빠가 통 기술자거나 배 기술자면 어땠을까요?
아빠는 왜 제빵사가 되었을까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어부가 되고 싶은 소년에게 자신이 동경하는 일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아빠의 삶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뜻한 오븐 앞에서 빵을 굽는 아빠보다 어둡고 무서운 바다에 나가 시린 추위 속에서 거친 파도와 싸우고 있을 어부들이 더 용감하고 멋져 보였을 테니까요.

바닷가 마을의 제빵사

“아빠는 바다에 나가 본 적 있어요?”라고 소년이 묻습니다. 그 물음에 담긴 의미를 아빠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잠시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옅은 웃음을 머금고 아빠가 대답합니다. “그럼. 아빠가 젊었을 때였지. 한 번 나가보고, 또 한 번 도전해 봤는데 나한테 안 맞는다는 걸 알았단다.”라고. 그러고는 자신의 앞치마를 툭툭 턴후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아빠가 앞치마를 툭 치자
밀가루 구름이 피어났어요.
밀가루 구름 속에서 아빠의 자부심이 반짝여요.

“그래서 제빵사가 되었단다, 아들아.
이게 내 꿈이었거든.“

바닷가 마을의 제빵사

아침이 밝을 무렵 일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어부가 아빠의 빵집을 찾습니다. 어부는 말없이 아빠에게 가장 싱싱하고 통통한 생선을 건넵니다. 지친 어부의 눈은 아빠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 놓인 빵과 생선은 서로를 존중하고 격려하는 마음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소년은 감동합니다. 어부처럼 용감하진 않더라도 그들을 위해 빵을 굽는 일 역시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그런 아빠가 자랑스럽습니다.

뱃사람이건 제빵사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빠는 왜 뱃일이 아닌 빵 굽는 일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해 하던 소년의 어린 마음을 통해 뱃일 하는 어부들과 빵을 만드는 제빵사의 손을 떠올려 봅니다. 일하는 손은 정직하고 아름답지요.  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일로 도움을 주고 곁을 내주며, 손길을 모아 일했던 것입니다.

폴라 화이트는 어업으로 번성했던 바닷가 마을에서 제빵사로 일하며 어부가 되지 못한 것에 종종 미안해했던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에서 그림책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합니다. 앞치마에 피어난 밀가루 구름에서 아빠를 향한 자부심을 느꼈던 아이는 작가의 아빠입니다. “바닷가 마을의 제빵사”는 평생 미안한 마음을 품은 채 바닷가 마을의 제빵사로 살았던 할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지금 이 순간 여러가지 이유로 자신의 삶에 주눅 들어 있는 우리 이웃들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고,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다정하게 건네는 위로 같은 그림책입니다.

유유리딩

첫 읽기의 시작은 엄마가 사준 "소공녀"라고 믿고 있어요. 무미건조한 회사원의 삶을 살다 엄마라는 혁명에 참여했습니다. 그림을 감상할 때 자유로움을 느껴요. 읽기 공동체, 문턱이 낮은 숲의 도서관을 소망하며 사서를 준비하고 있어요. 평생 책과 사람을 통해 읽고 쓰고 배우는 삶을 위해, 몸 하나 남는 정신적 해방을 맞는 순간을 위해, 문장들에 기대어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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