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그림책은 역시 존 버닝햄의 “우리 할아버지“겠죠? 우리나라 그림책이건 외국 작가들의 그림책이건 할머니나 할아버지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그림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 소개한 세대 간의 화합과 가족의 의미를 잘 그려낸 그림책 “기억을 잃어버린 여우 할아버지” 처럼 우화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림책도 있지만, “오른발, 왼발“이나 “마레에게 일어난 일“처럼 할아버지나 할머니와의 소중한 추억을 담아낸 그림책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그림책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이유는 왜일까요? 아마도 그건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수많은 영양분 중 하나가 바로 조손간의 사랑과 교감이기 때문 아닐까요? 엄마 아빠로는 채워질 수 없는 그 무언가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 아이들을 성장시켜 주는 것 때문이겠죠.

오늘 소개하는 두 권의 그림책은 제목이 똑같습니다. 바로 정설희 작가의 “우리 할아버지”와 스페인과 영국에서 활동 중인 마르타 알테스의 “우리 할아버지(My Grandpa)”입니다. 쓰는 언어도 다르고, 자라 난 문화와 환경도 틀리지만 할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은 전혀 다르지 않은 두 권의 그림책 함께 보시죠.


우리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글/그림 정설희 | 노란돼지
(발행 : 2013/05/08)

정설희 작가는 아이들이 스스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자기와 다른 이들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림책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런 마음으로 출발한 작가의 바램이 직접 쓰고 그린 첫 번째 그림책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담뿍 사랑 받던 아이가 그 사랑을 고스란히 할아버지에게 되돌려 주는 훈훈한 이야기 시작합니다.

우리 할아버지

먼 시골에 사시는 할아버지는 손녀딸이 보고 싶어 자주 올라 오세요. 손녀딸이 좋아하는 맛있는 바나나랑 선물들을 늘 한보따리 사 들고 말이죠. 그런데, 할아버지는 연세가 드셔서인지 자꾸 깜박깜박하세요. 방금 들고 들어온 바나나 봉다리를 곁에 두고도 손녀딸 주려고 사온 걸 어디다 두었는지 갸웃~ 하십니다. 그런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딸은 재미있기만 하구요.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깜박증을 재미있게 표현한 그림입니다. 굳이 연세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죠? 저 역시도 아침에 급하게 출근하다 보면 주머니에 핸드폰을 챙겨 넣고도 아내에게 ‘내 폰 좀 집어 줘~’ 하는 일이 한두번이 아닌걸요 뭐. 머리 위에 걸쳐 둔 안경을 찾고 계신 할아버지, 전화기를 잃어 버렸다며 손녀딸에게 전화해서 물어 보는 할아버지. 그 때마다 손녀딸은 늘 할아버지의 초고속 대용량 메모리가 되어 드립니다.

할아버지 머리 위에 있잖아.

할아버지! 지금 나랑 통화하고 있잖아!

이렇게 말입니다. ^^

우리 할아버지

오늘도 할아버지가 오셨어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손녀딸 ‘나’를 보러 말이죠. 그런데, 오늘은 평소랑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뭘까요?

우리 할아버지

뭔가 했더니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빈 손으로 오셨대요. 자기를 위한 선물을 처음으로 잊어버린거라며 심통 난 손녀딸 표정 좀 보세요. 고 녀석… 할아버지를 기다린걸까요? 선물을 기다린걸까요? 정답은 둘 다겠죠! ^^

그나저나 할아버지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걱정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계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말이죠.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건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듯한 할아버지의 표정, 그래서 더욱 걱정스럽고 안쓰러습니다.

그 날 이후 할아버지가 한동안 오시지 않았어요. ‘나’는 걱정이 됐어요. 할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자신을 보러 오는 것도 깜박한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그런 아이를 꼭 끌어 안으며 엄마가 이야기합니다.

감기에 걸리면 열이 나고 기침이 나는 것처럼,
할아버지 깜박증은 기억을 자꾸자꾸 잃어버리면서 아픈 거야.
그래서 이젠 혼자서 여기 오실 수가 없대.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 해 계신 걸 알고 손녀딸 아이는 엄마 아빠를 조릅니다. 할아버지를 보러 가자고 말이죠.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할아버지를 보러 가는 건데도 ‘나’의 표정은 밝지만은 못합니다. 병원도 무섭지만 할아버지가 자기를 못알아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죠.

할아버지가 자신을 잊었을까봐 걱정인 ‘나’는 병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소리를 질러 대듯 할아버지에게 물었어요.

“할아버지, 내가 누구야! 내가 누구냐고! “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어요.

“우리 예쁜 강아지 왔구나.”

손녀딸을 낯선 듯 한참을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우리 예쁜 강아지 왔구나.” 하고 말이죠.

우리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를 꼭 껴안았어요.

우리 할아버지

그 날 이후 ‘나’는 주말마다 엄마 아빠를 따라서 할아버지를 뵈러 갔어요. 이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게 바로 ‘나’니까요. 멀리 사시면서도 손녀딸이 필요로 하면 언제고 한 걸음에 달려 와 주시던 할아버지처럼, 이제는 손녀딸인 ‘나’가 할아버지를 위해 찾아갑니다.

그러고 보니 자기가 누구냐고 손녀딸이 할아버지에게 묻는 장면부터 할아버지와 손녀딸의 위치가 바뀌었네요. 손녀딸이 좋아하는 선물을 사들고 찾아 오시던 할아버지는 늘 그림의 왼 쪽에 있었고, 손녀딸은 오른 쪽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손녀딸이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순간부터 두 조손간의 자리가 바뀌었습니다. 손녀딸은 할아버지가 계시던 왼 쪽으로, 할아버지는 손녀딸이 있던 오른 쪽으로 말입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여우 할아버지“에서 여우 할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으며 자란 꼬마 여우들이 늙고 병든 할아버지를 돌보듯, ‘나’ 역시 할아버지에게 받은 사랑 그대로 할아버지에게 돌려 드리는 모습을 작가는 조손간의 자리를 바꾸는 것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원제 : My Grandpa)
글/그림 마르타 알테스 | 옮김 노은정 | 사파리
(발행 : 2012/06/08)

앞서 소개한 정설희 작가의 “우리 할아버지”와 제목도 똑같지만 할아버지와 손주간의 관계가 단지 내리사랑만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보여 주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꼭 닮은 그림책 마르타 알테스의 “우리 할아버지(My Grandpa)”입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공원 벤치에 쓸쓸히 앉아 있습니다. 작은 새들도 알록달록 서로 다른 새들이 한데 모여 재잘거리는데 할아버지만 혼자입니다. 어린 손자 눈엔 그런 할아버지가 쓸쓸해 보입니다.

우리 할아버지

그럴 때면 손자는 할아버지랑 함께 놀아 줍니다. 반가운 손자 녀석 얼굴을 보니 쓸쓸해 보이던 할아버지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돌기 시작합니다. 빙그레 웃음 짓는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바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나랑 있으면 싱긍벙글 웃어요.

나는 할아버지랑 있으면 둥실둥실 날지요.

아마도 이 그림, 이 두 줄의 글귀야말로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 녀석들간의 관계를 간단명료하게 정의 내리는 그림이고 글귀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 부모님의 경우 저희들 키울 때보다 더 예쁘다고 하시더라구요. 손주녀석들이. 제가 자라면서 부모님께 예쁨 받을 만한 짓을 못한 것도 있겠지만 얼핏 생각해 봐도 아들 딸보다는 손자 손녀가 더 예쁠 것 같긴 합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엄마 아빠야 당연히 좋은 거지만 말만 하면 다 들어 주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훨씬 더 좋겠죠.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몸으로 느끼게 해 주시는 분들이 바로 할머니 할아버지니까요.

‘할아버지는 나랑 있으면 싱글벙글 웃고, 나는 할아버지랑 있으면 둥실둥실 날지요.’ 이 말 그대로 할아버지 할머니에겐 인생의 말년에 유일한 즐거움이 손주 녀석들이고, 아이들에겐 자기 말이라면 뭐든 다 들어 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랑 함께 있으면 하늘을 나는 것 만큼 즐겁고 신나겠죠.

우리 할아버지

가끔 할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해요.
그럴 땐 내가 할아버지를 꼭 안아 주지요.

앞서 말한 것 처럼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 녀석들 사이의 관계가 단순히 내리사랑만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 꼭 안아 드릴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날겁니다. 덕분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노쇠한 말년을 푸근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겠죠.

우리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는 자꾸자꾸 늙어 가요.
왜냐하면 할아버지니까요……

그래도 나는 우리 할아버지를 정말 사랑해요!

정설희 작가의 “우리 할아버지”에서는 그림의 좌우 위치를 활용해서 할아버지와 손녀딸 사이에 오가는 사랑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과 달리 마르타 알테스는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늙어 가는 모습을 바라 보는 어린 손자의 짠한 마음을 주거니 받거니 건네는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해 냈습니다.

어느 날은 내가 할아버지 눈이 되어 주고

어느 날에는 할아버지가 내 눈이 되어 준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세상에서 나를 제일로 예뻐해 주셨던 할아버지가 자꾸만 늙어 가는 것이 어린 손자의 마음을 짠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손자는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니까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쓰러울 때마다 손자는 할아버지를 꼭 안아줍니다.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손주 녀석의 작은 가슴에 안겨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아이가 할아버지 품에 안겨 세상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꼈었던 것 처럼 말이죠.


요즘 들어 부쩍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들에 손이 가게 됩니다. 얼마 전 은퇴하시고 고향에 작은 집 한 채 짓고 내려가 계시는 부모님 생각 때문일까요? 모처럼 올라 오시거나 저희가 내려가면 손주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짠합니다. 지금껏 아버지나 어머니가 많이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계시는 모습을 바라 보고 있자니 아버지의 흰머리, 어머니 눈가에 잔주름이 자꾸 눈에 들어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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