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유산

(원제: The Inheritance)
글/그림 아민 그레더 | 옮김 황연재 | 책빛
(2023/03/30)


동물에 대한 인간의 폭력성을 다룬 “별이 된 큰 곰”, 낯선 존재에 대한 공포와 폭력에 대한 이야기 “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살 곳을 강탈한 이스라엘의 이기적 폭력을 다룬 “빼앗긴 사람들”, 난민 문제를 다룬 “지중해”, 피로 얼룩진 다이아몬드의 유통 과정을 다룬 “다이아몬드” 등 인류가 안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뤄온 아민 그레더. 이번엔 이기적인 자본주의가 어떻게 지구의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지를 자신만의 깊은 통찰과 비판으로 보여주는 “유산”을 내놓았습니다.

유산

나라에서 제일 큰 기업의 회장이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 노인은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순간에도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입니다. 더, 더, 더 부자가 되는 것. 그 생각이 그대로 노인의 세 아들에게 유언으로 남습니다.

“모든 것이 너희 것이 될 테니
더욱 빛내고 번창시키도록 해라.”

정부는 3일간 국장을 치르는 것으로 위대한(?) 기업가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장례식은 대주교가 미사를 집전했고, 국무총리와 군의 장성들이 참석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세 아들은 모여서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이룰 방법을 궁리합니다. 기술 개발과 현대화, 이윤과 배당금, 기업의 해외 이전과 조세 회피, 그리고, 스위스 은행과 버진 아일랜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 여행을 다니며 넓은 세상을 보고 돌아온 여동생이 오빠들을 향해 외칩니다.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는 자동차를 몰기 위해 아스팔트를 깔고,
차에서 나온 배기가스는 사람들을 병들게 해.
우리는 바다와 해변을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고,
저인망으로 물고기를 쓸어 담아 바다를 텅 비우지.
우리는 숲을 불태워 소를 키울 자리를 만들고,
열대 우림을 없앤 자리에 기름야자나무를 심지.
우리는 광석을 캐내느라 숱한 상처를 남기고,
석유를 얻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고 있어.
우리는 공장의 폐수로 강을 검게 물들이고,
제철소의 연기는 태양 빛을 가리지.

유산

오빠들에겐 여동생의 외침이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반대하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제정신이 아니라며 그 자리를 떠나는 오빠들에게 여동생이 다시 한번 외칩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떡하라고?

오빠 중 하나가 돌아보며 그 아이들이 다 물려받을 건데 뭐가 문제냐며 비아냥 거립니다.

유산

유산

유산

다시 생각해 보자던 여동생의 제안을 뿌리치고 세 오빠들이 떠난 후 벌어지는 일들을 아민 그레더는 글 없이 그림만으로 보여줍니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자동차로 꽉 찬 도로, 산소마스크를 쓴 채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병든 사람, 쓰레기로 가득한 바닷가, 물고기가 살지 않는 텅 빈 바다, 풀 한 포기 없이 검은 흙으로 뒤덮인 초원, 한때는 울창한 숲이었던 자리에 빼곡하게 들어선 기름야자나무, 광석을 캐느라 마구잡이로 파헤쳐 상처투성이인 땅, 석유 개발로 파괴되어 가는 들과 강, 공장 폐수로 검게 물든 강, 하늘과 태양을 삼킨 제철소의 검은 연기.

유산

검은 목탄으로 그려낸 황폐한 지구의 모습들. 산소마스크의 도움 없이는 숨조차 마음껏 쉴 수 없는 환자는 바로 나,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이기도 합니다. 아민 그레더의 어둡고 탁한 그림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되고, 그 생각이 내 숨통을 조여 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여동생의 말대로 다시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세 오빠들처럼 탐욕스러운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지키기 위해 지구의 숨통을, 아니 우리 아이들의 숨통을 더욱 세차게 조일 겁니까? 지금 우리의 선택의 결과가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이라는 아민 그레더의 무거운 한 마디가 담긴 그림책 “유산”입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5 2 votes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1 Comment
오래된 댓글부터
최근 댓글부터 좋아요 순으로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가이니
가이니
2023/07/26 11:23

지구의 신음소리를 무시하고 개발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로 인해 아이들 청소년 아니 우리 모두가 죽어가고 있는 현실. 공포스럽고 안타깝지만 각자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바로 해보는 것 뿐이겠죠. 늘 좋은 책 잘 보고 감사해요.

1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