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사냥하지 마

우리를 사냥하지 마

(원제: Jaga Inte Oss)
글/그림 에바 린드스트룀 | 옮김 이유진 | 단추
(2022/11/25)


“모두 가 버리고” 이후 국내에 출간된 에바 린드스트룀의 그림책은 모두 여섯 권입니다. 그중에서 다섯 권은 ‘나’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작품들이고, 오늘 소개하는 “우리를 사냥하지 마”가 유일하게 개인이 아닌 사회적 문제를 다룬 그림책입니다.

아름다운 숲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다람쥐 두 마리와 토끼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들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사냥꾼과 사냥개들로 인해 조용했던 숲의 평화가 깨지고 말았거든요. 하지만 막무가내로 들이닥치는 사냥꾼들의 위협 속에서도 다람쥐들과 토끼는 아름다운 숲속에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비록 힘은 없었지만 숲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낼 줄 알았고, 평범한 삶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들이 진정한 숲의 주인임을 증명해 내고야 맙니다.

십여 장의 그림과 간결한 글로 그려낸 내용은 단순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중에서 몇 장면 골라 조금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우리를 사냥하지 마

우리는 사냥이 싫어요.
우리는 체조와 도토리가 좋아요.

두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체조를 하며 사냥은 싫고 도토리가 좋다는 다람쥐 두 마리. 그런데 체조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요? 사냥꾼의 총부리 끝에 겁에 질린 채 서 있는 건 아닐까요? 표지의 제목 “우리를 사냥하지 마”를 본 뒤 책을 펼치는 순간, 그리고 이 두 마리 다람쥐를 마주한 순간 여러분들은 누구의 시각이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체조와 도토리를 좋아하는 다람쥐? 이웃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사냥꾼?

우리를 사냥하지 마

숲에서 사냥하는 문제로 마을 회의가 열렸어요. 다들 찬성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반대예요. 우리가 누구냐고요? 다람쥐 두 마리와 토끼 한 마리에요. 반대, 반대, 절대 반대예요!

마을 회관에 모여서 찬반 투표를 했겠죠? 결과는 숲에서 사냥해도 좋다는 쪽이 더 많았습니다. 반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입니다. 지난해 있었던 대선에서 우리가 진 이유를 이 그림에서 찾았습니다. 사냥꾼들 사이사이에 서 있는 사냥개들. 녀석들은 자기들이 사냥꾼과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사냥에 찬성했을 겁니다. 사냥이 끝난 후 자신들을 기다리는 건 펄펄 끓는 솥뿐이라는 걸 모른 채 말이죠.

2022년 3월 9일 치러진 20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48.56%대 47.83이었습니다. 나머지 후보들의 득표율을 색깔별로 합산하면(허경영 제외) 48.71%대 50.38%로 승패가 뒤집힙니다. 합산 전이나 후나 어느 진영에게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입니다. 프랑스처럼 결선 투표를 했다면 어느 한 쪽이라도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왔을까요? 제 생각에 20대 대선만큼은 결선 투표를 했다고 해서 한쪽으로 더 많은 표가 몰리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위 그림과 지난 20대 대선 결과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투표에 맹점이 있고, 선거를 치르는 방식만으로는 그 맹점을 보완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투표가 끝난 후 승자가 패자와 패자를 지지했던 시민들 모두를 끌어안는 정치를 하는 것뿐입니다. 물론, 그런 정치인은 나오지 않을 것이고, 나왔다 하더라도 시민이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 결과이고요.

우리를 사냥하지 마

우리를 사냥하지 마

총에 맞은 토끼에게 붕대를 감아주며 다람쥐들이 조심하겠다고 약속하라고 했을 때 토끼의 대답이 의미심장합니다.

그러고 싶지 않아!

사냥꾼의 횡포가 점점 더 심해져서 불안에 떠는 밤이 지속되자 상심한 토끼가 나쁜 일은 아무한테나 생길 수 있다고 했을 때 다람쥐들의 말은 의미심장을 넘어서 초연하고 멋집니다.

우리는 아무나가 아니잖아요.
우리는 다람쥐라고요.
그 점을 생각해 봐요!

비록 사냥꾼의 총에 맞아 쓰러졌을지언정 내 숲에서 조심하고 싶지 않다는 토끼, 우리는 아무나가 아니라는 다람쥐. 숲의 주인이 누군지 이제 밝혀졌습니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누군가의 조심하라는 말에 고개를 숙였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끝없이 반복되는 외침과 내분의 역사 속에서 우리 땅 우리 민족을 지켜낸 우리, 단 한순간이라도 우리 스스로를 아무나라고 생각했었다면 반만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내고 지금 전 세계에 K 열풍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요?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조심하고 싶지 않다는 토끼를 보며 1980년 광주의 시민들을 떠올립니다. 우린 아무나가 아니라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외치는 다람쥐들을 보며 1987년 시위하던 청년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던 폭력을 보다 못해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뛰어들던 직장인들, 도망친 대학생을 숨겨주기 위해 장사 따위 아랑곳 않고 가게 셔터를 내려주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떠오릅니다.

저만 그런가요?

우리를 사냥하지 마

언젠가 우리에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날이 찾아오겠죠.
호수에 비친 우리를 가만히 바라봐요.
우리 좀 멋있지?
응.
토끼는 가장 친한 친구지?
그럼.
우리는 다람쥐예요.
우리는 숲의 주인이에요.
그건 숲의 왕이라는 뜻이지요.
“그럼 나는?” 토끼가 물었어요. “난 뭐야?”
“넌 여왕이지.” 우리가 말했어요.

숲을 들쑤시고 다니던 사냥꾼과 사냥개는 간데없고 발자국만 남아 있습니다. 나무마저 앙상한 걸 보면 이들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람쥐와 토끼는 숲에 남아 있습니다. 호수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숲을 지켜낸 것을 뿌듯해하는 다람쥐들. 자신들은 왕이고 이웃인 토끼는 여왕이라는 그들의 말을 되새겨 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숲의 평화를 깬 사냥꾼과 사냥개는 누구일까요? 그들이 누구 건 간에 우리 숲의 주인은 우리입니다. 우리 시민들이야말로 가장 존귀한 왕이자 여왕들입니다.

책표지와 면지를 포함해서 모두 열네 장의 그림으로 만든 이 그림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여러분에게 끝없이 묻습니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요? 이 책을 덮고 난 후 자문해 보세요. 난 어느 쪽이지? 난 누구 편에 서고 싶은 걸까?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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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빠진50대아저씨
그림책에빠진50대아저씨
2023/07/21 14:03

정말 … 멋진 그림책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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