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가 버리고

모두 가 버리고

(원제 : Alla går iväg)
글/그림 에바 린드스트룀 | 옮김 이유진 | 단추
(2021/04/15)


문득 혼자라는 생각에 쓸쓸하고 외로워 왈칵 눈물 쏟았던 경험 있나요? 함께 있지만 함께이지 못한 기분, 이 넓디넓은 세상에 나만 혼자인 것 같아 고독한 기분. 오늘 프랑크가 그렇습니다. 프랑크는 그 마음을 견디기 어려웠어요. 프랑크의 마음은 이 한 문장으로 대변됩니다.

모두 가 버렸어.

모두 가 버리고

혼자 있는 프랑크 쪽은 무거운 색채 때문에 더 쓸쓸해 보이는데 반해 티티, 레오, 밀란이 함께 놀고 있는 쪽은 환한 빛으로 가득합니다. 쓸쓸하기 그지없는 프랑크쪽 분위기와 달리 티티, 레오, 밀란은 너무나 신나 보이지요. 저쪽에서는 쿵짝쿵짝 음악 소리까지 들려오는 것 같아요.

저만치 떨어져 세 친구가 모여서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하는 프랑크의 모습은 또 얼마나 처량하고 쓸쓸해 보이는지요. 눈빛만으로 프랑크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모두 가 버리고

그런데 프랑크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런데 어쩌면 앞선 장면들은 프랑크만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혼자 가 버리는 프랑크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생각은 좀 달라 보이거든요. 표정도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달라 보이구요. 티티, 레오, 밀란의 눈길은 혼자 쌩하니 지나가버린 프랑크에게 가 있습니다.

가 버린 건 세 친구 티티, 레오, 밀란이었을까요? 프랑크였을까요? 중요한 건 프랑크는 지금 혼자라는 사실. 그리고 온통 그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입니다.

그림책은 이 장면을 통해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소외감, 외로움이라는 아주 미묘한 감정을 한쪽의 시선이 아닌 양쪽의 시선에서 보여주고 있어요. 또 등장인물들을 페이지의 양 끝에 배치하고 넓은 배경 속에 인물들을 조그맣게 그려내 서로의 감정의 거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두 가 버리고

이제 시선은 다시 프랑크에게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돌아온 프랑크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어요. 펑펑 쏟아낸 눈물이 냄비 한가득 모이자 프랑크는 설탕을 부어 졸이기 시작해요. 끓을 때까지 꼼꼼하게 저으면서 .

벽에 걸린 무인도 그림은 어쩌면 지금 눈물의 마멀레이드를 만드는 프랑크의 마음인지도 몰라요. 그렇게 한 시간, 아니 두 시간 어쩌면 세 시간… 눈물의 마멀레이드를 만드는 시간, 출렁이는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입니다.

마멀레이드가 뻑뻑해질 것 같으면
프랑크는 조금 더 울었어.
너무 뻑뻑해도 안 돼.
너무 묽어져도 안 돼.

집이라는 온전히 혼자 고립된 공간 안에서 마멀레이드를 만드는 동안에도 프랑크의 시선은 온통 창밖을 향해 있어요. 마치 이 눈물, 이 마음을 알아 달라는 듯.

프랑크의 감정이 담긴 단짠의 마멀레이드가 뭉근하게 졸여지고 있을 무렵 프랑크 집 창가에 익숙한 노란 모자가 등장하면서 장면이 전환됩니다. 노란색, 어쩐지 우울한 기분을 바꿔줄 것 같은 발랄한 느낌이지요.

마멀레이드를 식히기 위해 창문이 열립니다. 작은 문도 열립니다. 물론 이 즈음 프랑크의 마음도 열렸겠지요. 상냥하면서도 재미있고 또 아름다운 비유에 그만 슬며시 미소가 지어집니다.

남은 이야기는 그림책으로 직접 확인해 보세요.

작가 에바 린드스트룀은 동물과 사람 모습을 교묘하게 섞어 프랑크, 티티, 레오, 밀란 네 친구들을 그려내 성격도 모습도 제각각 다른 우리의 관계를 적절하면서도 재미있게 표현했어요. 간결한 글, 비유적 표현, 여백을 많이 둔 그림…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우린 더 많은 이야기와 질문을 우리 안에 품게 되지요.

 “모두 가 버리고” 난 후 그 쓸쓸한 기분으로 만든 눈물의 마멀레이드는 어떤 맛이었을까요? 고독할 때 쓸쓸할 때 흘리는 눈물로 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 눈물바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5 3 votes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4 Comments
오래된 댓글부터
최근 댓글부터 좋아요 순으로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고들희
고들희
2022/02/11 19:34

몰랐던 그림책인데 자세히 들여다보게 해주시네요.
프랑크의 감정을 저도 언젠가 느꼈던 적이 있어 더 들여다보게됩니다. 눈물의 마멀레이드 맛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프랑크 같은 친구가 보인다면 먼저다가가 같이 놀아야겠어요. 이 책 꼭 찾아 읽어볼게요

백슬기
2022/02/16 11:01

외로움과 고독에서 느껴지는 슬픔을 마멀레이드 만드는것으로 비유하다니 너무 멋진 작품이에요 삶이 우리애게 레몬을 준다면 레몬 에이드를 만들어라 라는 말도 생각나네요 그림책 구성까지 조곤조곤 리뷰해주셔서 더 알찼습니다 감사해요!

가온빛지기
Admin
2022/02/18 13:52
답글 to  백슬기

‘삶이 우리에게 레몬을 준다면 레몬 에이드를 만들어라’
슬기.슭님! 멋진 말이네요. ^^

살아가는 동안 내가 만든 눈물의 마멀레이드 맛은 어땠을까요,
어떤 날은 짠맛이 더 강했을 테고
또 어떤 날은 단맛이 강했을지도…
단짠이 딱 맞아 떨어졌다면 좋았을텐데요. ^^

4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