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큰둥이 고양이

시큰둥이 고양이

(원제 : NEGATIVE cat)
글/그림 소피 블랙올 | 옮김 김서정 | 주니어RHK
(2022/01/30)


혹시 고양이 키우시나요? 저희 가족은 아직까지는 랜선 집사로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꼭 고양이랑 개 몇 마리와 함께 살고 싶다는 꿈을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한 채 말이죠. 뜬금없이 고양이 얘기는 왜 꺼내냐구요? 오늘 소개할 그림책이 바로 고양이 이야기거든요. 2022년생 그림책들 중에서 첫 번째로 소개한 우리 그림책은 백희나 작가의 “연이와 버들 도령”이었죠. 해외 그림책은 뭐가 좋을까 궁리하다 소피 블랙올의 신간 “시큰둥이 고양이”로 정했습니다.

책표지 속의 시크한 고양이의 뒷모습과 이 글의 타이틀 이미지 속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죠? 고양이 자세로 잔뜩 흥분해 있는 아이, 뭐가 그렇게 좋을까요? ^^

시큰둥이 고양이여기 426일 동안 엄마 아빠와 누나에게 고양이를 키우게 해달라고 졸라댄 아이가 있습니다. 가족들이 뭐라고 하건 아이는 언제나 기승전 ‘고양이?’였죠. 마침내 427일째 되던 날 아이는 가족들의 허락을 얻어내는데 성공합니다. 대신 밥 주는 일, 대소변 처리, 방 청소 깨끗이 하기, 할머니한테 메일 쓰기, 하루 20분씩 책 읽기 등의 조건이 함께 따라왔죠. 그런데 요구 조건에는 가족들의 사심이 가득합니다. 첫 두 가지야 자기 고양이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지만, 청소, 할머니께 안부 메일 쓰기, 그리고 아이가 영 싫어하는 독서라니…

그래도 고양이만 키울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쯤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며, 엄마 아빠 마음 변하기 전에 서둘러 유기묘 보호소로 달려가는 아이. 그곳에 있는 많고 많은 고양이들 중에서 아이 눈에 들어온 친구는 ‘푸키’란 이름의 고양이입니다. 아이가 고양이에게 가장 먼저 해 준 일은 새로운 멋진 이름 붙여주기였어요. ‘맥시밀리언 오거스터스 그자비에’, 줄여서 편하게 ‘맥스’라고 부르기로 했죠. 음… 저는 맥스보다 ‘그자비에’가 더 멋진데요~

시큰둥이 고양이

문제는 그렇게 힘겨운 과정을 거쳐 데려온 고양이 맥스가 만사 시큰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맥스 전용 침대, 스크래처, 화장실, 그리고 세상 모든 고양이들이 다 좋아한다는 해물 맛 사료까지 신나게 보여주었지만… 맥스는 아무 관심이 없어요. 깃털로 간지럼을 태워 봤지만 아무래도 맥스는 간지럼을 타지 않는 것 같아요. 자신이 아는 농담을 모두 다 들려주었지만 단 한 번도 웃어주지 않았구요. 마치 100만 번 산 고양이처럼 말이죠.

게다가 카펫 위에 털 뭉치를 토하거나 꼬리로 버터를 휘저어놓고, 엄마가 아끼는 꽃을 죄다 뜯어 먹거나 집안 아무데나 똥을 싸놓기도 하고, 심지어 할머니께 보내려고 써둔 메일을 지워버리기까지… 가족들은 맥스에게 불만이 점점 쌓여갔고 그 불똥은 결국 아이에게 튀었죠. ‘너 방이 엉망이더라!’, ‘책도 안 읽고~’, ‘할머니께 메일 썼니?’ 등등 고양이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약속했던 모든 것들이 잔소리가 되어 아이에게 퍼부어집니다.

시큰둥이 고양이

결국 보호소 선생님이 찾아오기로 한 날(아마도 입양된 유기묘가 잘 적응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절차가 정해져 있는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상황이 좋지 못하다면 입양을 취소하고 다시 보호소로 데려갈 수도 있겠죠?) 아이는 맥스를 데리고 자기 방에 숨어버렸어요. 밖에서 엄마 아빠와 보호소 선생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아이에게는 ‘도저히 안되겠으니 도로 데려가줘요’라던가 ‘이렇게 엉망인 아이에게 고양이를 맡길 수 없어요. 다시 보호소로 데려가겠어요’라는 식으로 들리지 않았을까요?

427일만에 얻은 고양이를 이렇게 잃을 수는 없다 싶었던지 아이는 허겁지겁 방 정리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싫어하는 책 한 권을 꺼내들고 맥스가 숨어 있는 침대 옆에 앉아서 천천히 큰 소리로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한 장 두 장 읽어가던 어느 순간…

맥스가 얼굴을 내밀었고
밖으로 나오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맥스는 머리를 내 팔 밑으로 디밀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읽고,
또 읽고…
끝까지 다 읽었다!

침대 밑에 숨어 있던 맥스가 아이가 책 읽는 소리에 슬며서 밖으로 나와 아이 곁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조용히 아이 팔 밑으로 머리를 디밀고는 아이의 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 다음 장면은 고양이 키워본 분들이라면 다들 잘 아실 겁니다. ^^

나를 내려놓는 것이 진정한 사랑

어쩌면 고양이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은 아이로 하여금 자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책 읽기를 하게 만듭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와 헤어지기 싫은 그 마음 하나로 큰 소리로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 늘 시큰둥하기만 했던 고양이 맥스가 마음을 열고 침대 밑에서 나와 아이 곁으로 다가갑니다. 아이가 자신을 내려놓지 않았다면 그토록 원했던 고양이가 좋아하는 게 바로 책 읽기였다는 걸 알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쳐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수많은 표정들로 전하는 선물

소피 블랙올이 이번 작품을 작업하면서 가장 신경 쓴 건 바로 표정 아닐까요? 그림책의 앞표지에서는 고양이 맥스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뒤쪽 표지에서는 아이와 함께 노트북으로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맥스의 표정이 나옵니다. 꼭 닮은 표정을 한 아이와 맥스는 아마도 할머니께 편지를 쓰고 있는 거겠죠?

엄마 아빠와 누나, 수많은 고양이들, 아이의 반 친구들과 또 그 친구들의 엄마 아빠들… 그림책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고양이들의 표정이 정말 다채롭습니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며 427일간 졸라대는 아이의 변화무쌍한 표정, 고양이만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철옹성 같은 엄마 아빠들의 다채로운 표정, 고양이들의 시큰둥한 표정과 한없이 다정한 표정.

이토록 다양한 표정들을 통해 소피 블랙올이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은 아마도 상대방의 표정에 마음 써줄 수 있는 여유로움과 사랑 가득한 삶 아닐까요?


시큰둥이 고양이

이야기는 맥스와 친구들이 매주 화요일이면 보호소에 가서 고양이들을 위해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시큰둥했던 맥스가 아이의 책 읽는 소리에 마음을 여는 것을 지켜본 보호소 선생님이 버림 받은 유기묘들을 치유하는 멋진 방법을 찾아낸 겁니다.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도 길러줄 수 있고, 고양이 집사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 고양이와 함께 다정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일석삼조 프로그램이네요.

소피 블랙올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입양했던 고양이 클로디아를 모델로 삼아서 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몇 년에 걸쳐 작업을 했지만 마땅한 결말을 짓지 못해 ‘미완성 이야기’ 파일에 넣어두고만 있다가 펜실베니아주 벅스 카운티 동물구조연합에서 진행한 ‘Book Buddies’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를 읽고 이 그림책을 멋지게 끝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군요.

북 버디스는 읽기 연습을 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보호소 고양이들 앞에서 책을 읽게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책을 읽어 주는 아이들 앞에서 고양이들은 차분해지고 다정해졌고, 종종 아이와 깊은 유대감을 갖게 된 고양이들이 새로운 가족을 찾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고 하는군요. 우리도 도서관과 동물보호기관 등이 함께 진행해볼만하지 않을까요?

클로디아는 생애 대부분을 시큰둥이 고양이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곁을 떠날 무렵에는 놀랍도록 다정한 고양이였답니다. 우리가 좀 더 일찍 클로디아에게 책을 읽어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의 말에 남긴 소피 블랙올의 이야기가 ‘북 버디스’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를 잘 설명해줍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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