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원제: Le plus bel été du monde)
글/그림 델핀 페레 | 옮김 백수린 | 창비
(2023/08/1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은 한적한 시골집에서 보낸 한 아이의 여름, 어릴 적 자신이 뛰놀던 곳에서 자신의 아이와 함께 보낸 한 엄마의 여름을 60여 장의 수채화로 담아낸 그림책입니다. 128쪽으로 두툼하지만 투명한 물처럼 푸르고 여름 숲처럼 초록한 그림들에 마음을 담근 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일만큼 몰입감이 높은 그림책입니다.

델핀 페레에게 이 책의 영감을 준 곳은 어린 시절 자주 놀러 갔던 할아버지의 시골 오두막입니다.

한 자리에 머물며
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모든 장소에게
나의 아버지 장, 나의 아들 세티에게

헌사를 읽어 보면 작가가 이 작품에 무엇을 담고 싶어 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로, 아버지에게서 작가에게로, 작가에게서 작가의 아이에게로 세대를 이어가며 공유되는 한 장소가 그들을 어떻게 성장시키고 어떻게 그들의 삶을 이어주는가에 대한 이야기 아닐까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의 가장 큰 매력은 소소함이 품은 삶의 체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예를 들자면 지난여름 찬장 위에 남겨 두고 갔던 작은 사탕 통이 그렇습니다. 사탕 통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유통기한. 하지만 그런 건 곧 별것 아닌 게 됩니다. 뚜껑을 열면 피어오르는 지나간 시간들의 내음에 취해 나도 모르게 사탕 한 개를 꺼내 입에 물게 될 테니까요. 사탕의 과일향이 입안을 가득 채울 때쯤엔 이곳에 남겨두고 떠났었던 지난여름의 잔향들이 오두막을 가득 채우겠지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산비탈에 지어진 오두막 근처엔 엄마가 어릴 적에 가장 좋아했던 뷰포인트가 있습니다. 작고 평평한 돌 위에 앉은 아이도 그 자리를 좋아합니다. 오래전 엄마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아이는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빠져들고 엄마는 같은 풍경을 보며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지금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자신의 아이 또래 정도였을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할아버지의 오두막뿐만 아니라 오두막을 품고 있는 산과 숲도 이 가족을 지켜보고 있었겠군요. 아이와 엄마가 산을 바라봅니다. 산도 아이와 엄마를 바라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어수선하게 놓인 사진들 속에서 아이는 아는 얼굴을 찾습니다. 자기보다 더 어린 할아버지, 코흘리개 시절의 엄마, 할아버지나 엄마 형제들 중에서 누군가 키웠을 강아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척들… 지금 자신이 여름을 나고 있는 이 오두막에서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서랍 속에 잔뜩 쌓인 장갑은 온통 왼쪽 장갑뿐입니다. 오른쪽 장갑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이 그림 보고는 한참 웃었습니다. 아내의 고무장갑도 매번 오른쪽 먼저 구멍이 뚫려서 늘 오른쪽 장갑만 사러 다녔거든요. 아이도 좀 더 자라면 왼쪽 장갑만 남게 된 비밀을 알고 저처럼 활짝 웃으며 재밌어하겠죠? 서랍 속에 수북하게 쌓인 왼쪽 장갑들이 바로 자신의 가족이 대대로 오른손잡이임을 증명하는 유물임을 깨닫고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한적한 시골집에서 엄마와 단둘이 며칠을 보내고 나니 아이는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초록으로 가득한 숲속에서 엄마랑 꼬옥 껴안고 누워 있는 아이. 엄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온 세상을 안은 듯한 표정인데 엄마 품에 안긴 채 할머니랑 삼촌이랑 숙모들이 보고 싶다는 아이. 두 사람의 표정 차이가 재미납니다. 방금 전 장면은 텅 빈 듯 하얀 여백으로 가득한 그림이었는데, 엄마와 아이가 잔디 위에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이 장면은 초록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숲속에서 한가로이 보내는 여름휴가로 엄마도 아이도 가득 채워지고 있나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60여 장의 그림들 사이사이에 아이가 신발 끈을 묶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신발 끈을 아예 끼우지도 못한 채 망연자실해 있거나 어떻게든 스스로 묶어 보려고 애를 쓰는 아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옵니다. 신발 끈을 혼자 묶는 게 서툴렀던 아이는 오두막을 떠날 때쯤엔 신발 끈 따위 능숙하게 묶는 아이로 성장해 있을까요? 신발 끈 묶느라 낑낑대는 장면들 모두 하얀 바탕과 아이의 흰색 티셔츠가 한데 섞여 있어 묘한 느낌을 줍니다. 이렇게 그린 특별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의 첫 문장은 “준비됐어?” 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와 내 아이로 이어지며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간직한 시골 오두막집. 그 안의 소소한 물건들에게서 발견하는 작은 기쁨, 한적한 숲이 건네주는 여유로움으로 다시금 충만해지는 우리 삶을 잔잔하게 그려낸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작은 기쁨을 발견할, 숲의 여유를 느낄, 이 여름을 마음껏 즐길,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됐어?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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