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인형 오토

곰 인형 오토

(원제: Otto)
글/그림 토미 웅거러 | 옮김 이현정 | 비룡소
(2001/11/29)

※ 원작 1999년 초판 출간


『곰 인형 오토』는 2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의 작은 공장에서 태어나 전쟁을 겪고 여러 명의 주인들의 손을 거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낸 곰 인형 오토의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특유의 익살스러움 속에 신랄한 비판과 풍자를 담아내는 작가 토미 웅거러가 곰 인형의 인생역정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곰 인형 오토

다비드는 이번 생일에 곰 인형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옆집에 사는 오스카와 단짝 친구였던 다비드는 곰 인형에게 ‘오토’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 후로 다비드, 오스카, 그리고 오토, 이렇게 세 친구는 언제나 함께였습니다. 오토에게 글씨 쓰는 법을 가르쳐 준답시고 잉크를 쏟아서 오토의 얼굴엔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생겼어요. 오토가 펜으로 글씨 쓰기가 잘되지 않자 다비드 아빠의 타자기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곰 인형 오토

그런데 언제부턴가 다비드와 다비드 가족들은 왼쪽 가슴에 노란 별표를 강제로 달아야만 했습니다.

다비드가 노란 별표를 옷에 달면서부터는 모든 게 달라졌어요. 오스카의 엄마는 노란 별표가 ‘유태인’이라는 표시래요. 사람들 모두가 다비드를 이상하게 쳐다보았어요. 내 눈에는 사람들이 모두 다 똑같이 보였는데도 말이지요! 오스카와 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친구였고 동료였고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이제 노란 별표를 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갈라졌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정하게 인사를 주고받던 사람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커다란 장벽이 생겼습니다. 사람들 모두 노란 별표를 단 사람들을 이상하게 쳐다보았죠. 오스카는 다비드를 전처럼 대하지 않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토는 자기 눈엔 모두 다 똑같이 보이는데 이상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요.

얼마 후 다비드네 가족은 모두 수용소로 끌려갔고, 오스카네 아빠는 군인이 되어 전쟁터로 떠났습니다. 수용소로 끌려가는 다비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오스카와 함께 남은 오토는 대피소에서 폭격을 피하며 다비드를 그리워 합니다. 폭격이 점점 심해지던 어느 날 하늘이 무너질 듯한 소리가 들렸고 순간 공중으로 튀어 오른 오토는 정신을 잃고 맙니다.

곰 인형 오토

정신을 차려보니 오토는 미군 병사의 목숨을 구한 영웅이 되어 있었습니다. 병사의 이름은 찰리. 폐허 속에서 곰 인형을 발견한 찰리가 오토를 집어 드는 순간 날아든 총알이 오토 덕분에 찰리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던 거였죠. 찰리는 자신이 받은 훈장을 오토의 가슴에 달아주었고 그 사진이 신문에 실리면서 오토는 군대의 마스코트가 되었대요.

곰 인형 오토

미국으로 돌아온 찰리는 딸 자스민에게 오토를 선물합니다. 다시 예전처럼 포근한 집에서 지내게 되나 싶었지만 자스민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가 짓궂은 사내아이들 장난에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말았어요.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아가던 아주머니에게 발견되어 골동품 가게에 팔리게 되고, 골동품 가게 주인아저씨는 오토를 깔끔하게 수선해서 진열창에 놓아둡니다.

마침 한 관광객이 그 앞을 지나다 낡은 곰 인형을 발견했고, 곰 인형의 얼굴에 묻은 잉크 얼룩을 보고 그토록 그리워했던 소중한 친구가 자신에게 맡겨 두었던 바로 그 오토라는 걸 한 눈에 알아봅니다. 네~ 그 관광객은 바로 오스카였어요. 오스카는 골동품 가게 주인에게 오토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오토를 사서 호텔로 돌아갔고, 어떻게 알려졌는지 그 사연이 신문 기사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스카와 오토가 머물던 호텔 방의 전화벨이 울립니다.

“다비드?
세상에 이럴 수가!
그래, 그래! 정말 자네구먼!
드디어 우리가 다 모였어!”

오토는 오스카가 통화하는 걸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심장은 쿵쾅거리며 요동쳤겠죠? 그토록 그리워하던 다비드가 전화기 건너편에서 자신을 찾게 되어 기뻐하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으니까요.

곰 인형 오토

이제는 누구도 우리를 헤어지게 할 수 없어요! 우리는 함께 살기로 마음먹었거든요. 셋이 함께 살 수 있는 집도 구했답니다. 마침내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게 된 거예요. 평화롭고 평범하게 말이지요. 이젠 심심할 틈도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수십 년 만에 다시 뭉친 세 친구. 예전의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란히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는 그들의 모습이 참 평화롭습니다. 비록 슬픈 소식도 있긴 했지만 말이죠(다비드의 부모님은 수용소에서 돌아가셨고, 오스카의 아빠는 전쟁터에서 숨지셨고, 오스카의 엄마는 폭격으로 돌아가셨대요).

‘이제는 누구도 우리를 헤어지게 할 수 없어요!’라고 오토가 힘차게 말했지만 사실 그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향한 사람의 혐오, 사람에게 사람이 총구를 겨누는 전쟁, 왜 그런 일들이 자행되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노란 별표를 단 사람들을 향한 이상한 시선을 어린 곰 인형 오토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수십 년 만에 만난 다비드, 오스카, 그리고 오토, 노년의 세 친구 역시 여전히 그 이유를 알아내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토미 웅거러는 곰 인형 오토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우선은 왜 싸우는지도 모르면서 도대체 왜 자꾸 싸우냐는 질문이자 혐오와 전쟁을 멈추고 서로 사랑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라는 충고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토미 웅거러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출신입니다. 유럽의 수도라고 불릴 만큼 요충지인 곳인데 독일에서는 이곳을 ‘슈트라스부르크’로 부릅니다. 현재는 프랑스 영토지만 프랑스와 독일이 지배권을 빼앗고 뺏기고를 반복했던 힘겨운 역사를 지닌 곳입니다. 토미 웅거러가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 1954년이니 그곳에서 고스란히 전쟁을 겪었겠죠. 평범한 시민들은 그저 평화롭게만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어떤 날은 독일군이 와서 시민들에게 독일인임을 강요하고 또 어떤 날은 프랑스군이 돌아와서 너희들은 다시 프랑스인이라고 하고… 전쟁을 일으킨 자들에게는 그들만의 명확한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이유란 게 평화롭게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을런지…

또 한 가지는 삶의 무게입니다. 그저 흔한 곰 인형이었을 뿐이라고, 그저 노란 별표를 단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가벼이 여겼더라면 오스카는 스치듯 지나치던 골동품 가게의 진열창에서 오토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도 어린 시절 갖고 놀던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모진 풍상을 겪어 닳고 닳은 곰 인형을 말입니다. 수용소로 끌려가며 나치를 향한 분노를 독일인 전체에 대한 원망과 혐오로 키우고 가슴에 품고 살았다면 다비드는 매일 아침 보는 신문에서 오스카와 오토의 기사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읽었더라도 수용소에서 자신이 고초를 겪는 동안 저 녀석은 편하게 잘 살았나 싶어 애꿎은 신문에다 대고 저주만 잔뜩 퍼붓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다비드와 오스카는 오로지 ‘내 어릴 적 소중한 친구’로만 서로를 기억했습니다. 잔혹한 전쟁조차 꺾지 못할만큼 단단한 그들의 우정의 무게, 혐오와 전쟁을 억누르고 세상의 평화를 지켜내는 것이 바로 이런 평범한 이들의 삶의 무게라고 토미 웅거러는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토미 웅거러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 삶에 담긴 희망입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밝음과 어둠을 함께 안겨줍니다. 때로는 기쁨에 때로는 슬픔에 웃음과 울음을 되풀이하며 살아가는 삶이지만 누구나 희망이라는 약속 한 조각 바라보며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삶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요즘의 시국을 바라보며 한 가지 메시지를 제 마음대로 더 담고자 합니다. 모든 것은 제 자리가 있고 아무리 용을 써도 결국은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오토가 다비드와 오스카의 품으로 돌아간 것처럼 말입니다. 진실은 지난 2021년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신 수송기가 대한민국 영공에 들어서자 장군을 맞이하러 나간 공군 조종사가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온 국민이 흘린 뜨거운 눈물입니다. 친일 토착 왜구가 제아무리 발광을 해도 홍범도 장군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계실 것이며, 대한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전쟁 영웅들은 영웅들의 자리에서 추앙받고, 매국노들은 매국노들의 자리에서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곰 인형 오토의 인생역정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희망을 담은 그림책 『곰 인형 오토』였습니다.


내 오랜 그림책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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