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마리나

(원제: Marina)
글/그림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 옮김 이명아 | 곰곰
(2023/08/30)


검푸른 하늘에 하얀 달님만 덩그러니 떠있는 고요한 밤, 텅 빈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한 아이가 잠든 듯 가만히 엎드린 채 쓰러져있습니다. 내전 중인 시리아를 탈출하던 배가 난파되어 터키 남서부 바닷가에서 잠든 듯 발견된 세 살배기 쿠르드 족 아이 사진에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는 장면입니다.

마리나

다행히 쓰러져 있던 아이는 한 형제에게 발견되어 그들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어요. 그리고 ‘마리나’라는 새 이름도 얻게 되었지요. 한 번은 마리나 때문에 경찰이 집에 찾아온 적도 있었어요. 어떤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리나에게 인종차별적인 말을 쏟아내기도 했죠. 하지만 마리나는 잠자코 있지 않았어요. 옷 속 맨살이 드러나도록 세게 물어뜯어 아저씨를 혼내줄 만큼 자신을 향한 부당한 대우에 맞설 줄도 알았습니다. 그렇게 마리나는 가족들의 믿음과 환대 속에서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마리나

가족들이 이야기를 할 때면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기만 했던 마리나는 조금씩 입을 떼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부터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우리 엄마는 바다의 왕비고, 아빠는 바다의 왕이야.”

넓은 공원, 수영장이 딸린 성, 물자동차가 달리는 롤러코스터, 거대한 쇼핑센터… 마리나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바닷속 세계는 환상의 세계 그 자체입니다. 획일화된 콘크리트 건물들로 가득한 삭막하고 메말라 보이는 무채색 도시와 달리 마리나가 살았던 바다는 낭만과 사랑이 넘치는 꿈의 공간이에요.

하지만 굳건해 보였던 이들 사이에도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마리나를 끝까지 믿어준 동생과 달리 형은 마리나의 말을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히죽거리고 조롱하면서 형이 마리나에게 물었어요.

“거기가 그렇게 좋은데 넌 왜 여기에 와 있냐?”

작은 프레임 안에서 또다시 쪼개지는 세계, 믿음이 없는 세상에서는 단 하루도 함께 살 수 없었는지 마리나는 그 길로 사라집니다. 마리나가 떠난 걸 알게 된 동생은 형을 깨워 바닷가로 향했어요. 마리나를 처음 만난 그 바닷가 해변으로…

처음 마리나가 왔던 날처럼 하얀 달이 둥실 떠오른 밤입니다. 둘은 바다표범 같기도 하고 인어 같기도 한 마리나가 달빛을 받으며 바다로 돌아가는 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실과 판타지의 세계가 오묘하게 결합한 신비로운 이야기 『마리나』는 ‘셀키(selkie) 전설’을 모티프로 만든 환상적인 이야기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를 선보였던 독일 작가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의 신작입니다.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는 생명의 근원이자 원천인 바다를 다시 이야기 속에 끌어들였어요. 도착의 장소이자 출발의 장소인 바다를  묵묵하게 헤엄쳐 가는 마리나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끝이 다시 시작인 이 이야기를… 마리나가 언젠가 찾게 될 좀 더 안온하고 평온한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 역시 어딘가에서 흘러온 이방인들이지요. 잠시 이곳에 머물다 가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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