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지 않고

아이가 학교 가는 길에서 매일 마주치는 한 노숙인 가족. 아줌마가 작은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지나치려면 아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저 아기를 안아서 따뜻한 곳으로 데려가 눕히고 토닥토닥해 주고 싶어서, 아기 엄마에게 따끈한 커피 한 잔 권하고 싶어서 말이죠.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 상황에 대해 엄마와 이야기 나눠 보기도 하지만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불공정, 가난, 완전히 비정상적인 사회, 지속적인 연대와 인류애… 아이가 속속들이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용어들로 뒤죽박죽인 세상,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는 사회니까요.

아직 이런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슬픕니다. 결국 아이는 딴 길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보이지 않으면 그나마 마음이 덜 불편할까 싶어서 말이죠. 불편한 상황에 힘들어 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해 줍니다.

우리가 다 책임질 수는 없어.
하지만 한 번의 미소, 한 번의 눈길,
아주 작은 행동이어도 괜찮아.
그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아.

엄마와 함께 가는 길에서 또 그 아기 엄마와 아기를 만납니다. 엄마는 그들에게 동전과 과자와 과일, 그리고 다정한 인사와 미소를 건넵니다. 아이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엄마 등 뒤에 숨은 채 그 모습을 바라봅니다.

아이는 그날 저녁 자신의 방을 대청소합니다. 그리고 인형 하나를 찾아냅니다. 아주 어렸을 때 자신을 위로해 주었던 작은 헝겊 인형입니다. 그날 밤 아이는 이 작은 인형과 함께 잤어요. 마지막으로요. 다음날 아이는 늘 가던 길로 학교에 갑니다. 돌아가지 않고요. 그리고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에게 인형을 내밉니다. 아기가 방그레 웃습니다.

아이는 오늘 우리 이웃에게 다정한 마음을 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결코 아닐 겁니다. 늘상 마주하는 평범한 이웃들에게도 똑같이 하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습니다. 한 번의 미소, 한 번의 눈길, 아주 작은 행동이어도 괜찮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그게 낫습니다.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은 바로 우리 이웃과 마주 보는 것입니다.


돌아가지 않고

돌아가지 않고

(원제: Sans détour)
그림 톰 오고마 | 글 스테파니 드마스 포티에 | 옮김 이정주 | 씨드북
(2023/09/07)

등교길에서 마주한 노숙인에 대한 아이의 감정은 불편함입니다. 그 불편함이 힘들어서 외면과 회피를 선택한 아이에게 엄마는 그들과 마주하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쳐 줍니다. 한 번의 미소와 눈길 같은 작은 행동일지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이죠.

중요한 것은 가난이나 여하한 이유로 소외되어 있는 이웃들 역시 우리 사회의 일원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 모두 이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그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관심을 가져야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찾아보게 될 테니까요.

어려운 현실에 처한 이웃을 보고 아파할 줄 아는 순수한 마음의 아이, 그런 아이에게 이웃을 향해 마음을 열고 연대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현명한 엄마를 통해 돌아가지 않고 마주하는 마음을 전하는 그림책 『돌아가지 않고』입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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