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정조의 행복한 행차

1795년, 정조의 행복한 행차
화성원행도를 따라가 보다

그림 이화 | 글 윤민용 | 봄볕
(2023/11/15)


1795년 2월 정조(정조 19년)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수원에 행차해 어머니의 회갑연과 함께 여러 행사를 개최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의궤와 기록화로 모두 기록해 놓도록 했어요. 이 기록은 ‘화성원행의궤도’‘화성능행도병’에 담겨있습니다. ‘화성원행의궤도’와 여덟 폭 병풍에 주요 행사를 그려 제작한 병풍 ‘화성능행도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있고, 당시의 모든 과정과 관련 문서 등을 모아 책으로 만든 ‘원행을묘정리의궤’는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795년, 정조의 행복한 행차』는 이 의궤와 기록화, 그 밖의 회화와 지도를 바탕으로 당시 행차 준비 과정과 행사 내용을 한국미술사 연구자인 윤민용 작가와 동양화와 진채를 공부하고 민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화 작가가 그림책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1795년, 정조의 행복한 행차

“아버님이 세상을 뜨신 지 어느새 30여 년, 2년 뒤면 돌아가신 아버님과 홀로 되신 어머님이 회갑이구나. 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 효도를 다하지 못하였고, 어머님 또한 아버님 묘소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어머님을 모시고 화성 현륭원을 참배하여 어머님을 위로하고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 싶구나. 이참에 화성에서 간소하게나마 어머님을 위한 회갑연을 정성을 다해 열어 드려야겠다.”

정조의 아버지는 비운의 왕세자였던 사도세자고 어머니는 혜경궁 홍씨입니다. 정조는 왕과 왕비가 되지 못한 부모님을 위해 여러 사업을 벌였는데 어머니 회갑 잔치를 위해 화성 원행을 결심한 것도 바로 이 효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화성 원행은 조선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왕이 어머니를 보시고 한양 궁궐 밖에 있는 선왕의 능을 찾아 떠난 행사였고, 또한 처음으로 도성 밖에서 연 궁중 잔치였다고 합니다. 1795년, 정조의 행복한 행차 이 그림책은 화성 원행의 전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정조가 화성 원행을 결심한 부분부터 마침내 시작된 7박 8일의 여정의 전 과정과 행사의 마무리까지를 마치 이야기하듯 차분하게 들려줍니다. 일기처럼 날짜별로 행사 과정을 정리한 글은 마치 누군가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정겨운 입말체로 쓰여있어요. 왕의 행차에 구경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며 소박하고 고즈넉하게 묘사한 풍경은 우리를 그 시절, 그 풍경 속으로 데려다 줍니다.

종로와 숭례문을 지나 배다리로 한강을 건너 노량행궁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나 시흥 행궁에서 하루 머문 뒤 안양을 지나 화성 행궁까지 1박 2일의 여정을 끝냅니다. 그리고 나흘간 화성 행궁에 머물며 화성 향교에서 참배하고 행사에 참여한 유생들과 화성 인근 지역 거주민들만 응시할 수 있는 특별 과거 시험을 실시합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을 참배하고 군사 훈련도 실시하죠. 그리고 이 행사의 주 목적인 어머니의 회갑 잔치를 성대하게 치릅니다.

이화 작가는 커다란 판형의 그림책 속에 당시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어요. 특히 색동저고리를 입은 무희들의 춤사위를 담아낸 잔치 장면은 이 그림책의 백미입니다. 단아하게 꾸민 잔칫상, 격식에 맞춘 옷을 갖춰 입고 잔치에 참가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 화려하면서도 품격 있고 아름답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에 대한 추모의 마음과 어머니에 대한 효심을 담아 정성스럽게 준비한 이 행사는 단순히 회갑연만을 연 것이 아니라 왕실의 경사를 백성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정조의 마음까지 담은 행사였다고 합니다. 가난한 백성을 위해 쌀과 죽을 나눠 주고 행사에서 남은 돈을 전국에 나눠주어 환곡으로 쓰게 했으며 노인들을 위한 양로연을 열었고 돌아가는 길에는 부역에 동원된 백성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세에 참고할 수 있게 행사의 전 과정을 상세히 정리한 의궤를 만들라는 지시도 잊지 않았지요. 덕분에 우린 이렇게 즐겁고 편하게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죠.

의궤와 기록화가 온전하게 전해진 덕분에, 우리는 국왕과 국모의 행차외 즐거운 잔치, 이를 구경하는 행복한 백성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단다.

‘조선 기록문화의 꽃’이라고 불리는 의궤에는 여타 다른 기록물에서는 보기 힘든 ‘그림’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글로는 온전히 설명하기 힘든 부분을 의궤는 그림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어요.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의 천연색으로 채색한 그림은 대상의 특징과 상황 등을 세밀하게 묘사해 당시 국가 행사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시각자료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 의궤 속 그림은 그래서 단순한 장식 용도의 그림이 아닌 의미와 내용을 담은 ‘읽는 그림’입니다. 현대 그림책의 그림이 하는 역할과 굉장히 유사하지요.

정조의 치밀한 계획 아래 이루어진 화성 원행은 이 행사의 도설(圖說)을 김홍도에게 제작하게 했다고 합니다. 원화를 자세히 보면 각각의 인물들이 취한 다양한 포즈나 해학적인 묘사들이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데 『1795년, 정조의 행복한 행차』에도 그 매력이 충분히 담겨있습니다. 페이지마다 다채롭게 변하는 풍경 속에 빼곡히 묘사된 수많은 사람들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옆으로 고개를 돌린 이, 마주 보고 웃고 있는 이, 지그시 눈 감고 있는 이, 무표정한 이 등등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하나하나 섬세하게 묘사된 인물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굉장합니다.

『1795년, 정조의 행복한 행차』를 통해 230여 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세요. 그렇게 그림책을 감상하고, 박물관에 전시된 원화를 감상해 보고 직접 수원 화성과 융건릉을 찾아가 그 시절 그때의 마음을 충분히 느껴보는 그런 행복한 시간 만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여행 갈 때 『1795년, 정조의 행복한 행차』 들고 가는 것 잊지 마시고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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