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요정이 나타나서 소원 딱 하나만 들어준다고 하면 넌 어떤 소원을 빌 거야?”
어린 시절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빌고 싶은 소원이야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많은데 ‘딱 하나만’이라는 말이 걸려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어요. 이런 대답을 하자니 뭔가 다른 부분이 아쉽고 저런 대답을 하자니 그렇게 딱 하나뿐인 걸 써버리는 것이 아깝고 해서 말이죠. 가만 생각해 보니 소원 요정에게 빌 소원 딱 하나를 아직까지도 정하지 못했네요. ^^
아스트리드가 엘리와 만난 것은 세상에 태어나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처음 집에 오던 날이었어요. 하얀 털이 북슬북슬한 엘리는 아스트리드의 첫 번째 친구였죠.
엘리와 아스트리드는 언제나 함께였어요. 아스트리드의 경호원이자 가장 좋아하는 베개, 숨바꼭질할 때 숨을 장소가 되기도 했던 반려견 엘리, 여섯 살이 되던 해 아스트리드는 엘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어느 날 아스트리드는 소원 목록을 만들기로 했어요.
“네가 더 늙기 전에 하면 좋을 것들을 모두 적고,
소원 목록에 적은 것들을 같이 다 해보는 거야.”
소원 목록에 담긴 소원을 함께하기 위해 아스트리드와 엘리의 하루하루는 바쁘게 돌아갑니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함께 책을 읽고 함께 영화관에 가고 반짝이는 별빛 아래 잠을 청하고…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쉴 새 없이 흘러갔어요.
더 이상 공원을 산책할 기운도 없게 된 엘리는 집에 머무르며 아스트리드와 함께한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립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있는 엘리에게 아스트리드가 더 해보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묻자 조용히 누워있던 엘리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거. 그냥 이렇게 너랑 있는 거
그것은 엘리의 소원 목록에 남은 마지막 소원이자 언제나 품고 있던 단 하나의 소원이기도 했답니다.
한 소녀의 탄생과 성장을 함께했던 반려견 엘리에게 찾아온 황혼의 빛, 마지막까지 함께 한 순간은 슬프지만 아름답게 빛납니다. 아스트리드는 엘리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준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이었어요.
소원이란 어쩌면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다정하게 함께 있을 수 있는 것,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잊지 않는 것,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 평범하지만 참 어려운 것, 마음이 나서고 행동이 따라야 하는 것. 굳이 소원 요정 없이도 마음만 있으면 이룰 수 있는 것들인데 우매한 나는 이제껏 살면서 작은 소원 하나도 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원
(Stay : A Girl, A Dog, A Bucket List)
글 케이트 클라이스 | 그림 새라 클라이스 | 옮김 서남희 | 재능교육
(발행 : 2018/02/26)
반려견 엘리를 향해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아스트리드와 달리 늘 곁에서 아스트리드를 지켜주는 엘리의 표정은 그저 덤덤해 보입니다. 소원 목록에 쓴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하는 동안에도 아스트리드는 쉴 새 없이 반려견 엘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어요. 더 늙기 전에 함께 미끄럼틀을 타보자는 아스트리드의 제안에 엘리는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꽤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쳐 주진 못하지만 자전거를 태워 줄 수 있다는 아스트리드의 제안에 아슬아슬 뒷자리에 올라앉은 엘리는 ‘차 타고 달리는 것보다 이게 더 좋다’고 생각하죠. 이렇게 그림책 속에는 아스트리드가 소원 목록에 할 일들을 해낼 때마다 반려견 엘리의 속 마음을 함께 보여주고 있어요.
엘리와의 소원 목록을 만들어 더 늦기 전에 차근차근 모든 추억을 쌓아 나가는 아스트리드의 사랑, 그 곁에서 묵묵히 함께 해내는 엘리의 모습은 감동스러우면서도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소중한 이를 대하는 마음은 늘 한결같습니다.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좋을 때의 모습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