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의 방

아빠는 타조야.
그 일에 대해서 들으려고도,
말하려고도 하지 않아.

내 아들이 내 딸에게 성폭행을 저질렀다? 아마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성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일단은 그럴리가 없다고 현실을 부정하겠죠. 그 다음은 이 사실이 집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부터 하게 될 겁니다. 어른들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어른들 역시 놀라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림 속 아빠는 가해자인 아들을 자신의 곁에 숨겨둔 채 침묵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누군가와 계속 통화해.
전화기 사이로 어른들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어.

하지만 이 문제는 더 이상 사생활이 아닙니다. 가족의 보호를 받으며 행복하게 자라야 할 가장 어린 딸아이가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겁에 질려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음을 부인하거나 덮어두려고 해선 안 됩니다. 가족끼리 그 안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피해자인 어린 딸에게도, 가해자인 아들 녀석에게도,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간절한 부모에게도 모두 도움이 필요합니다.

엄마가 용기를 냅니다. 주변에 전화를 걸고 도움을 청합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고,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돌봐야 해.
개가 강아지를 돌보고
소가 송아지를 돌보듯이 말이야.
도와주고 해결하는 것,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해결해 주는 것이
어른들의 해야 할 일이야.

정확히 무슨 일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쾌하고 무섭고 끔찍한 일을 당한 것만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선 안 될 것만 같습니다. 아이가 스스로를 어둠 속에 숨기려고 할 때 엄마 아빠가, 어른들이, 이 사회가 도와주고 해결하고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 어떤 피해자도 생겨나지 않도록, 우리 중 그 누구도 가해자가 되는 일이 없도록.


문어의 방

문어의 방

(원제 : Blekkspruten)
그로 달레 | 그림 스베인 뉘후스 | 옮김 신동규 | 위고
(발행 : 2021/11/05)

“문어의 방”은 친족 성폭력을 다룬 그림책입니다. 친족간에 성범죄가 어떻게 저질러지는지, 문제의 상황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 그 상황으로부터 피해자를 어떻게 구제하고 지켜줘야 하는지, 가해자에게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행복한 삶을 되돌려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생각 거리들을 담아냈습니다.

성폭력 범죄 중 약 10%가 친족 성범죄이며 그 피해자 중 약 70% 정도가 미성년자라고 합니다. 친족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는 아직 스스로를 지키거나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한 건지 제대로 인지하는 것 조차 힘들만큼 어린 경우가 많고, 친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서 사회로부터 숨겨진 채 끔찍한 폭력 현장에 피해자가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로 달레와 스베인 뉘후스 부부가 이 그림책을 만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어둠 속에 혼자 갇힌 채 떨고 있을 누군가가 도움을 청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자신의 삶을 구하고 행복한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말입니다.

두 작가에게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어른들이 이 책을 두려워하거나 꺼리지 않고 더 많은 아이들에게 읽어 주는 것 아닐까요? 두려움에 떨며 그 아이들 속에 숨어 있을지 모를 피해 어린이가 용기를 내서 그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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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및 가온빛 Twitter, Instagram 운영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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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팡세
라팡세
2021/12/04 11:50

자신의 일이라고 바꾸어서 생각해 봅시다.
어린 아이가 자신이라고… 아들만 보호하지 말고… 슬프고 아프지만, 이런 건 꼭, 알려고 노력은 해야지요. 세상을 좀 더 밝게 살아볼 아이들에게 문어처럼 깊은 곳에 숨게하지 맙시다. 그리고 문어놀이 같은 짓은 절대 용납하지 마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형.제 등등 주변사람들, 사람다운 사람으로 잘
보살펴주쟈구요. 꽃을 보살피자구요.
슬프고 두렵지만 꼭, 읽어보세요.

가온빛지기
Admin
가온빛지기(@editor)
2021/12/06 22:42
답글 to  라팡세

라팡세님 반갑습니다.
말씀처럼 주변의 상처 입은 이웃들 돌아볼 수 있는, 그 상처 보살펴 주고 그 아픔 함께 나누며 그들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지켜주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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