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맨
책표지 : 내인생의책
앵그리맨(원제 : Sinna Mann)

그로 달레 | 그림 스베인 니후스 | 옮김 황덕령 | 내인생의책


하루 18 건

한 달에 1 명

무엇과 관련된 숫자일까요? 하루 18건의 아동학대가 벌어지고 있고, 매월 아동학대로 인해 아동 1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냐구요? 안타깝지만 바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것도 최근 현황입니다. 신고된 건들을 집계한 것일테니 실제로는 더 많을 수 있겠죠.

아동학대 발생 현황
출처 :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어려서 단 한 번도 부모님께 맞아 본 적이 없는지라(제가 모범생이어서는 절대 아니고 저희 부모님 가정교육 철학 덕분이죠 ^^) 이 자료를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고된 건들을 집계한 자료이니 실제로는 더 많은 아동학대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더욱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동학대 또는 가정폭력을 다룬 그림책을 한 권 함께 보려고 합니다. 여러 영화제에서 14개의 상을 수상하면서 화제가 되었던 애니메이션 “Sinna Mann”의 원작 그림책 “앵그리맨”이 바로 그 책입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활동 중인 이 그림책의 작가들도 부부라고 합니다. 요즘 그림책 작가 부부를 자주 만나게 되는군요 ^^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입니다. 가족을 위해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돌아온 아빠, 수고하신 아빠를 위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 그리고 아빠처럼 되기를 꿈 꾸는 아이.

“우리 아빠”
아빠의 손은 아주 커요. 손가락 마디는 빨개요.
소년은 아빠를 보며 생각해요.
‘커서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돼야지.’

그런데, 소년의 아빠는 가끔씩 전혀 낯선 모습으로 돌변해 가족들을 두려움 속에 몰아 넣곤 합니다.

모든 게 깨질 것처럼 불안해 보여요.
거실이 유리로 만들어진 것 같아요.
집이 흔들려요.
거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아빠가 거실에 있고, 아무 말이 없어요.

불안에 떠는 아이는 집이 유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금방이라도 폭발해 버릴 것 같은 무거운 집안 분위기, 유리 조각 처럼 산산조각 날 것 같은 아이의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이 그림 속에 그대로 묻어나 있습니다. 깨질만한 것들을 모두 미리 치우는 엄마와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막막해지는 느낌입니다.

아빠 목소리 너머로 닫힌 문이 보여요.
그 문 뒤에는 어두운 지하실이 있어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지하실에 뭔가가 숨어 있어요.

분명 아빠예요.
그런데 아빠 목소리 너머 지하실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어요.
아빠 몸 속의 계단을 타고 누가 올라오고 있어요.

‘앵그리맨’이 아빠를 빼앗아 갔어요.
‘앵그리맨’이 아빠를 가둬 버렸어요.
‘앵그리맨’은 담을 뚫고, 벽을 뚫고, 엄마를 뚫고 나가요.

아이는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하는 아빠를 보며 아빠 속에서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오는거라고 생각하나봅니다. 앵그리맨이 나타나서 아빠를 빼앗아 가버릴 때면 아이는 제 방에 숨어서 잔뜩 공포에 질린 채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합니다.

‘앵그리맨’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벌어진 일로 인한 죄책감에 허우적거리는 아빠와 겁에 질린 가족들뿐입니다. 엄마는 아빠에게 다가가 다친 손을 치료하고, 아이는 아빠를 꼬옥 안아줍니다.

이런 일이 반복될 수록 아이의 마음은 아빠에게서 점점 더 멀어집니다. 아무리 열어도 끝이 없는 문 그림은 아마도 언제 ‘앵그리맨’으로 변할지 모르는 아빠에 대한 두려움과 그 곳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아이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표현한 거겠죠. 지나가던 길에서 맞닥뜨린 ‘앵그리맨’이라면 그 자리를 얼른 피하면 그만이지만, 이 아이를 무섭게 하는 폭력은 아이의 삶의 전부인 가족 안에서 벌어지고 있기에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습니다.

아빠가 선물을 사왔지만 아이는 아빠에게 선뜻 다가갈 수 없습니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이 숨막힐 것만 같은 공간 속에서 아이는 그저 벗어나고만 싶습니다.

결국 아이는 임금님에게 편지를 씁니다.

존경하는 임금님,

아빠가 때립니다.
제 잘못인가요?

보이 올림 

소년의 편지를 받은 임금님이 아빠를 데려갑니다. 아빠는 임금님과 함께 궁전에서 살며 자신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앵그리맨’을 다루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소년은 기다립니다. 아빠가 다시 돌아 오기를. 자신이 믿고 그 품에 안길 수 있는 아빠가 되어서 돌아 오기를 말입니다.

나무에 올라, 나뭇가지에서 믿고 뛰어내릴 거예요.
그 아래엔 누가 있을 테니까요.
믿을 수 있는 사람,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요.
바로 아빠예요.
아빠는 뛰어내리는 나를 받아 줄 거예요.
아빠의 아들을 받아 줄 거예요.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그림책 “앵그리맨”은 부부가 만들었습니다. 아내인 그로 달레는 글을 쓰고, 남편 스베인 니후스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로 달레가 시인으로 등단한 작가여서 그런지 글의 흐름이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아이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부분들은 어휘 하나 하나를 골라내는데 고민하고 또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다. 스베인 니후스의 그림은 불안, 공포, 좌절, 연민 등의 무거운 감정들을 그림책 곳곳에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심리 상태까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로 달레와 스베인 니후스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런 것들 아닐까요?

첫번째, 아동학대에 노출된 아이들은 자기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두번째,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은 절대로 당사자들끼리 해결 할 수 없다.

세번째,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자신에게 치료가 필요함을 인정하고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야만 변화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참고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는 현재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 캠페인‘으로 서명운동을 진행중입니다. 아동학대에 대한 내용들을 조금 더 읽어 보시고 필요하다고 판단 되시는 분들은 서명운동에 참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업데이트 : 위 캠페인은 2014.12.31 부로 종료되었습니다.(수정일 : 201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