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생전에 책을 좋아하셨습니다. 저도 책을 좋아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내를 만났고, 딸아이도 책을 좋아합니다. 책은 아버지가 준 선물입니다.

연애할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다같이 그림 보러, 음악 들으러 다니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쯤 미술관을 데려갔습니다. 대여섯 살쯤 말귀를 제대로 알아 듣고 공연장에서 조용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면서부터는 연주회도 들으러 가고 발레나 뮤지컬도 보러갔죠. 어떤 날은 지루해 해서 끝날 때까지 간신히 버틴 적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숨 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공연에 푹 빠져 있는 날도 있었습니다.

성인이 된 딸아이는 그림이나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에 관심이 많고 정기적으로 즐기지 못하면 금단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껏 금단 현상을 한 번도 겪지 않은 걸 보면 제가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찾았던 건 연애가 목적이었거나 아이에게 좋은 경험을 선물하기 위해서였나 봅니다(아내와 딸은 재미있게 보는데 저는 대부분 졸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내게 책만 선물했지만, 저는 딸아이에게 책과 예술을 선물했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딸아이가 저에게 예술을 선물한 것 같기도 합니다.)

예술을 감상하는데 굳이 전문성을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만 있으면 됩니다. 사실 시간을 낼 수만 있다면 마음의 여유는 굳이 미리 챙겨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림과 그림 사이를 오가며 한적하게 걷다 보면 마음의 여유는 절로 생기니까요. 제 경우에는 미술관을 거닐며 느끼는 이 여유가 참 좋더라구요.

그림 봐도 잘 모르겠다구요?

선물

관람객들은 작품에 완전히 집중한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려는 것을 모두가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한답니다. 그리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관람객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을 이해하려고 한답니다. 그래서 예술은 거울 같아요. 예술을 바라보는 사람을 비추니까요.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전부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가 틀린 것은 결코 아니라고 그림책 “선물”의 작가 페이지 추가 다독여주네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을 이해하려고 해보세요. 이해하려고 하는 그 과정 조차도 부담스럽다면 그냥 편하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돌아보기만 해도 됩니다. 예술 감상 별 것 아니랍니다!

예술은 나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예술 감상은 작품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림책 “선물”. 이미 예술 감상의 즐거움을 아는 분들 말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빠에게 미술관 입장권을 받고 시무룩해진 그림책 속 아이 같은 상태인 분들에게 드리는 작가의 선물입니다.


선물

선물

(Le Cadeau)
글/그림 페이지 추 | 옮김 이정주 | 우리학교

(2021/11/10)

“선물”은 예술을 감상하고 즐기는 법을 독특한 화법으로 전해주는 그림책입니다. ‘비밀스러운 미술관’이라는 부제처럼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숨겨진 은밀하면서도 흥미진진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보여주며 작가는 말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연 다음 미술관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거라고 말입니다.

그림책 “선물”을 즐기는 방법 역시 미술관을 즐기는 것과 비슷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연 다음 그림 한 장 한 장 들여다 보세요. 이 그림책 속 각 페이지마다 숨겨진 은밀한 상징들의 뜻을 하나씩 찾아낼 때마다 여러분들은 미술관과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그게 바로 작가가 여러분들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그림책을 찬찬히 다 읽은 다음 아래 내용들 한 번 살펴 보면서 여러분들 나름대로 해석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첫 장면에서 아이 가슴에 붙어 있던 매미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중간에 사라졌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나타나는 것은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아빠가 선물한 미술관 입장권에는 ‘OPEN YOUR EYES’라고 쓰여 있습니다. 매표소 직원은 이 입장권을 받고 활짝 웃으면서 ‘OPEN YOUR MIND’라고 쓰여 있는 티켓으로 바꿔줍니다. 지금부터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만나게 되건 마음을 활짝 열고 보라는 뜻일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 물품 보관소는 관람에 방해가 되는 물건을 맡기는 곳이라고 설명한 후 무엇을 맡기겠냐고 직원이 묻자 방문객은 ‘조상님이 물려주신 오래된 구급상자요.’ 라고 대답합니다. 이 엉뚱한 대답 속에 담긴 의미는 무얼까요? 내 마음에 배어 있는 낡은 사고방식과 고정관념들을 모두 벗어 던지란 뜻일까요?
  • 기계실 장면을 보며 환풍과 습도 조절 등을 하는 곳이려니 했는데 ‘상상력 기계는 고장 나면 안 돼. 그러면 미술관은 존재할 수 없을 거야.’ 라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상상력 기계가 없으면 미술관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술이 없다면 삶은 너무 건조하고 재미 없을 거란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 1990년 12월 24일 오후 12시 40분에 시작된 이야기는 계속해서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집니다. 그런데 오후 5시 10분 다음 장면은 다시 오후 2시 51분으로 되돌아가 있습니다. 초반부의 오후 2시 49분 장면과 몇 군데 빼고는 거의 똑같은 그림입니다. 여지껏 미술관을 둘러본 줄로만 알았는데 아버지가 ‘자, 전시회를 보러 가자!’ 라는 아빠의 말에 시간을 확인해보니 그렇더라구요. 이렇게 시간이 뒤엉킨 채 배열된 건 또 뭘 뜻하는 걸까요?
  • 마지막 장면에 어린 시절 아빠의 평범한 차를 탈 때면 자신의 드림카였던 ‘블루 원더’를 타고 있다고 상상하곤 했다는 작가의 말이 실려 있습니다(사실 이 장면에 작가의 말이 들어가 있는 게 맞는 건지 좀 의심이 갑니다. 출판사가 내지 추가되는 걸 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블루 원더’라는 트럭이 실제로 있을까 싶어 찾아보니 이렇게 생겼더군요(아래 그림 참조). 벤츠에서 1954년에 출시한 슈퍼카 수송용 트럭이라고 합니다.
1954 Mercedes Benz Blue Wonder
사진 출처 : Car_Revs_Daily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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