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겨울밤에

아무리 지치더라도
가는 길에 많은 것을 잃는다 해도
알 수 없다 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더더욱 깊은 물에 들어가야 한다 해도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바로 그때…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때
희망이 찾아와 너를 데려다줄 거야…

온종일 따스한 온기로 함께해 주었던 해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저 멀리 저물어갑니다. 아이는 해를 그냥 떠나 보낼 수 없습니다. 해를 쫓아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넙니다. 아득히 멀리 저물어가는 해를 향해 아이는 손을 뻗습니다. 손길의 절박함은 수평선 너머까지 뻗어 가지만 그렇다고 저무는 해를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절박함의 끝은 상실의 아픔으로 이어집니다. 빛을 잃은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 채워지고 모든 것을 잃은 듯 텅 비어져 버린 아이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맙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모든 것을 잃은 상실의 끝에서 아이에게 가만히 다가오는 한 줄기 빛. 그 빛이 살며시 어둠을 열고 아이를 인도합니다. 그 빛에 기대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수록 어둠이 한 발짝 한 발짝 물러나며 그 자리가 다시 빛으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다시 얼굴을 드러낸 해를 따라 아이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침이면 날을 밝히고 중천에 떠올라 세상을 따뜻하게 데우고 난 후 지평선 너머로 저무는 것은 해의 일상입니다. 해가 자리를 비운 뒤 내린 어둠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그 어둠의 끝에서 다시 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기다림이지 상실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 갇히기 싫어 저무는 해를 막아섰던 그림책 속 아이. 빛을 몰고 와 준 코끼리 덕분에 이제 아이는 알고 있습니다. 밤이 아무리 길다 하더라도 결국 빛은 다시 밝아 온다는 것을. ‘어두운 겨울밤에도 빛은 밝아 오고’라는 말로 그림책 첫머리를 시작한 것은 이 책을 보는 우리가 혹시나 두려움에 빠지진 않을까 염려하는 작가의 따뜻한 배려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만난 “어두운 겨울밤에”는 끝없는 어둠의 터널에 갇혀버린 대한민국을 위로하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하는 그림책 아닐까 싶습니다. 기나긴 겨울밤에도 빛은 밝아 옵니다.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때, 바로 그때 희망이 찾아와 우리를 데려다줄 겁니다. 그림책 속 아이를 일으켜 세운 건 다정한 코끼리였지만 지금 우리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 그리고 이웃과의 연대입니다.

빛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둠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어두운 겨울밤에

어두운 겨울밤에

(원제: Out of a Dark Winter’s Night)
글/그림 플로라 맥도넬 | 옮김 이지원 | 봄볕
(2023/01/05)

“어두운 겨울밤에”는 작가 플로라 맥도넬이 우울과 불안 증세를 앓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그림책입니다. 해가 저문 이후 어둠으로 가득 채워진 세상을 그려낸 그림책이지만 어둠 속에서 아이는 단 한 순간도 혼자인 적이 없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늘 아이를 지켜봐 주는 존재들 덕분에 어둠을 이야기하지만 그림책은 따스하기만 합니다.

코끼리와 함께 밝은 웃음 머금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코끼리들의 여왕, 수잔나에게 감사하며’라는 작가의 헌사 속 수잔나는 과연 누구일지, 왜 하필 코끼리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 마그마의 ‘해야’란 노래를 떠올리셨다면… 노래 제목 클릭해서 오랜만에 한 번 들어보세요. 😅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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