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진 옛날이야기, 또는 동화나 우화를 자신만의 그림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를 하는 작가들이 종종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가는 제리 핑크니 아닐까 싶습니다. 칼데콧 상을 받은 『미운 오리 새끼』, 『사자와 생쥐』, 그리고 『토끼와 거북이』등을 자신만의 그림과 철학으로 재창조한 작가로 유명하죠.

10월에 출간된 그림책들 중에서도 원작을 뛰어넘는 멋진 작품들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를 새롭게 그린 『깊은 우물에 개구리가』, ‘시골쥐 도시쥐’ 이야기를 현대인의 정서에 맞게 재해석한 『시골 쥐 티포와 도시 쥐 타포』, 노르웨이의 옛이야기를 재치있게 각색한 『트롤과 염소 삼 형제』입니다.


깊은 우물에 개구리가

깊은 우물에 개구리가

(원제: Au fond du puits)
그림 루이즈 콜레 | 글 실뱅 알지알 | 옮김 정혜경 | 미래엔아이세움
(2023/10/06)

깊은 우물에 개구리가

“바다라는 게 내 우물보다 크다고요?
여기보다 더 깊고 훨씬 넓다는 거예요?”

자신의 우물을 찾아온 거북이로부터 전해 들은 우물 밖 세상과 바다에 대한 이야기들은 개구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자신의 우물보다 더 크고 더 좋은 곳이 있다니… 지금껏 느꼈던 충만한 삶이 송두리채 흔들리는 듯 했겠죠. 이제 선택은 개구리의 몫입니다. 개구리는 우물 안에 남을까요? 아니면 우물 너머 더 큰 세상, 더 넓은 바다를 향해 높이 뛰어 오를까요? 개구리의 눈망을을 보며 여러분은 개구리가 어떤 선택을 하길 바라나요?

그런데 루이즈 콜레가 그려낸 우물 안 세상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이 세상에 내 우물보다 크고 좋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라며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려는 개구리의 태도에 100% 공감할 만큼 말이죠. 덕분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에 대해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에 걸맞지 않는 것에 욕심 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평범함을 ‘현실 안주’로 낙인 찍었던 건 아닐까요?

‘어쩜 개구리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저렇게 비좁은 곳에서 살 수 있는 걸까?’ 라고 생각하는 거북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우물 밖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까지가 타인이 지켜야 할 선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자신이 속한 우물 밖 세상만이 정답이고 우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세상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라는 가치 판단은 어디까지나 거북의 입장일 뿐입니다. 우물 안에서 살아보지도 않고 그저 잠시 내려다 보고는 바깥 세상만 못한 곳이라 판단하고 그 안의 삶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야말로 하찮은 생각 아닐런지…

매혹적인 그림으로 우물 안 개구리의 삶과 우물 밖 세상을 꿈꾸는 이들 모두를 응원하는 그림책 『깊은 우물에 개구리가』입니다.


시골 쥐 티포와 도시 쥐 타포

시골 쥐 티포와 도시 쥐 타포

(원제: Topo Tipo E Topo Tapo)
그림 이레네 볼피아노 | 글 로베르토 피우미니 | 옮김 김현주 | 민트래빗
(2023/09/27)

섬세한 연필 그림이 인상적인 그림책 『시골 쥐 티포와 도시 쥐 타포』. 이 그림책이 그동안 나온 수많은 ‘시골 쥐와 도시 쥐’ 이야기들과 차별되는 건 이름입니다. 그냥 ‘시골 쥐’가 아니라 ‘티포’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도시 쥐’ 역시 ‘타포’라는 이름이 있고요. 두 작가는 왜 쥐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요?

‘시골 쥐와 도시 쥐’ 이야기에서 ‘불안한 풍요와 편안한 빈곤’을 통해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빈곤해도 편안한게 낫지 않니?’입니다. ‘가난하더라도 마음 편하게 사는 너희들의 삶이 우리처럼 부자지만 골치 아픈 일 가득한 삶보다 훨씬 좋은 거야!’라며 돈과 권력을 거머쥔 자들이 서민들을 세뇌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린…

티포와 타포, 이름이 있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우리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임을 잊지 말라는 뜻 아닐까요? 우린 그저 수많은 누구들 중 하나일뿐인 누구가 아니라 티포와 타포라고 말입니다.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삶의 주체들이라고 말입니다.

시골 쥐 티포와 도시 쥐 타포

이름이 있는 또 한 가지 이유는 티포는 티포대로, 타포는 타포대로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뿐 더 나은 삶 더 못한 삶은 없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시골 쥐 티포와 도시 쥐 타포』는 다른 ‘시골 쥐와 도시 쥐’ 이야기들과 달리 도시 쥐를 피폐한 모습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시골 쥐 티포가 지쳐서 도시를 떠나는 순간까지도 도시 쥐 타포는 그냥 타포의 모습을 유지합니다. 거듭되는 위기 속에서도 담담하거나 씩씩하거나 편안한 모습을 잃지 않습니다. 한 가닥 줄에 매달린 채 과일을 한 입 크게 베어 무는 타포의 모습에서 불안하거나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각박한 도시에서의 삶을 체험함으로써 시골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는 기존의 이야기 틀에서 벗어나 시골 쥐와 도시 쥐 각각 자신만의 방식과 취향으로 각자의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과 이웃의 삶 모두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책 『시골 쥐 티포와 도시 쥐 타포』입니다.

※ 함께 읽어보세요 : 『시골 쥐의 서울 구경』


트롤과 염소 삼 형제

트롤과 염소 삼 형제

(원제: The Three Billy Goats Gruff)
그림 존 클라센 | 글 맥 바넷 | 옮김 이순영 | 북극곰
(2023/10/19)

이 그림책은 노르웨이에서 전해지는 옛날이야기가 원작입니다. 맥 바넷의 재치 넘치는 대화체 중심의 이야기 전개,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 클라센의 그림이 어우러져 아주 오래된 옛이야기가 흥미진진한 그림책 한 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저처럼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내용은 이렇습니다. 다리 건너 언덕에 염소가 좋아하는 풀들이 가득합니다. 문제는 다리 아래 무시무시한 트롤이 살고 있다는 사실. 막내 염소가 다리를 건너려다 트롤에게 잡히자 자기보다는 저 뒤에 오는 형이 훨씬 더 살이 많고 맛도 좋다는 정보를 흘리고는 풀려납니다. 뒤따라 오던 둘째 염소도 트롤에게 잡힌 후 막내와 같은 방법으로 트롤에게서 탈출합니다. 그리고 맏형 염소가 나타나는데….

트롤과 염소 삼 형제

“와… 넌 정말 크구나…”

기존의 이야기보다 훨씬 더 거대한 맏형 염소와 맞닥뜨린 트롤. 트롤은 비록 주눅은 들었을지언정 자신의 본능과 삶의 방식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내, 내가 너, 너를 잡아먹어 버릴 테다!

그 다음 장면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옛이야기는 맏형 염소가 트롤을 물리치고 염소 삼 형제는 맛있게 풀을 먹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그냥 이렇게 이야기를 끝낸다면 존 클라센과 맥 바넷을 그림책계의 환상의 콤비라고 부르지 않겠죠.

그 언덕에 가면 염소 삼 형제를 만날 수 있어.
너희도 거기 가면 꼭 인사해!
하지만 그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바로 다리를 건너는 거지.

아직도 그 언덕에 가면 맘껏 풀을 뜯어 먹으며 쑥쑥 자라고 있는 염소 삼 형제를 만날 수 있대요. 그곳에 가게 되면 꼭 인사하라면서 한 마디를 더 붙입니다. 염소를 만나려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바로 다리를 건너는 거라고 말입니다. 염소 삼 형제를 만나러 그 다리를 건널 때 다리 밑엔 여전히 트롤이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존 클라센과 맥 바넷은 트롤에게 고용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언덕에 찾아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트롤은 배불리 먹을 수 있고, 그렇게 매일매일 열심히 배를 채우다 보면 맏형 염소보다 더 큰 트롤이 되어 염소 삼 형제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교훈 따위 필요 없다, 재미가 최고다! 라고 말하는 그림책 『트롤과 염소 삼 형제』입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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