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형이야
책표지 : Daum 책
거미와 파리

(원제 : The Spider and The Fly)
메리 호위트 | 그림 토니 디터리지 | 옮김 장경렬 | 열린어린이

※ 2003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흑백의 독특한 느낌이 드는 그림책을 펼치면 음산한 느낌이 흐르는 달 밤, 정적에 휩싸인 빅토리아풍의 커다란 대저택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 장을 넘기면 마치 카메라가 대저택을 줌인(zoom-in)해서 들어가는 것처럼 대저택 옥탑의 동그란 창문으로 시선이 옮겨집니다. 창문 안쪽 오래된 축음기와 희미한 거미줄 , 저택 모형, 그리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며 무표정하게 인형이 앉아있는 자그마한 공간을 배경으로 오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거미와 파리

“파리 아가씨, 내 응접실로 모셔도 될까?”
거미가 파리에게 말했습니다.

정중한 자세로 파리를 대하는 거미는 자신의 응접실에 가면 재미난 것들이 아주아주 많다고 얘기했지만 어쩐지 그의 능글능글한 웃음 뒤에는 무언가 믿지 못할 일이 잔뜩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거미와 파리

꽃양산에 여배우의 상징인 클로시 모자, 앙증맞은 핸드백, 여행 가방을 들고 있는 어여쁜 파리는 거미의 유혹을 단번에 물리쳤어요.

“아, 싫어 싫어요.” 파리가 말했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어요.
층계를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 이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거미와 파리

교활한 거미는 쉬지않고 파리를 유혹했어요. 예쁜 커튼이 드리운 편안한 침대와 맛난 것들로 가득한 자신의 식품 보관 창고, 맛있는 요리 등을 이야기하며 자꾸만 자신의 집 깊숙한 곳까지 파리를 끌고 들어왔죠. 하지만 파리는 이미 들었던 소문을 떠올리며 정신 바짝 차리고 거미의 유혹을 물리칩니다.

거미와 파리

포근하고 안락한 침대도, 맛난 음식들의 달콤한 유혹까지도 물리친 파리를 향해 거미는 마지막 수단을 동원합니다. 자신의 응접실에 가면 망사 같은 날개와 찬란하게 빛나는 파리의 고운 모습을 비춰 줄 거울이 하나 있다고 말이죠.

거미가 파리를 유혹하는 동안 불귀의 객이 된 귀뚜라미와 나비의 영혼이 희뿌옇고 반투명한 모습으로 이들 주변을 맴돌며 파리에게 무언의 경고를 하죠.

이제껏 호기심과 경계심을 섞은 눈길을 보이던 파리는 왠지 자신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치는 거울을 보고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거미의 마지막 유혹에도 파리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 거미의 집을 떠났어요.

거미와 파리

하지만 거미는 실망하지 않았어요. 자신의 골방으로 되돌아가 비좁은 구석에 솜씨 좋게 거미줄을 치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상까지 차려놓고는 문 밖으로 나와 즐겁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리, 이리 오세요. 진줏빛 나는 은 날개를 가진 파리 아가씨!
자줏빛 도는 초록 옷을 입고 멋지게 머리를 장식한 파리 아가씨,
아가씨 눈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건만, 내 눈은 납덩이처럼 칙칙하다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지붕 꼭대기에서 노래를 부르는 거미의 모습이 마치 뮤지컬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네요. 거미도 눈치챈 것일까요? 파리가 떠나기 전 경계심이 풀린 동그란 눈에 입가에는 살짝 미소까지 띄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거미와 파리

거미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어요. 멍청한 파리는 거짓 칭찬에 속아 거미에게 되돌아 왔거든요. 찬란하게 빛나는 자신의 눈과 자줏빛 도는 초록 옷, 멋진 머리 장식만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날갯짓을 하며 파리는 거미에게 다가갔어요.

거미와 파리의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림책 한 면에 그려진 거미줄도 점점 복잡하게 얽혀갑니다. 파리를 잡아먹기 위해 온갖 감미로운 말을 던져대는 거미의 교활한 마음처럼 말이죠.

거미와 파리

마침내 사납게 파리를 낚아챈 거미는 침침한 골방에 파리를 가두었어요. 거미줄에 돌돌 말린 채 겁에 질린 파리 아가씨, 칼과 포크를 거머쥔 야비한 거미의 그림자. 이제까지 다른 벌레들이 그랬듯이 파리 역시 거미의 침침한 골방에서 다시 나올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거미와 파리

자신의 고운 모습을 비춰 줄 거울 대신 파리가 본 것은 자신의 묘비였어요. 묘비에는 이런 문구가 써있었죠.

사악한 아첨꾼의 말에는
귀와 눈을 닫을지어다.
그리고 이 거미와 파리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을지어다.

고이 잠드소서

“거미와 파리”는 2003년 칼데콧 명예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한편의 흑백 영화처럼 혹은 웅장한 뮤지컬처럼 느껴지는 이 이야기는 1829년 영국의 여류 시인인 메리 호위트가 쓴 시에 일러스트레이터 토니 디터리지가 멋진 그림을 더하여 만들었습니다. 토니 디터리지는 1920년대  헐리우드의 고전 공포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이 그림책의 분위기를 완성 시켰다고 합니다. 지나친 칭찬과 달콤한 유혹을 조심하라는 뻔한 교훈도 이렇게 들으니 색다르고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나요?

식사를 마친 거미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한껏 여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우리에게 들려주는 충고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습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조심하세요. 세상에는 거미만이 사냥꾼이 아니고 벌레만이 희생자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지요. 이 책에 나온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일깨워 준 것을 마음 깊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까지도 나쁜 마음을 가진 어떤 사람의 그물에 걸려들어 허우적거릴 수도 있으니까요.

거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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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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