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 목욕탕

문어 목욕탕

문어 목욕탕

글/그림 최민지 | 노란상상
(발행 : 2018/08/24)


바다로 8-8번지에 문어 목욕탕이 새로 생겼습니다. 오픈 이벤트로 전단지를 가져오면 먹물 우유를 주고 SNS에 후기를 작성하면 추첨해서 때를 밀어준다고 해요. 24시간 오픈되어있는데 딱 하루 일요일은 쉰다는 묵구가 적혀있는 문어 목욕탕 전단지를 누군가 손에 꼭 쥐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에 새로운 목욕탕이 생겼다.
짝꿍 민지는 어제 엄마랑 다녀왔다고 했다.
나는 목욕탕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문어 목욕탕”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재미난 상상을 하며 그림책을 펼쳤는데 목욕탕 가방을 뒤로 숨긴 아이의 독백은 참 쓸쓸합니다.

난 엄마가 없으니까

문어 목욕탕

목욕탕 앞에서 아빠와 아이의 실갱이가 벌어지고 있어요. 다 커서 남탕은 정말 못 간다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남탕으로 향하려는 아빠가 하는 말,

나도 다 커서 여탕은 절대 못 가!

여탕 문 입구에는 ‘5세 이상 남자 출입’금지라 붙어있고 남탕 문 입구에는 ‘5세 이상 여자 출입 금지’라 붙어있으니 아이도 아빠도 함께 목욕할 수 없어요.

결국 아이는 목욕탕에 혼자 가보기로 마음 먹었어요.

처음으로 목욕탕에 들어선 아이 눈에 자신만 빼고 전부 즐거워보입니다. 그림책 왼쪽은 하얀 공간 위에 수건을 두른 아이만 달랑 혼자 서있고 오른쪽 공간은 윙 바람을 가르며 머리를 말리는 사람, 체중계에 올라서 좌절하는 사람, 희안한 팩을 얼굴에 쓰고 있는 사람 등등 목욕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으로 가득차 있어 혼자서 의기소침한 아이가 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재미납니다.

문어 목욕탕

숨고 싶은 마음에 아이는 눈 앞에 보이는 탕 안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어요. 풍덩!!!!!!!!(느낌표가 8개나 찍힌 커다란 소리)를 내며 탕으로 뛰어든 아이, 발목에 채워놓은 핑크색 열쇠줄이 귀엽습니다. ^^ 목욕탕하면 하얗고 깨끗한 이미지만 생각했는데 문어 목욕탕이라더니 욕탕을 가득 채운 물은 문어 먹물이라도 되는지 온통 검정색이에요.

혼자라 쑥스럽고 어색한 마음에 뛰어든 욕탕에서 만난 것은 흐물텅 흐물텅 다리를 가진 진짜 문어였어요. 놀란 아이 눈이 동그래졌는데 문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아이에게 먹물을 내뿜고는 탕 안으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갔죠. 문어를 꼭 안고 조금씩 깊게 들어가고 들어가보니……

문어 목욕탕

끝도 없이 펼쳐지는 신비한 세상, 아이가 뛰어든 먹물 욕탕은 아이를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 준 문과 같은 곳입니다. 까만 바닷속 세상에서 저마다 즐겁게 놀고 있는 바다 생물들, 그 풍경이 너무나 놀랍고 신기한 아이는 즐거운 함박 웃음을 짓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목욕탕, 즐겁고 신나기만 할 수는 없죠. 장난스런 표정으로 도망치려는 아이를 잡아챈 문어들이 아이의 때를 밀고 머리를 감기고 찬물을 쏟아 부으면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문어가 목욕탕에 있으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군요. 여덟개의 다리에 달린 초록 때밀이도 그렇고 입으로 물을 쏘아주면 거품을 헹굴 때도 편리하겠죠.^^ 까만 먹물 바다에서 분홍색 문어들이 아이를 씻기는 장면은 익살스러우면서도 참 즐거워 보여요. 나도 가보고 싶다, 문어 목욕탕!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요.

문어 목욕탕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잘 헹구고 먹물 우유를 마시며 목욕탕을 나가는 아이 얼굴은 한층 밝아져 있습니다. 문어와의 작별 인사도 잊지 않았죠. 그와중에 아이 뒤로 펼쳐지는 풍경이 웃음을 선사합니다. 작은 거울에 비친 국수가락같은 때를 쏟아내는 아주머니의 고통스런 표정, 때를 미는 이의 날카로운 눈빛, 여기저기 흩어진 샴푸통들이 산만한 목욕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목욕탕을 빠져나온 아이의 머리는 찰랑찰랑, 들어갈 때 더벅머리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보는 이의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것만 같아요. 아이 역시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커다랗게 쏟아냅니다.

아, 시원해!

집에서 하는 목욕과는 차원이 다른 목욕탕에서의 목욕 느낌은 늘 ‘아, 시원해!’, ‘와, 개운해!’였습니다. 그림책을 다 읽은 순간 느끼는 감정도 그렇습니다. 내가 목욕한 것도 아닌데 ‘아, 시원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거든요.

세상에 나 혼자라고 느끼는 이들에게 함께하자 손 내미는 문어, 여덟 개의 문어다리는 구석구석 아프고 여린 이들 마음에 쌓인 때를 시원하게 밀어줍니다. 어색함은 잠시뿐 함께하는 순간 이렇게나 즐겁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죠. 표지 그림에 목욕탕 앞에서 혼자 머뭇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문어가 몰래 훔쳐보고 있어요. 저 문턱을 넘는 용기를 가진 이에게 언제라도 손 내밀어 주겠다는 듯이 말이죠. 문턱을 넘어서는 것은 우리가 첫 번째 가져야 할 용기겠죠.

지치고 외로울 때 세상을 향해 주저하지 말고 먼저 손 내밀어 보세요. 따스하게 잡아줄 손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역시 다른 이의 손을 잡아 주세요. 소외되고 외로운 손들을 향해…… “문어 목욕탕”은 바로 그런 그림책입니다.


※ 재미있는 목욕탕 이야기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2 Replies to “문어 목욕탕

  1. 울 아부지 건강 비결은 목욕탕이라고 일주일에 6번씩 다니시고 집에 티브이가 없어서 ㅎ 목욕탕에서 축구보시고 (이기면 짜장면 쏘고 오시고) 이발도 하시고 이제는 손주 데리고 목욕 다니시네요! 이 책은 꼭 아부지께 선물해드려야겠어요!!

    1. 오호, 아버님 독특하고 멋진 건강 비결 갖고 계시네요.
      올 여름 목욕탕에서 짜장면 많이 쏘셨겠어요.(아시안 게임 때문에…^^)
      목욕탕, 어느샌가 잊혀진지 오랜데 그래도 목욕탕에서 해야 진짜 목욕한 것 같은 그 기분은 잊혀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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