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원제 : Freedom over me)
글/그림 애슐리 브라이언 | 옮김 원지인 | 보물창고
(발행 : 2019/04/25)

※ 2017 보스턴 글로브 혼북상 수상작
※ 2017 뉴베리 명예상 수상작


얼마 전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TV쇼 진품명품’을 보게 되었는데 마침 나오는 내용이 흥미로워서 해당 에피소드를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한지를 옆으로 잇고 또 이어서 4~6미터는 훨씬 넘을 듯한 문서 하나. 거기에 빼곡히 적힌 내용들과 맨 마지막에 그 내용에 합의한 사람들의 서명이 있는데 조선 시대 유명한 학자의 후손들의 ‘분재기(分財記)’였습니다.

분재기란 재산의 상속과 분배에 관한 문서인데 그 길고 긴 문서의 내용에는 노비들에 대한 것도 있습니다. 마치 주머니에 든 구슬 한 무더기를 공평하게 나누듯 형제자매들에게 각각 몇 명씩 노비들을 나눠 주기로 합의한 내용들. 그 시절엔 그랬겠구나 싶으면서도 함께이길 원하는 부부나 가족들이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단지 숫자 하나로 여겨지며 뿔뿔이 흩어졌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갑갑해집니다. 똑같은 사람들인데 그들은 도대체 어떤 기준과 가치관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걸까요?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착취가 짧은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에도 이와 비슷한 성격의 문서가 있었나 봅니다. 흑인 노예들을 그저 ‘젊은 남자’, ‘남자’, ‘젊은 여자’, ‘여자’와 같이 분류한 채 가격을 매긴 1800년대 한 농장의 재산 감정서가 바로 그것인데 오늘 소개할 그림책 “자유 자유 자유”는 이 문서에 나온 흑인 노예들 한 명 한 명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돌려주고 그들의 가슴에 담긴 꿈을 되찾아주는 그림책입니다.

자유 자유 자유

농장주인 남편이 죽자 페어차일즈가의 미망인은 농장을 처분하기 위해 농장의 가치를 감정받기로 합니다. 농장의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흑인 노예들입니다.

남편은 노예들에게
목공, 재봉, 도자기 공예, 바구니 공예,
쇠로 가구를 만드는 일들을 배우게 했다.
남편은 숙련 노예들을 이웃 농장에 빌려주었다.
노예들이 번 돈은 우리 것이 되었고,
수익이 늘자 농장의 가치도 올라갔다.

우리 농장의 노예들을 믿지만
도망 노예들이며 노예들이 일으킨 폭동 이야기는 내게도 들려온다.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이 짧은 문장만으로도 당시의 백인들이 흑인 노예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기술을 가르쳐 착취하고 그들이 번 돈을 갈취하며 재산을 축적한 백인들, 자신들이 쌓아 올린 업보 탓에 언제든 노예들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살아가는 백인들…

자유 자유 자유

흑인 노예들의 이름, 나이, 그리고 그 뒤에 기재된 가격. 이 목록이 농장 가치를 평가하는데 가장 중요한 항목이었습니다. 당시 실제 문서에는 이와 같이 각각의 노예들의 이름과 나이들을 정성스레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실상은 아래와 같았죠.

자유 자유 자유

잘 훈련시킨 노예 한 명이 거대한 수소나 종자소 수십  마리보다 훨씬 더 값어치가 있는 것을 보여주는 목록입니다. 기가 막힌 것은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젊은 흑인 남자, 흑인 여자, 젊은 흑인 여자, 흑인 남자와 같은 구분만 했을 뿐 다른 가축이나 재산들과 똑같은 취급을 했었다는 사실입니다.

작가는 이 목록 안의 흑인 남자, 젊은 흑인 남자, 흑인 여자, 젊은 흑인 여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이름과 나이, 맡은 일, 그리고 그들의 마음 속에 담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부여하고 그들 각각의 가슴 속에서 싹튼 꿈과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자유 자유 자유

내 아내 샬럿,
그리고 내 딸 도라.
나는 그들이 있어
언젠가 우리가 자유로워질 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팔릴 처지에 놓여 있다.
나는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헤어질 거라는 끔찍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가족을 온전히 지켜 낼 힘이 내겐 없다.

34세 바커스의 가격은 250달러입니다. 곧 팔리게 될 자신의 운명 앞에서 바커스가 걱정하는 것은 아내와 어린 딸과 헤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신에게는 그들을 지켜낼 힘이 없다는 현실입니다.

자유 자유 자유

대장장이인 바커스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삶의 무게를 지니며 살아가고 있으며 그 역시 꿈을 꿉니다. 그는 언제나 사랑하는 아내 샬럿과 딸 도라의 안전을 기도하고 자신의 가족과 그들과 함께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흑인 노예들 모두의 자유를 꿈 꿉니다.

우리 주인들은 우리를 일꾼들로만 본다.
주인들은 어떤 일이든
그 안에 우리의 삶이 있음을 모른다.
나는 일을 하면서도
아내 샬럿과 딸 도라를 생각한다.

시뻘건 화로에서 꺼낸 뜨거운 쇳덩이를 집게로 잡고
무거운 망치로 두드린다.
화, 분노가 분출된다.
꽝! 꽝!
내리칠 때마다 음을 낸다.
쾅! 쾅!
정의를 향한 울부짖음.
탕! 탕!
존중을 향한 외침.
텅! 텅!

모루 위의 울림,
자유를 향한 호소.
외치고 외친다.
자유, 자유
오! 오! 자유!

페기 48세 150달러, 스티븐 32세 300달러, 제인 28세 300달러, 존 16세 100달러, 아셀리아 42세 175달러, 샬럿 30세 도라 8세 400달러, 쿠쉬 60세 100달러, 멀비나 60세 100달러, 베티 36세 150달러… 이들 한 명 한 명의 가격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이들 각자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나요?

흑인 노예들의 이름과 나이, 가격뿐인 오래된 문서 하나를 발견하고 인간으로 취급 받지 못한 그들 한 명 한 명의 초상화를 그리고 그들의 삶과 그들의 꿈을 담아냄으로써 선조들의 존엄성을 기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후예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그림책 “자유 자유 자유”.

관심을 갖고 주변을 돌아보면 비단 과거의 미국, 흑인 노예들에게만 국한된 문제만은 아님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트 계산원, 식당 종업원, 편의점 알바생 등 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을들에게 갑이면서 을이기도 한 우리 자신들의 태도는 어떠했는지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흑인 인권 문제를 다룬 그림책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0 0 votes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