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도 입이 삐뚤어지고,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처서가 지난주였고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된다는 백로가 바로 다음 주입니다. 처서에 대한 재미있는 표현이 많더라고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말도 있더군요. 누가 오냐고요? 당연히 가을이죠! 올여름 더위는 폭염 그 자체였지만 그래도 가을을 이기는 여름은 없는 법입니다~

지난 6월에 테마 그림책으로 소개했었던 “여름 그림책”에 이어서 여름 그림책 10권을 추가로 더 정리했습니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여름과 여름날의 추억, 그리고 무더운 날의 시원한 상상을 담은 그림책들 만나보세요.

※ 본 글은 2023년 8월 23일에 발행한 <가온빛 레터 플러스 60호. 왼손에게> 중에서 ‘하루에 그림책 한 권’ 코너에 게재된 내용을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

※ 그림책 순서는 가나다 순입니다.


그해 여름, 에스더 앤더슨

그해 여름, 에스더 앤더슨

(원제: Esther Andersen)
그림 이렌 보나시나 | 글 티모테 드 퐁벨 | 옮김 최혜진 | 길벗어린이
(2023/03/15)

삼촌이 사는 바닷가 마을로 여름방학을 보내러 온 소년, 그리고 그 바닷가에서 만나게 되는 소녀. ‘파도처럼 내게 밀려온 에스더 앤더슨, 찰나였지만 가슴속에 영원히 새겨진 눈부셨던 그해 여름의 기억’ 이라는 출판사의 근사한 카피 한 줄이면 이 책에 대한 소개로 충분한 듯합니다. 황순원의 『소나기』의 감성을 닮은 이야기와 장자크 상페의 그림을 떠올리는 이렌 보나시나의 그림이 아주 매력적인 80여 쪽의 두툼한 그림책입니다.

  • 방학은 달팽이 집 같았다. 가운데에는 집이 있었다. 나는 나선형 원을 그리면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까지 가 보려고 애썼다. 그러던 여름 어느 날, 그 일이 벌어졌다.
  • 이 순간 이후, 모든 것이 영원히 달라질 거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돌아오는 길은 날씨가 후텁지근했다. 사람들은 금세 곯아떨어졌다. 이 세상 어딘가에 에스더 앤더슨이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림책에서 가져온 문장들 몇 조각만으로도 주인공 소년이 이번 여름 얼마나 성장했을지 느껴지시나요? 여전히 여러분의 가슴 한 켠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을 오래전 어느 날의 소중한 기억 다시 떠올려 보시길…💑💕

『그해 여름, 에스더 앤더슨』 리뷰 보기


다이빙

다이빙

글/그림 호아킨 캄프 | 옮김 김여진 | 노는날
(2023/06/14)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해외 작가를 꼽으라고 하면 호아킨 캄프가 열 손가락 안에 꼭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해 가을 국내에 처음 선보인 『피아노』를 시작으로 8개월 동안 출판사 세 곳에서 다섯 권의 그림책을 들여왔을 정도니까요.

다이빙대 끄트머리에 서서 느끼는 두려움, 그 두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 그리고 두려움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무언가에 대해서 아이들의 시선과 언어로 풀어낸 그림책입니다. “영웅에게도 시간이 필요하죠.” 라며 다이빙대 위에서 주저하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던 주인공 아이가 마침내 뛰어내린 후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외치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움직여야 한다!


아들의 여름

아들의 여름

글/그림 김근아 | 고래뱃속
(2023/05/08)

갑자기 맞닥뜨린 아버지의 부재. 이제 아들이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야만 합니다. 슬픔을 딛고 일어선 아들은 도끼를 들고 장작을 팹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두 번… 그러다 문득 아버지를 느낍니다. 지난여름 바로 옆에서 가르쳐 주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마침내 성공! 이제 막 어른의 문턱을 넘어서려는 아들은 더 이상 어제의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작가가 제목으로 굳이 사계절 중 여름을 제목으로 선택한 건 아마도 숨이 막힐 정도로 무더운 여름을 견뎌내고 가을로 겨울로 한 걸음 한 걸음 계절의 문턱을 넘어서는 과정이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소년의 애씀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여름 상상

여름 상상

글/그림 박광명 | 고래뱃속
(2023/06/19)

그림책 『여름 상상』은 핵폭염! 에너지 고갈 문제로 곳곳에 정전 사태, 전기세 폭탄으로 에어컨 무쓸모, 시민들 폭염에 지친다는 걱정일보 김우려 기자의 보도로 시작합니다. 녹아내릴 듯한 무더위에 지친 한 아이가 선풍기와 씨름을 합니다. 1단 2단 3단… 시원해질만하면 꺼지고 또 꺼지는 선풍기 버튼을 누르고 또 누르던 아이가 어느 순간 뿅 하고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곳은 고장 난 여름 지옥이 아니라 시리도록 차갑고 시원한 얼음 천국.

시원한 선풍기 바람 앞에서 펼쳐지는 얼음 나라로의 상상 여행을 바라보며 이게 상상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 아니 바로 코앞의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점점 더 뜨거워지는 지구, 매년 여름 갱신되는 폭염의 기록 탓입니다.


여름 소리

여름 소리

글/그림 박선정 | 풀빛
(2023/07/10)

여름의 소리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에 담을 수 있도록 판화 그림으로 그려낸 그림책입니다. 여름의 소리가 뭐냐고요? 통 토옹 텅 딱 잘 익은 수박을 고르는 소리, 토독 토독토독 토독 토독토독 장마가 노크하는 소리… 이제 좀 감이 잡히시나요? 여름 한 입 베어 문 소리, 하늘이 구멍 난 소리, 온 동네가 들썩이는 소리, 여름이 익는 소리들은 과연 어떤 소리 어떤 모습일지 그림책 보기 전에 미리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각적인 의성어 사용과 소리의 파동의 모습을 시각화해 준 그림이 인상적인 그림책 『여름 소리』입니다.


여름빛

여름빛

글/그림 문지나 | 사계절
(2023/06/30)

작가의 해묵은 일기장 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여름의 빛, 여름의 열기, 여름의 소리, 여름의 느낌, 강렬한 여름의 순간들을 하나씩 꺼내 그림으로 그려낸 그림책입니다.

여름이 되면 가족들과 바닷가에서 놀았던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수많은 여름이 남기고 간 빛들을 모아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올여름은 여러분에게 어떤 빛깔, 어떤 소리, 어떤 느낌으로 남게 될까요?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여름빛』 살짝 펼쳐 보세요~


여름의 선

여름의 선

글/그림 신성남 | 향출판사
(2023/07/20)

노란 참외의 하얀 줄, 연녹색 멜론의 하얀 그물무늬, 초록색 수박 위의 진초록 줄무늬, 그 여름의 선 위로 펼쳐지는 작가의 즐거운 상상이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그림책입니다. 6~8월 여름 석 달의 한 줄 소개가 마음에 쏙 듭니다. 유월은 ‘달이 노랗게 익는 달’, 칠월은 ‘바다가 마음을 여는 달’, 팔월은 ‘매미가 짝을 짓는 달’.

작가가 참외, 멜론, 수박에서 여름의 선을 찾았다면 여러분만의 여름의 선은 과연 어디에 그어져 있을까요? 더위도 식힐 겸 여러분만의 여름의 선 꼭 한 번 찾아 보시길~


여름이 오기 전에

여름이 오기 전에

글/그림 김진화 | 문학동네
(2023/07/14)

『여름이 오기 전에』는 다른 작가들의 글에 그림만 그려왔던 김진화 작가가 직접 글까지 쓴 첫 그림책입니다. 여름이 오기 전 여행을 떠나게 된 한 가족. 그런데 출발부터 꼬이기 시작합니다. 아빠가 샤워하다 앞니가 부러졌거든요. 어쩔 수 없이 엄마, 아이, 그리고 아이의 애착 인형 길쭉이 이렇게 셋이서 떠나기로 합니다. 여행지엔 무사히 도착했지만 아이와 엄마가 바닷가에 놀러 나간 사이 길쭉이가 사라지고…

아이의 여행, 길쭉이의 여행, 그리고 엄마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각각 이 한 권의 그림책 속에 담겨 있습니다. 어떤 주인공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그림책을 펼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겁니다. 저는 길쭉이가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늦은 밤 어두운 오름 사이로 난 도로를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홀로 걸어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건 나를 잊지 않고 나에게 달려와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이 든든해지는 것 같아서 말이죠.

김진화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 보면 본인의 경험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길쭉이의 현실 속 실물도 확인하실 수 있고요. 그림책 감상에 단서가 될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으니 꼭 한 번 읽어 보시되 그림책 먼저 본 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림책 『여름이 오기 전에』 김진화 작가 인터뷰

『여름이 오기 전에』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엄마와 아이가 길쭉이와 함께 공항리무진을 기다리고 있는데 길쭉이가 엄마보다도 훨씬 더 커져 있습니다. 마치 아빠처럼 커진 길쭉이에게 엄마와 아이가 매달려 있거든요. 길쭉이가 커진 건 어떤 의미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해석하셨을지 궁금하네요~ 이 그림책 보고 나면 꼭 말씀해 주세요.


핫 도그

핫 도그

(원제: Hot Dog)
글/그림 더그 살라티 | 옮김 신형건 | 보물창고
(2023/08/10)

산책중이던 반려견이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건널목에서 주저앉아 버립니다. 사방에서 빵빵대는 경적 소리에도 불구하고 반려인은 반려견 앞에 함께 엎드려 눈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고는 “택시!”하고 외칩니다. 택시를 타고 둘이 달려간 곳
은 과연 어디일까요?

강아지, 그것도 귀여운 닥스훈트가 등장하는 그림책이라 당연히 아이들에게 사랑받을 그림책이지만 어른들을 위한 여름 그림책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반려인의 모습이 바로 아이들 키우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니까요. 잠깐이지만 일상을 내려놓고 시원한 바닷가에서, 잔잔한 음악 흐르는 에어컨 바람 빵빵한 카페에서, 선풍기 달달달 돌아가는 마루바닥에서 나만의 시간 누려 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그림책을 육아에 지친 엄마 아빠에게 권합니다.

참고로 이 그림책은 2023년 칼데콧 메달 수상작입니다.


해변과 바다

해변과 바다

(원제: Praia-mar)
그림 베르나르두 카르발류 | 그림책공작소
(2023/06/21)

『해변과 바다』는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썰물로 드러난 드넓은 모래사장에 펼쳐지는 여름날의 풍경들, 그리고 다시 밀물이 그 자리에 차오르며 날이 저물어가는 바닷가의 여유로운 하루를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아무 내용도 없고, 그림마다 구석구석 다 뒤져봐도 어떤 사건 사고도 보이지 않는 그냥 평범한 하루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책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믿으며 여러분께 권합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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