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이 필요할까?

이 선이 필요할까?

차재혁 | 그림 최은영 | 노란상상
(발행 : 2020/03/06)


“이 선이 필요할까?”는 제목이 던지는 질문 자체에 담긴 뉘앙스만으로도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사이를 가르는 선은 필요 없다는 작가들의 메시지가 충분히 느껴지는 그림책입니다.

사실 살다보면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선을 지키지 않아 관계가 깨지거나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심각한 경우엔 실패와 좌절을 겪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선을 넘어서가 아니라 선을 그어 버리는 바람에 관계에 금이 가거나 일을 그르치게 되었던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작가들의 질문 역시 바로 그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이 선이 필요할까?

여지껏 사이 좋게 잘 놀던 형제. 그런데 동생이 형과 자신 사이의 선을 발견한 순간 각자의 영역이 생겨나고 동생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고 합니다. “이 선은 넘어오지 마! 형은 거기서만 놀아!” 동생이 쏘아 붙이자 같이 놀고 싶은 형은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이 선을 누가 그어 놓았지?”

형은 자신과 동생 사이에 놓여진 선을 집어 들고 그 끝을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이 선이 필요할까?

선은 친구들 사이를 가로막기도 합니다. 친한 친구, 조금 친한 친구, 서먹한 친구, 안 친한 친구, 사이가 나쁜 친구…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지낼만 하고 지내다 보면 안 친했거나 사이가 나빴던 친구와 가까워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누군가를 정해놓고 따돌리고 심각한 경우에는 괴롭히기까지 하죠. 그 시작은 그저 선 하나였습니다.

이 선이 필요할까?

그저 선 하나뿐이었을 때 이해의 실마리를 풀었다면 좋았을텐데, 서로를 가로막는 선이 조금씩 길어지다보면 잔뜩 뒤엉켜 더 이상 풀기 힘든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서로에게서 등을 돌려버린 두 사람에게는 어쩌면 뒤엉킨 선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더 이상 없을런지도 모릅니다.

이 선이 필요할까?

선을 따라가보니 우리 주변에는 선에 가로 막히거나 그 선에 갇혀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선에 갇혀 불행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닙니다. 자신들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 자신들만의 가치를 추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행복이 다른 이들을 불행하게 할 수도 있고, 그들의 가치가 이 사회의 지향점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선이 필요할까?

선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작은 모임들 사이에도, 공동체나 마을 간에도 선이 그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을과 마을 사이를 오가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이들도 있지만 서로의 울타리를 더욱 단단하게 쌓아 올리며 각을 세우는 이들도 있습니다. 길은 모든 곳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곳에서 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공간을 공유할 수밖에 없지만 자기 것을 더 중하게 여기고 상대방의 마음을 불쾌하게 하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벌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선이 필요할까?

반목이 고착되면 갈등이 심화되고 긴장 가득한 전선이 형성됩니다. 조금 파란 사람 싯퍼런 사람, 조금 빨간 사람 아주 싯뻘건 사람들이 선을 따라 마주 선 그림을 보고 있자니 광화문 광장이 떠오릅니다. 갈등을 풀기 위한 실마리를 찾기보다는 각자의 세를 더 키우고자 애쓰게 되는 경우를 더 많이 보게 됩니다. 문제는 양쪽이 모두 공공의 선을 추구할 때라면 갈등은 발전을 향한 원동력이 되지만, 어느 한쪽이 극단을 향해 치닫는다면 갈등은 사회 발전의 발목을 붙잡고 퇴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선이 필요할까?

갈등의 전선이 민족이나 국가 사이에 형성될 경우 그 끝은 폭력과 전쟁입니다. 특히나 그 갈등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이득을 얻어내려는 이기적인 제3자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이해당사자들이 소통하고 화해하려고 할 때마다 더 심각한 불안과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곤 합니다. 우리도 한 때 우리 의지와 무관한 전쟁을 겪어야만 했고, 우리가 흔히 제3세계라 부르는 빈곤국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폭력과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선이 필요할까?

선을 따라 한참을 간 끝에 아이는 한 할머니와 마주칩니다. 아이는 이 선을 누가 계속 그어 놓는 거냐고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선의 반대쪽에서 그 선을 따라왔던 할머니 역시 명확한 답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오랜 세월 자신도 궁금했던 한 가지를 아이에게 되묻습니다.

“글쎄, 잘 모르겠네. 하지만 이 선이 꼭 필요할까?”

이 선이 필요할까?

아이와 할머니가 주워온 선 뭉치를 쓰레기통에 버린 후 돌아가고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엔 온세상 다양한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서로의 선을 붙잡고 서 있습니다. 여성과 남성,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다양한 인종, 동물, 심지어 외계인까지 모두 각자의 선을 들고 있습니다.

그 어떤 갈등과 대립도 해결의 실마리는 바로 우리 각자의 손에 쥐어져 있다, 우리가 잡고 있는 이 선을 가만히 잡아당기면 온세상 모두와 연결된다, 작가들이 말하고 싶었던 건 이런 메시지들이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그어 놓은 선. 그 선을 서로가 잘 지키는 것은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겁니다. 하지만 그 선에만 집착하는 순간 갈등이 시작되고 가느다랗던 선은 두텁고 높은 벽이 되어버립니다. 모든 갈등은 작은 오해에서 시작됩니다.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 이해하면서 서로의 선을 지켜주되 그 선에 집착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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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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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규
최대규
2020/06/04 11:53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갈등과 반목이 많은 이 현실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서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작가의 창의성이 돋보입니다.
세계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울 작품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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