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

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

(원제 : The Tiger Who Would Be King)
글 제임스 서버 | 그림 윤주희 | 옮김 김서정 | 봄볕
(발행 : 2021/05/06)

※ 2015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선정작


이 책을 처음 소개한 건 “2015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발표”에서였습니다. 한글판이 바로 나올 줄 알았었는데 아무 소식이 없어서 결국은 3년 뒤인 2018년에 “국내 출간을 3년이나 기다린 그림책 두 권”에서 영문판 기준으로 리뷰를 했었습니다. 한글판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처음 얘기한 후 6년만에 한글판이 출간되어 오늘 다시 한 번 소개하게 되네요.

선동하는 자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자신이 왕이라고 말하는 호랑이. 동물의 왕은 사자 아니었냐고 관심 없다는 듯 대꾸하는 자기 짝에게 호랑이는 “우리는 변해야 해. 모든 동물이 변화가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짆아.”라며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봐도 아기 호랑이들 낑낑대는 소리뿐 그 어디에서도 그런 외침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

“달이 뜰 때쯤에 나는
동물의 왕이 될 거야.”
호랑이가 말했다.
“축하하는 의미로 검은 줄무늬의 노란 달이 뜰걸.”

호랑이는 밤하늘의 달조차 자신을 축하하기 위해 검은 줄무늬로 치장하고 떠오를거라며 잔뜩 들떠 있지만… 거창하게 시작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은 대수롭지 못함을 미리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그러시겠지.”하고 시큰둥하게 영혼 없이 대꾸하는 암호랑이.

재미난 건 유독 아빠를 닮은 수컷 아기 호랑이에 대한 부분입니다. 아기 호랑이는 앞발바닥에 가시가 박혔다고 ‘상상’하면서 칭얼거리는 중이라고 왜 굳이 언급했을까요? 어쩌면 제임스 서버는 이런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요? 박히지도 않은 가시가 제 발바닥에 박혔다고 상상하면서까지 칭얼대는 아기 호랑이와 모든 동물이 변화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환청까지 들으며 왕을 꿈꾸는 아빠 호랑이 둘이 너무 닮았으니 말입니다.

선동 당하는 자

이미 왕이었던 사자가 새로운 왕이 되고 싶어 하는 호랑이에게 선뜻 왕좌를 내어 줄리 없죠. 무시무시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싸움은 해가 질 때까지 계속 됩니다. 지켜보던 다른 동물들도 그 싸움에 끼어들었습니다. 몇몇은 호랑이 편에, 나머지는 사자 편에.

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

몇몇은 자기들이
누구 편에서 싸우는지 몰랐다.

몇몇은 양쪽 편을 다 들었다.

몇몇은 누가 됐건
옆에 있기만 하면 물어뜯었다.
몇몇은 그저 싸우려고 싸웠다.

달이 떠오를 즈음 새로운 왕조가 시작됩니다. 마침내 호랑이가 그토록 바라던 왕이 된 겁니다. 하지만 호랑이 주변에는 동물들의 주검뿐입니다. 호랑이 편 사자 편 할 것 없이 모든 동물들이 죽고 호랑이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서로 물어뜯고, 무엇을 위해 죽는지조차 모른 채 피흘리며 죽어간 동물들. 사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왜 싸우는지 왜 죽는지는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도 호랑이의 것과 똑같은 크기의 탐욕이 자리잡고 있었거나 이 밤의 싸움 덕분에 싹트기 시작했을 겁니다.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고 자기들 판단에 더 강한 자, 승리할 것처럼 보이는 자 곁에 가서 싸움이 끝나고 난 후 배분 받을 제 몫을 더 키우기 위해 다른 동물들보다 더 잔혹하게 으르렁거렸겠죠.

살아가는 자

싸움이 시작되기 전 호랑이가 그토록 바라던 달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왕을 축하하는 줄무늬의 노란 달은 아닙니다. 싯벌건 달빛에 잠긴 정글은 이미 죽음으로 뒤덮여 있고 공포에 질린 앵무새의 울부짖음만 울려 퍼집니다.

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

하지만 시간은 죽음에서 삶으로 흘러갑니다. 죽음으로 숲을 뒤덮었던 핏물이 씻겨나간 자리를 푸르름이 채워 나갑니다. 싯벌겋게 물들었던 달은 다시 생명의 빛으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푸르름으로 다시 달이 차오를 때 숲도 다시 살아날 겁니다. 왕도 싸움도 없는, 호랑이로 사자로 개미핥기로 얼룩말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생명의 숲으로 다시 돌아올 겁니다.

세상은 선동하는 자, 선동 당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자 바로 평범한 우리들의 것입니다.

참고하세요

  • 윤주희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중인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2019년에는 ‘Art & Style’ 부문에서 Forbes 30 Under 30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2019년에는 그림책 “만약에…”를 국내에 출간했고, 알부스 갤러리에서 <색과 함께하는 재미난 이야기>라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는 그녀의 여섯 권의 책 중 세 번째 책입니다(“만약에…”는 다섯 번째).
  • 제임스 서버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원작인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한글판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를 쓴 작가입니다. 1944년 칼데콧 메달을 수상한 루이스 슬로드보킨의 “Many Moons”도 제임스 서버의 글이 원작입니다.
  • 한글판을 출간한 출판사에 따르면 “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의 초판은 이탈리아에서 실크스크린 인쇄로 500부 한정 제작되었었고, 미국에서는 겉표지와 대문 접지 등 그림 몇 컷을 추가하고 판형도 더 키워서 출간했는데 한글판은 미국판과 같다고 합니다. 윤주희 작가가 미국판을 더 마음에 들어했다고 하는군요.
  • 출판사는 미국판에서 대문 접지가 추가되었다고 했는데 이탈리아에서 이 책을 제작했던 Else Edizioni 출판사의 페이스북에 올려진 제작 과정을 보면 이탈리아판에도 대문 접지는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이 책을 만드는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볼 수 있습니다.
  • 다비드 칼리가 쓰고 안나 아파리시오 카탈라가 그림을 그린 “쉿!”이라는 그림책은 “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습니다. 아마도 비슷한 기법으로 작업을 한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는 초록과 주홍 두 가지 색, “쉿!”은 자홍색 귤색 청록색 세 가지 색만을 사용해서 모든 그림을 그려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두 작품 모두 다양하고 풍부한 색감을 보여줍니다.
  • “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는 출판사 서평에 가온빛이 언급된 첫 그림책입니다. 2018년 5월에 “국내 출간을 3년이나 기다린 그림책 두 권”에서 ‘이 책은 국내 출간되면 무조건 구입!’ 이라고 했던 말이 서평에 들어갔더라구요.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및 가온빛 Twitter, Instagram 운영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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