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글/그림 노인경 | 문학동네
(2022/03/25)


“벌거벗은 임금님”은 안데르센의 동화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삼국유사에 실렸던 경문왕 일화가 이야기로 전해진 것이라고 하구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 두 이야기가 비슷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어요. 어리석기 그지없는 왕이라는 공통점 때문이었을까요? 벌거벗은 임금님을 향해 유일하게 깔깔 웃어댄 정직한 아이 모습이나 임금의 당나귀 귀를 본 것을 못 참아 대나무 숲에서 소리친 복두장의 모습이나 어린 제 눈에는 비슷해 보였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에 꽂혔는지도 모를 일이구요.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노인경 작가가 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펼쳐봅니다.

옛날 옛날 어느 나라에서 왕들이 자꾸만 죽었습니다.
왕이 되면 머지않아 목숨을 잃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온 나라에 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이 되고 싶은 사람은 많았어요. 다들 자신만은 다를 거라 생각했지요. 그 많은 사람들 중 444대 왕이 된 사람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어요.

하지만 뭔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4자가 한 개도 아닌 세 개나 붙은 444대 왕이라니…(굿판이라도 크게 벌여야 하는 걸까요? 이참에 궁터를 옮겨야 할까요? 에이 설마… 아무리 이야기 속 세상이라 고 해도 그렇지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기쁨도 잠시 이튿날 아침, 왕은 자신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커졌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어요. 자, 여기까지가 여러분이 알고 있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이야기일 거예요. 그래서 귀를 가릴 왕관을 만들고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하기 어려웠던 복두장이 견디다 못해 대나무 숲에 가 소리를 치고… 지금부터는 노인경 작가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내가 알고 있던 옛이야기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세요.

커다란 왕관을 머리에 쓰자 커다란 귀를 가릴 수는 있었지만 왕은 몸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끙끙 앓던 444대 왕은 이전 왕들의 일기를 찾아봐야겠다 생각했지요.

이전 왕들의 일기에도 모두 똑같은 이야기가 적혀있었어요. 왕이 되자마자 다들 당나귀 귀를 갖게 되었고 커다란 왕관으로 귀를 가리게 되었던 이야기. 여기까지는 지금 444대 왕의 선택과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뒷이야기는 조금씩 달랐어요. 강인했던 1대 왕은 왕관이 커서 고꾸라져 죽었고 허약했던 126대 왕은 왕관 무게에 허리가 휘어 죽었고… 수치심 때문에도 죽고 슬픔에 빠져서도 죽고 화병에 심장마비까지… 결국은 다들 당나귀 귀 때문에 죽게 되었다는 슬픈 일기들.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왕은 마침내 왕관을 벗어던지면서 결심했어요.

‘에잇, 이깟 귀가 뭐라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커다란 왕의 귀를 본 대신들은 다들 웃음을 터뜨렸어요.  그들을 따라 왕도 함께 웃었지요. 오른쪽 화면을 가득 채운 ㅋㅋ를 따라 함께 ㅋㅋㅋㅋ 웃어봅니다. 내 마음도 함께 가벼워집니다. 귀를 가리는 왕관을 벗자 왕은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어요. 무엇보다 백성들의 말이 아주 잘 들렸지요.

귀가 커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

왕의 귀가 커진 건 백성들 말 잘 들으라고. 그 말 하나하나 잘 새겨들어 바르고 어진 정치를 펼치라고. 그것이 진정 왕의 길이라고. 443명의 희생을 치르고서야 그 이유를 깨닫게 된 왕이 나왔으니 너무나 많은 희생,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 셈이군요. 하지만 445대 왕에 이르면 또 모르지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지는 않을지… 지혜로운 444대 왕이 이 사실을 자세히 일기로 기록해 놓겠지만 글 한 줄 읽지 않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왕이 나온다면? 😱

이 그림책은 팝업북입니다. 당나귀 귀를 가진 왕 덕분에 태평성대를 이룬 모습을 팝업으로 시원하게 담아냈어요. 그들의 웃는 모습에 함께 행복해집니다. 그들 곁에 나란히 서서 손잡고 함께 웃어봅니다. 편안하게 웃고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그림책 속에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는 모두 나의 선택입니다. 모든 선택은 나로부터 나옵니다.

진실을 감추는 데에만 급급한 어리석은 권력을 비웃는 날카로운 풍자, 신선한 시각이 돋보이는 패러디 그림책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위기가 기회라고들 하죠.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음을 보여준 444대 왕. 눈앞에 닥친 일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벌벌 떨기만 하다 정작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잠시 나를 돌아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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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자
윤원자
2022/05/09 22:03

옛날 이야기에 담겨 있는 교훈이 오늘날, 지금 현재의 상황에도 꼭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지혜로운 지도자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이 희생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가온빛지기
Admin
2022/05/12 08:48
답글 to  윤원자

그림책이 품고 있는 세상은 참 깊고도 넓습니다. 우리 아이들처럼요.
진퇴를 반복하며 인류는 발전해왔다지만 퇴보의 순간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견뎌야 하는 희생이 작지 않아 늘 답답합니다.
윤원자님에게, 가온빛 독자들에게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좋은 일 웃을 일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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